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보 Mar 12. 2024

내가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이유

대신 적당히 매너만 지키며 살아가는 이유


episode 1

책임감이라곤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삼촌이 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간 덕분에(숙모는 그보다 훨씬 전에 이미 집을 나갔다) 할머니는 손자를 거의 30년 간 키우셨다. 나한텐 사촌동생이었다. 아빠 엄마가 멀쩡히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에게 버림받는 바람에 할머니 손에 자랄 수밖에 없었던 사촌동생의 처지는 측은하게 느낄 법도 했다. 정황상 사촌동생에겐 주변 가족들 모두가 잘해주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부터 악한 존재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는 듯 나를 포함한 집안사람들은 그 사촌동생에게 결코 살갑게 굴지 않았다. 불쌍하게 여기기는커녕, 사고만 치다 집을 나가버린 삼촌에 대한 미움을 그 어린것에 풀기라도 하는 듯이 못되게 굴기를 좋아했다.


다행히도 그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부터는 그간 못되게만 굴었던 세월을 만회라도 하는 듯 가족들은 그에게 친절하게 대했다. 할머니만 빼고 말이다. 모순적인 다른 가족들과는 다르게 사촌동생을 대하는 할머니의 태도는 언제나 일관적이었다.


여느 손주들과는 다르게 본인이 직접 키웠던 만큼 그 사촌동생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은 남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잔소리가 심했다. 더불어 그에 대한 신뢰가 단 하나도 없었다. 마치 자신의 손이 닿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아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했다. 물론 그가 말썽을 전혀 피우지 않은 건 아니지만, 할머니가 올바르게 자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던 나나 그 사촌동생이나 성장과정을 보면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할매, 나도 걔처럼 공부 안 하고 컴퓨터게임만 했으니까 너무 잔소리하지 마. 그냥 하게 냅둬."


"아니야, 그래도 너랑 달라."


"오히려 나보다 더 나은데? 삼촌도 없고, 우리가 잘해준 것도 없는데 담배도 안 펴, 쌈박질도 안 해, 할머니가 그렇게 심하게 잔소리하는데 대들지도 않잖아. 저 정도면 완전 착한 거라니까."


"아니야, 그래도 불안해."


"할매, 나였으면 진작에 집 나갔다."


(웃음)


할머니는 사촌동생에게 하는 잔소리가 심한 편이었다. 일거수일투족 모든 것을 관여했다. 용돈을 줘도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얼마나 썼는지 빼놓지 않고 따지고 들었다. 사촌동생의 방은 따로 있었지만, 방문이 별로 의미가 없었다. 컴퓨터게임만 하는 사촌동생이 마음에 들지 않는 할머니는 시시때때로 방문을 홱홱 열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그 모든 걸 사랑이자 배려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episode 2

최근 업무와 관련하여 현장에서 조사할 일이 많아진 관계로 우리 팀장님은 업무 시간 내내 현장에 있다가 퇴근 시간이 다 돼서야 사무실로 복귀하신다. 단, 현장조사를 할 땐 2인 1조 활동을 하는 게 지침이었기에 팀장님은 알고 있던 지인분을 계약직으로 채용하여 함께 다니고 있다.


그런데 우리 팀장님은 평범한(?) 분이 아니다. 집중력이 워낙 좋아서 그런 건지, 전체적인 업무 스케줄을 머릿속으로 꿰차고 있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일할 때 안 쉬고 하는 타입이다. 단연코 10분도 쉬지 않고 일한다. 사무실에서 일할 때도 보면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밥 먹을 때와 화장실 갈 때 빼고는 의자에서 엉덩이 떼는 걸 보기가 힘들 정도다.


사무실에서 편하게 앉아 일할 때도 쉬는 시간 없이 일하면 지치기 마련이다. 그런데 현장이면 오죽할까. 때문에 팀장님의 지인분은 팀장님이 없을 때면 하소연을 가끔씩 한다.


"진짜 한 번을 쉬지 않고 돌아다니네. 아유, 참."


"원래 팀장님 한 번 일하면 끝까지 가요."


"아니 안 쉬고 일하는 것도 짜증나는데, 점심시간도 훌쩍 넘겨서 나와. 한두 번이면 말도 안 하지, 어떻게 하루도 안 빼놓고 그러냐 진짜."


사실 나도 몇 번 현장에 팀장님 따라갔다가 끔찍한(?) 경험을 한 적이 있기에, 그분의 심정이 어땠을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팀장님의 생각은 달랐다.


"아우, 힘들어 죽겠다."


"왜요?"


"아니, OOO말이야. 내가 본인 급여 챙겨줄라고 얼마나 신경을 쓰는데, 뺀질뺀질거리기나 하고. 아마 자기는 내가 얼마나 배려해주고 있는지 모를 거야. 솔직히 이렇게 편하게 해주는 곳이 어딨냐?"


라며 내게 말하곤 했으니까.




사람들은 자신의 배려를 특별하고 남다르게 여기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우리 할머니와 팀장님을 보며 그런 생각이 더욱더 짙어졌다.


배려란 무엇일까. 대체 그놈의 배려가 뭐길래 배려하는 사람과 배려받는 사람의 입장 차이가 이토록이나 나는 것일까.


사실 웬만큼 순수한 배려가 아니고서는 '내가 이만큼 했으니, 쟤도 그에 맞게 반응하겠지'라는 관념이 깔리게 된다. 문제는 그 관념으로 인해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일종의 필터를 덧대서 대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쟤는 내가 그렇게까지 배려해 줬는데도 왜 그럴까?'라는 생각에서 더 나아가질 못한다. 사실 더 나아가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만약 합리적으로 추론했다 상대방의 입장이 납득이라도 되는 순간, 그동안 애써 베풀었던 배려의 의미가 덧없어지는 걸지도 모르니까.


배려하는 게 서로 간의 관계를 위해 좋은 태도이긴 하다만, 그 안에 어떤 목적이 깃든다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다고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상대방은 내가 원하고 바라는 대로, 생각하고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1+1=2'와 같은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1+1=xYz23###'와도 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건 세상일이 아니라 바로 인간인건지도 모른다. 그런 인간들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이기에, 갈수록 세간의 흐름이 어처구니없이 흘러가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존재에게 뭔가를 베풂으로써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생각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난 되도록이면 남을 배려하지 않으려 한다. 그저 적당히, 매너만 지키고자 한다. 그게 상대방을 함부로 넘겨짚지 않음과 동시에 나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순간 그 친구가 모임에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