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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Mar 04. 2024

결혼식에 많은 돈을 들이기 싫었다

PART 1. 남들과 조금은 다른 시작 ep.3


결혼식은 참,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남의 결혼식을 보다 보면 그 부부의 미래가 보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문화가 안고 있는 모순이 보이기도 한다. 그동안 주변 사람들의 결혼식과 결혼생활을 지켜보면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은 했지만, '저렇게 하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더 많았다.


난 결혼식과 관련하여 굳이 안 써도 될 돈이라면 쓰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에겐 평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이겠지만, 내겐 평생에 겨우 한 번밖에 하지 않는 결혼식이었기 때문이다. 필요하지도 않고 하고 싶은 것도 아닌데,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행사를 위해 그저 남들이 다 한다는 이유로 이것저것 따라 하고 싶지 않았다.


주변을 돌아보면 결혼식에 딸려 있는 절차를 일종의 법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예물과 혼수를 마련하고, 결혼반지는 명품으로 해야 하고, 집안끼리 선물을 주고받고, 그간 뿌린(?) 축의금을 걷어야 하고, 신혼여행은 해외로 가야 하는 등의 것들을 말이다.


하지만 난 그런 것들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너와 내가 한 지붕 아래에서 사이좋게 잘 지내는 게 결혼의 본질이자 전부라고 여겼다. 결혼할 때 준비하고 챙기는 이것저것들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해만 끼친다고 봤다. 단지 결혼식을 더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하느라 무리하게 돈을 태우고 싶진 않았다. 찰나의 순간을 위해 돈을 쓰는 것보단, 예기치 못한 일이 닥쳤을 때 돈 때문에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저축하는 게 더 나았으니까. 


너와 나, 집안 대 집안 그리고 우리와 남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은밀한 저울질은 사전에 뿌리를 뽑고자 했다. 밑도 끝도 없는 비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그들만의 리그에 등 떠밀리듯 참가하는 건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차이'를 느낄지언정 차라리 대중과 동떨어진 '여집합'에 속하는 게 원만한 결혼생활을 위해서는 더없이 옳은 방향이라고 믿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보니 난, 남들처럼 결혼식을 치러야 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아무리 싸게 했다 해도 비싸 보이는 스드메

보통 결혼식을 준비할 때 크게 들어가는 비용 중 하나가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을 줄여서 부르는 '스드메'였다. 스드메는 예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예비신부와 결혼날짜를 잡은 친구들은 대개 스드메부터 알아본다고 분주했기 때문이다.


세상물정을 모를 때는 그 스드메라는 게 중요하겠거니 싶었다.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는 건 그만한 의미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식 준비는 곧 스드메가 전부라고 여겨질 정도로 주변인들이 언급하는 것을 귀가 닳도록 들어왔다. 그러나 결혼식 당일의 본식과 그 이후의 생활에서 드러나는 스드메의 결과물을 보다 보니, '굳이 저걸 비싼 돈 주며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기에 스드메는 결혼을 핑계로 허울 좋은 거품이 껴 있는 '상품'이라고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가성비 따져가며 싸게 했다 주장해도 비싸 보였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스드메를 두고 다들 하나같이 '할인 많이 받았다', '남들보다 진짜 싸게 했다'라는 말을 하던데, 마치 그런 후기조차 스드메에 딸려 있는 일종의 패키지 같았다.


"고객님, 주변 사람들에게 할인 많이 받았다고 소문내시면 10% 더 할인해 드릴게요."

라는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말이다.


그 정도면 할인가가 원가이지 않을까.



결혼사진은 집에서 셀프로

예전에 결혼한 지 1년 정도가 지난 친구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근데 스튜디오에서 찍은 결혼사진이 든 커다란 액자가 신발장 위에 애물단지처럼 떡하니 놓여 있었다. 그때 난 생각했다. 웬만하면 결혼사진에 큰돈 들이지 않겠다고.


우리는 결혼사진을 집에서 셀프로 찍었다. 거실에 있는 쇼파를 한쪽으로 치우고 베이지색 벽지가 발라진 벽면을 배경 삼아 찍었다. 아내는 촬영용 드레스를 당근에서 5만 원 주고 구입했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고 난 후 다시 5만 원에 팔았다. 난 상견례 때 장모님이 사주셨던 캐주얼 정장을 입고 찍었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은 카메라 어플의 필터와 약간의 손터치로 보정을 했다.


우린 그렇게 셀프로 찍은 사진들 중 잘 나온 것들을 모바일 청첩장에 첨부했다. 그리고 나머지 일부 사진들은 인화를 해서 소액자에 끼워 넣고 잔칫날에 홀 주변을 장식했다. 그런 홀 바깥에 내걸린 우리 부부의 결혼사진들을 보며 '어느 스튜디오에서 찍었냐'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반응들을 보며 '돈 주고 사진 안 찍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주변인들이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 배경부터가 인위적이고 취하는 포즈나 얼굴의 표정들이 부자연스러워서 별로였다. 난 결혼을 기념하는 사진일수록 서로의 관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자연스러움이 깃들길 바랐다. 오래 간직하며 두고 볼 거니까.



평생 잊지 못할 카메라맨

본식 때 사진을 담아주신 사진작가분은 아내가 맘카페 후기를 통해 알게 되어 고용하게 된 분이었다. 결혼식이 있는 날, 단풍이 서린 경치 좋은 산 밑에서 만나 외부촬영을 하고 본식 때 찍을 사진까지 포함해서 약 1,000장을 계약했다.


인상이 참 좋은 분이었다. 처음 만났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를 되게 흐뭇하게 바라보는 표정이 얼굴에 물씬 묻어났다. 그게 아주 착각은 아니었는지, 그분은 우리 모습이 유독 보기 좋다며 계약했던 1,000장을 넘어서서 2,000장도 넘게 사진을 찍어주셨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린 돌잔치홀에서 결혼식을 진행했던 탓에 주변정리를 해 줄 만한 일손이 부족했다. 그런데 참 감사하게도 사진작가분이 그 빈틈을 메꿔주셨다. 사진을 열심히 찍는 것도 모자라, 결혼식에 찾아오는 손님들의 안내를 자진해서 도맡아주었다. 평범한 예식장이 아니라 헤매는 분들이 계셨는데, 그런 분들을 모두 케어해 주신 것이다.


더불어 뻘쭘하게 서 있는 나와 아내본가 부모님들에게 다가가 스몰토크를 주고받으며 긴장이 풀리게끔 도와주기도 했다. 그런 편한 모습이 보기 좋다며 부모님들의 사진도 많이 찍어주셨다. 더 감사한 건 홀에 들어가기 전 우리에게 축하한다며 인사치레를 하고 있는 하객분들 한 명 한 명을 거의 다 찍어주신 것이다(괜히 2,000장을 넘긴 게 아니었다).


일반 예식장에선 방해가 돼 보일 정도로 무대 위에서 활약(?) 하시는 카메라맨들을 많이 봤었는데, 우리 결혼식을 찍어주신 작가님의 동선은 너무도 흡족스러웠다. 내 모든 지인들에게 그분을 추천하고 싶을 정도였다. 곱씹어볼수록 감사하고 인상도 참 선한 분이었다.


잔치가 끝난 후 우리 부부는 귀인과도 같은 사진작가님에게 계약했던 금액보다 좀 더 많은 돈을 드렸다.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더 얹어주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재능판매 사이트에서 만난 좋은 인연

우린 사진작가님 말고도 동영상을 남기기 위해 영상 편집자분을 한 분 더 고용했었다. 그런데 결혼식 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갑자기 개인사정이 있다며 계약을 파기했었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그 사람이 원망스러웠지만, 식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기에 책망할 겨를도 없었다. 아내는 얼른 다른 사람을 알아봤고, 급한 대로 재능판매 사이트를 통해 새로운 분과 계약을 맺게 되었다.


가끔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실감이 날 때가 있는데, 결혼식 때 만난 편집자분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결혼식 영상 제작을 맡아주신 분이 약속을 엎었을 땐 참 막막했으나, 결과적으로 보면 잘 된 일이었다. 사진작가님과 마찬가지로 두 번째로 만난 편집자분도 참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결혼식을 담백한 분위기가 풍기는 영상으로 잘 만들어주신 것도 좋았지만, 그보다는 다른 부분 때문에 그분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사실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지만, 사진작가님과 편집자님에게 마음속으로 바라는 게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너무 튀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었다.


보통의 결혼식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무대 위를 종횡무진하는 게 난 그렇게 거슬렸다. 본식이 진행되고 있을 때 사진 한 장이라도 찍을라 치면, 카메라맨들의 등짝이나 얼굴이 자꾸만 나와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우리 결혼식에서 만큼은 하객들과 우리 부부사이를 가리지 않았으면 하고 속으로 바랐다.


그런데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마냥 영상 편집자분은 거의 유령처럼 활동했다. 대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찍었는지도 모를 만큼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장면과 수많은 사람들을 영상에 고이 담았다. 접시에 음식을 담아 오는 사람들을 중간중간 인터뷰하기도 하고, 화장실을 다녀오는 내게 갑자기 다가와 아내에게 보내는 영상편지를 요청하기도 했다. 은밀하면서도 더없이 알찬 분이었다.




우린 결혼식을 돌잔치홀에서 치렀다. 보통의 결혼식과 관련된 절차, 시스템, 상품과는 동떨어진 곳이었다. 그만큼 알아서 준비해야 할 게 많았고 그만큼 신경 쓸 게 많았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밟은 덕분에 뜻밖의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디서도 본 적이 없던 색다른 잔치를 열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결혼의 시작을 알렸다. 그야말로 남들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세간의 흐름에 역행이라도 하는 듯한 행사였다.


예전부터 결혼식에 필요 이상으로 많은 돈을 들이고 싶지 않긴 했다만, 사실 그건 예비신부와 뜻이 맞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참 운이 좋게도 결혼에 대한 전반적인 견해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지금의 아내를 만난 덕분에, 숱하게 상상만 해왔던 '적당한 결혼식'을 현실로 맞이할 수 있었다.


최소한의 비용을, 직접 준비한 식순으로 구성된 결혼식을, 사이가 어색하지 않은 사람들로 가득 찬 공간에서 알뜰살뜰하게 치른 건 곱씹어볼수록 잘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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