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저희 부부는 이렇게 살아요 ep.4
막상 결혼이란 걸 하게 되니, 양가 부모님들에게 돈을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가 골치 아픈 문제로 다가왔다. 이게 고민이었던 이유는 단순히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부모님들에게 용돈을 드려야 한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양쪽 집안 어른들에게 용돈을 드리기 위해서 결혼한 건 아니었다. 더군다나 나와 아내는 둘 다 일찍이 독립하여(아내는 거의 초등학교 때부터) 그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고, 생계를 알아서 책임지며 살아왔다. 그래서 더 부모님에게 드리는 돈에 대한 생각이 박할지도 모른다.
뭐, 그런 성장환경을 제하고서라도 체면을 지키고자 돈을 태우고 싶진 않았다. 난 그저 오늘 하루를 편안하게 사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좋은 차도, 넓은 집도, 요즘 사람들이 다 갖고 있다는 물건에도 관심이 없었다. 때문에 돈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만 쓰고 싶었다. 안 써도 될 돈이라면 쓰고 싶지 않았다.
숱한 고심 끝에, 장인어른과 장모님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1년 중 생일을 제외한 기념일과 명절엔 용돈을 따로 챙겨드리지 못하겠다고 말이다. 나와 아내가 꾸려나갈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고, 훗날 돈을 꼭 써야 할 때를 대비해 부단히 저축하겠다고 말이다.
나의 부모님에게는 편지를 쓰지 않고 구두로 전달했다. 예전부터 아버지는 '물려줄 만한 게 없는 대신에 결코 너에게 손을 벌리지 않겠다', '각자 알아서 잘 살자'라고 잊을 만하면 언급을 하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예전부터 결혼해도 용돈 같은 건 기대하지 말라며 부모님에게 자주 말했기에 우리집 쪽은 신경 쓰지 않았다. 반면에 장인어른, 장모님은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걱정이었다.
마음 쓰였던 게 무색할 정도로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편지를 읽으시고는 덤덤하게 우리 부부의 앞날을 응원해 주셨다. 사실, 신경을 크게 쓰시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미지근한(?) 반응이었다. 마음 한 켠으로는 일종의 '대립'까지도 생각을 했었던 게 무안할 정도로 말이다.
나와 아내가 직장에서 종일 일하며 번 돈이니, 원래부터 우리 돈이 맞긴 했다. 그럼에도 부모님들에게 매년 드리는 용돈이 줄어든 만큼 늘어난 저축금액은 꼭 보너스만 같았다.
어쨌거나 편지지에 진솔한 마음을 고이 담아 어렵사리 전한 보람이 있었다. 용기를 낸 건 잘한 일이었다. 덕분에 체면을 살리고자, 찰나의 순간을 모면코자 새어나갈 법했던 돈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게 됐으니까.
나보다 앞서 결혼한 지인들은 돈 모으기 쉽지 않다는 소리를 달고 살았다. 저축은커녕 마이너스 통장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 주변인들을 지켜보다 보니, 가만히 숨만 쉬어도 여기저기 나가는 돈이 생각 이상으로 많았다. 특히 그중에서도 양가 부모님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보통이 아니었다.
한 분당 10만 원만 잡아도 액수는 무시하지 못한다. 설날 40만 원, 추석 40만 원, 생일 40만 원, 어버이날 40만 원으로 1년에 기본적인 기념일을 챙기는 것만 해도 160만 원이다. 생일을 제외한 날은 집집마다 10만 원씩 드린다 한들, 못해도 100만 원 이상의 돈은 그냥 나간다. 그에 추가로 별도의 용돈까지 챙겨야 한다면 생각만으로도 벅차다.
난 그렇게 돈을 드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 돈을 그렇게 쓰고 싶지 않았다. 돈이 삶의 전부는 아니지만 애써 궁핍해질 필요는 없잖은가. 돈은 꼭 필요할 때만 쓰고 싶었다. 효도도 순서가 있으며 상황에 맞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난이 곧 불행은 아니다. 하지만 점점 가난해지기만 하는 결혼생활은 부부관계에 금이 갈 만한 소지를 끌어당기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달리 말해 가난 자체는 죄가 없지만, 분명 가난하지 않았는데 가난해지는 건 죄를 따져볼 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는 곧 '책임감 결여'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부모님들을 위해 주저 없이 돈을 쓸 만한 상황이 있다면 딱 세 가지라고 본다. 필요한 물건이 있거나, 생계유지가 마땅치 않거나, 몸이 편찮으시거나. 현재는 양쪽 집안 어른들 모두 몸 건강하시고, 생활적인 문제도 없으며, 서로 사이까지 좋다. 그러니 굳이 용돈을 드려야 할 필요성을 더 느끼지 못하는 바이다.
특히 젊을수록 체면 차릴 게 아니라, 부모님들이 생계유지가 가능할 때 최대한 돈을 많이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말이다. 당장의 지금이 괜찮다면 굳이 더 괜찮아지려고 애를 쓸 게 아니라, 훗날의 괜찮지 않은 상황을 대비하는 게 맞다고 여겼다.
금수저도 아니고 억대 연봉을 받는 것도 아닌 맞벌이 부부가 필요 이상으로 부모님을 챙기는 건, 가라앉는 배에 탑승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회적 분위기에 못 이겨 남들만큼 챙겨 드리면 당장에는 마음이 편할진 모르겠으나, 훗날 되돌아 올 후폭풍을 감당하지 못할 게 뻔했다. 더군다나 그런 후폭풍을 직격탄으로 맞은 사례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나의 부모님처럼 말이다.
나 혼자가 아닌 배우자와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이상, 돈이라는 수단은 최대한 현명하고 적절하게 활용해야 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뜻밖의 일들이 우리 부부에게도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들을 수월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돈은 모을 수 있을 때, 지킬 수 있을 때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갖은 일들을 겪어왔고 이미 잘 지내고 있는 부모님들보단, 앞으로 마주하게 될 숱한 고난과 역경들을 이겨내며 꿋꿋이 잘 살아가야 할 날이 많이 남아 있는 우리가 더 중요했으니까.
어릴 적부터 어른들에게 자주 듣던 말이 있었다.
"자식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는 그저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거야."
라고 말이다.
그 영향으로 항상 마음 깊이 되뇌이던 게 있었다.
'최고의 효도는 내가 잘 살아가는 것이며, 만약 결혼하게 된다면 아내와 사이좋게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부모님에겐 더없이 큰 보람이 될 것이다.'
라고 말이다.
더불어 훗날 만나게 될 우리 아이에게 있어서도 최고의 교육은 다음과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부모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점차 나아지고 있는 한 인간의 삶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이상적인 본보기이자 훌륭한 교육이 될 것이다.'
라고 말이다.
고로 나와 아내는 우리가 함께 꾸려나갈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통념이 빚어낸 '규칙'을 어기기로 했다. 그러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되려 부모님에게 살림이 여의치 않다며 경제적인 지원을 요청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으니까.
욕먹는 한이 있더라도 새는 돈을 막을 수만 있다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일들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무너지는 건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혹여나 그런 순간을 맞닥뜨리게 될지언정, 만약 그 탓이 안일한 사고방식과 미흡하기 짝이 없는 대비에 기인한 거라면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난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한 여자와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남자로서의 책임을 다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내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바쳐도 아깝지 않을 만큼 기꺼이 헌신할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난 축복에 감사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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