PART 2. 저희 부부는 이렇게 살아요 ep.1
우리 부부는 신혼이지만, 각방을 쓴다.
그렇다고 사이가 나쁜 건 아니다. 각방을 쓰는 건 결혼하기 전부터 합의를 본 것이었다. 우린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 동거를 해왔는데, 한참 서로 죽고 못 살 때조차 잠은 따로 잤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각방을 쓰는 게 서로에게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혼하여 한 지붕 아래 함께 지내는 건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결혼을 한다는 건 멀쩡히 혼자 잘 지내던 사람의 생활패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존재로, 서로가 서로에게 거듭나는 것이었다.
누구나 배우자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겠지만, 우리네 인생은 그렇게 생각처럼 쉽게 흘러가지 않는다. 자기 자신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데 상대방의 세계관을 내 영역에 들이는 것도 모자라, 적절한 조화까지 이루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배우자라 해도 겉모습만으로는 당최 속을 알 길이 없기에 '조율'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봤다. 관계가 개선되진 못할지언정 최소한 서로에게 악영향만큼은 끼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장치가 부부관계에선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규칙이 좋은 점은 한 번 정해 놓으면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건전한 취지와 합리적인 생각을 기반으로 형성된 것이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어디 가서 각방을 쓴다고 하면 욕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는 이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엔 각방을 쓰는 게, 그러나 같이 자고 싶은 날은 기꺼이 함께 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생각에는 나도 아내도 서로 이견이 없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잠드는 시간이 달라서
우리 부부는 둘 다 일찍 잠에 드는 편이다. 난 새벽기상을 시작한 후로 새벽 4,5시쯤엔 일어나야 했기에 밤 10시쯤엔 침대에 눕는다. 아내는 원래부터 밤 9시나, 10시쯤이면 불 끄고 침대에 누워서 잘 준비를 하는 사람이었다.
어찌 보면 둘 다 비슷한 시간에 잘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잠이 들기까지의 자세한 과정이 다르다. 난 머리를 뉘면 바로 잠에 빠져든다. 가끔 마음이 난잡할 땐 자기 전에 명상을 하기도 한다.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땐 ASMR영상도 본다.
반면에 아내는 자기 전 SNS를 둘러보거나, 책을 읽다가 잠든다. 가끔은 자정 넘어 늦게 자기도 한다. 어쩔 땐 밤 9시도 전에 일찍이 잠들 때도 종종 있다. 이처럼 둘 다 비슷한 시간에 침대엔 눕긴 하지만, 그 이후로 완전히 잠들기까지의 행동패턴은 많이 다르다.
우리 부부의 열정이 가장 불타오를 때는 스마트폰 없이 오직 대화를 통해 서로 간의 견해를 주고받을 때이지만, 여전히 침대 위로 스마트폰을 가져오는 습관을 아직 우린 극복하지 못했다. 사실, 그런 노력을 잘하지도 않는다. 때문에 잠들기 전에는 평화롭게 각자 떨어져서 마음 편히 21세기를 양껏 즐기기로 한 것이다.
침대에 눕는 시간, 자기 전 침대에서 하는 일 등이 다른 만큼 서로의 숙면에 방해되는 요소가 함께 있을 때의 장점보다는 더 많았다. 물론 배우자가 손 닿는 곳에 있지 않으니 그에 따른 아쉬움과 허전함이 일긴 한다. 그럼에도 혼자서 하루를 조용히 마감하고, 안온한 상태로 내일을 기대하며 곤히 잠에 드는 것이 건강한 부부관계를 위해서는 되려 좋을 거라고 우리는 그렇게 판단했다.
일어나는 시간이 달라서
우리 부부는 불 끄고 침대에 눕는 타이밍은 비슷하지만,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아내는 보통 아침 6시 30분에서 7시 사이에 일어나서 여유롭게 출근준비를 하는 편이다. 하지만 난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기 때문에 알람부터가 새벽 4~5시 사이에 있다.
주말은 그나마 괜찮은데, 평일에 아내가 내 알람소리 때문에 새벽에 잠을 깨면 다시 잠들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럼 출근준비시간 전까지 밤을 꼬박 새고 맑지 못한 상태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나 때문에 말이다.
사실 함께 잔다고 하면 아내가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게 가장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책 읽고 글 쓰는 거 그래 다 좋은데, 내가 나 좋은 일 하자고 아내가 매번 어중간한 시간에 잠에서 깨야 하는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다른 이유들을 제하고서라도,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린 각방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니면, 내가 예전처럼 출근 직전까지 퍼질러 자는 생활로 돌아가거나.
엄연한 '차이'를 극복할 수 없기에
난 곰같이 무뎌서, 옆에서 코를 골거나 이를 갈아도 잠을 잘 잔다. 음악이 들려와도, 불이 켜져 있어도 관계없다. 자다가 몇 번을 깨도 다시 잠드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금 덜 잔다고 크게 피곤해하지도 않는다. 워낙 무딘 나머지 실제 몸은 피곤한데 체감을 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쩌다 낮잠을 4시간씩이나 자더라도, 원래 자던 시간에 침대에 누우면 평소처럼 잘만 잔다.
그런 나와 달리 아내는 예민하고 잠귀가 밝은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숙면을 위해 꼭 세상을 소멸시키기라도 하는 것마냥 모든 걸 끄고서 잠을 청한다. 새벽에 화장실을 간답시고 잠시 잠에서 깨면 다시 잠들지를 못해 출근하기 전까지 날을 새기도 한다.
기본적인 체온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둘 다 똑같이 덥고 춥다 할지라도 정도의 차이는 많이 난다. 가령 난 에어컨 온도를 더 낮추고 싶은데, 아내는 이미 춥다고 느낄 수도 있는 것처럼. 난 더워서 보일러 온도를 낮추고 싶은데, 아내는 여전히 춥다며 되려 전기장판까지 꺼내려 드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차이를 평화롭게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서로 거리를 두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 거리 두기의 일환이 바로 각방이었던 것이다.
우리 부부에게 있어서 각방을 쓴다는 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우리라는 관계를 지키기 위해 받아들일 건 겸허히 받아들이고, 취할 건 확실하게 취한다는 자세를 고수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함께 있으면 좋긴 하다. 아내와 난 연애할 때부터 지금까지도 큰 다툼 한 번 없이 잘 지내온 만큼 금실이 좋다. 그러나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너무 가까이 붙어있는 게 결코 좋지많은 않다는 걸 서로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둘 다 연애경험이 적지 않았기에 두말할 것 없이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때문에 각자만의 공간에서 편안하게 하루를 마감하는 걸 전혀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우린 잘 때만 떨어져 잘 뿐이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이상 자기 전까지는, 밀도가 그리 얕지만은 않은 대화를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러니 '부재'를 느낄 겨를이 없다. 사람은 잠에 들면 어차피 개인플레이(?)로 진입하게 된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같이 자는 게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되지도 않을뿐더러, 한 침대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섭함을 토로할 일도 없다.
난 어릴 때부터 결혼이 하고 싶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꿈을 남몰래 꾸고 있었다. 세상 물정 모를 때 품었던 소망치고는, 나이가 들어감에도 그 마음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다. 때문에 부모님을 비롯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주변인들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어떻게 하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자주 했었다.
그렇게 혼자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어느 순간 닿게 된 생각이 바로 '결혼하면 각방을 쓰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것이었다. 결혼한 후에 사이가 멀어진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쟁쟁한 이유들이 여럿 있지만, 단연코 그중 가장 으뜸에 속하는 건 다음과 같았다.
'서로를 필요 이상으로 구속하는 것'
결혼했다는 이유로, 남편 혹은 아내가 되었다는 이유로, 그리고 가족이 되었다는 이유로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는 일들을 심심찮게 눈과 귀로 접할 수 있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났으면서 결혼만 하면 '왜 그렇게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라는 생각을 좀 해봤는데, '그렇게 해도 된다'라는 관념이 마음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닿게 되었다.
뭐, 결혼했다는 이유로 서로의 영역을 어느 정도는 침범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차마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와 결혼한 배우자라는 이유로 하나도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정당화시키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도 쉽게 부정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가뜩이나 인간과 세상에 대한 탐구를 할수록 '그렇게 해도 된다'같은 건 전혀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닫는 바이다. 그렇기에 어떤 생각이나 행동의 근간이 단지 배우자라는 이유가 전부라면 최대한 경계하려 한다. 나의 아내는 배우자이기 이전에, 한 여자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이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자명한 진실을 항상 명심하고자 한다. 터무니없는 이유를 내세우며 소중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으려 한다. 그건 나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여기려 한다. 모든 일은 그때그때의 상황과 환경을 고려하여 대처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믿는다. 건강한 부부관계를 위해서라면 더더욱이나.
사람이 당연함을 추구하면 사유를 하지 않게 된다. 사유를 하지 않는 게 습관이 되면,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조차 제대로 바라볼 줄 모르는 눈 뜬 장님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그렇게 생애 가장 특별한 관계를 허무하게 망치기도 하는 법이다. 사유의 부재는 비극을 불러오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생적 결함이다.
'남과 남'이었던 관계가 '너와 나'를 뛰어넘어 '우리'가 되었다 한들, 현실은 최초의 '남과 남'에서부터 전혀 바뀌지 않음을 인정하는 바이다. 배우자를 완벽한 타인으로써 끝까지 존중하려는 자세의 근본이 되는 이유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각방을 쓰기로 했다.
우리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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