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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Mar 14. 2024

인생을 낭비하지 않을 법한 토의주제

한 권의 책, 다양한 사람, 다양한 질문


다음은 책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를 함께 읽은 독서모임 회원분들이 개별적으로 준비한 토의주제에 대해 답변을 마련하고자 쓴 글입니다.


정OO
Q. 내면의 결핍을 안고 있는지, 혹시 있다면 위안을 어디서 어떻게 얻는지

원래는 내면의 결핍이 심하다고 여기는 편이었다. 어떡해서든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나머지 주제도 모르고 까불다가 제 풀에 지쳐 방전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심지어 그 당시엔 왜 도중에 포기하게 되는지 그 이유조차 알지 못했다. 덕분에 낭비한 시간들이 많았다.


다행히 요즘은 타인의 인정을 얻고자 예전만큼 설치지 않는다. 되려 전에 없던 풍요와 행복감을 한껏 누리고 있다. 글쓰기를 발견하고 남는 시간엔 온전히 글쓰기만 하면서 보내다 보니, 그 이상 필요한 게 많이 없어졌다.


특히 이런저런 결핍을 내면이 아닌 외부에서 메우는 건 더 이상 마음이 가지 않는다. 이를테면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진다거나, 인간관계에 필요 이상의 노력을 들인다거나, 자극적인 컨텐츠를 소비하며 시간을 때운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경험상 자극이 강한 것일수록 오래가는 법이 없고, 그에 따른 대가도 치러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평소 책 읽고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안을 얻는다. 독서만 할 때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글쓰기를 겸비하다 보니 마치 삶의 형태가 한 단계 위로 올라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평소 쓰는 글들은 대단한 게 아니다. 단지 마음에 흐르는 생각들을 있는 그대로 들어내 키보드로 타이핑하는 게 전부다. 하지만 그 단순한 과정을 통해 얻게 되는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하루하루 성장하는 기분을 만끽하고,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날 따라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을 통해 남다른 보람마저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각종 제안이 들어오는 건 덤이다.



이OO
Q. 나와 다른 사람을 수용한 경험, 행복의 정의, 행복의 기준

 너와 나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차이'는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것을 다르다는 이유로 굳이 납득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애초부터 세상엔 맞고 틀린 것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한편으로는 오히려 다름에 대하여 신경을 꺼버리는 게 건전히 납득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경험상 '다르면 다른가 보다'하고 대충 넘기니까 더 이상 그런 문제로 골치 아플 일이 없어졌다.


사실 독서를 하지 않았다면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긴 하다. 책을 읽은 덕분에 너와 나 그리고 관계라는 것에 대한 본질적인 요소들을 생각해 볼 기회가 많았고, 그 과정에서 '다름에 대한 불만'은 마음에 품으면 품을수록 도움 될 게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행복에 대한 나만의 기준은 확고하다.


'크게 불행하지도 않으면서 행복해야 한다는 집착도 없는 상태'


요컨대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편안한 상태 그 자체라고 본다. 때문에 평소 자극적인 것들을 경계하는 편이다. 고요하고 잔잔한 게 좋다. 가령 기념일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어버이날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날들 말이다. 그런 날들은 애초에 내가 정한 날도 아닐뿐더러, 나와 관련된 날은 더더욱 아니다.


기대를 한다는 건 마치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는 것과도 같다. 하지만 풍선은 그냥 풍선이다. 바람 넣고 빵빵해진다고 풍선이 대단한 것으로 바뀌진 않는다. 물론 바람이 든 풍선은 어느 정도 높은 곳까지 날아오르긴 하겠지만, 이내 터질 것이고 그럼 갈기갈기 찢기고야 말 것이다. 아마 그때쯤 하는 게 '후회'가 아닐까 한다.


사실 난 생일 같은 개인적인 기념일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진 않는다. '특별한 날'을 정하고 그런 날을 기대하고 볼수록,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평범한 날'의 가치는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난 평범한 일상을 평범하지 않게 보내는 게 좋다. 그게 내가 안고 있는 평안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그런 이유로 난 소중한 사람한테 주는 특별한 선물은 웬만하면 기념일을 피해서 주는 편이다. 내 올곧은 진심이 남들이 정의한 의미에 묻히지 않았으면 하니까.



박OO
Q. 타인의 칭찬이나 비난에 일희일비하게 되는데, 자신의 가치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하는 칭찬이나 비난이 '나를 향한 게 아니다'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전처럼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손가락이 아무리 나를 향해 있어 보여도, 상대방은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것도 지극히 본인만의 주관적인 잣대로써 말이다.


타인은 나를 전혀 알지 못한다. 단지 '알고 있다'라고 생각할 뿐이다. 나조차도 나를 잘 모르는데, 상대방이 나에 대해 이런저런 언급을 하는 건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흘려들을만하다. 비단 이건 칭찬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사람은 생각보다 사람에 대해 잘 모른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거라곤 '어림짐작' 정도가 고작인 게 현실이다.


자신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그에 따라오는 느낌이 어떤지를 따져보면 그나마 판가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특히나 요즘은 역량이 중요한 시대다. 가치는 곧 역량이며, '역량이 있다'는 건 사람들의 니즈(Needs)를 충족시켜 줄 만한 무기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가치 있는 인간이란 곧 재주 많은 자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나 같은 경우엔 글쓰기가 나름의 재주라고 보기 때문에 내 글을 읽는 자들의 반응으로써 나의 가치를 어림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그런 것들을 굳이 마음으로 가져와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한다. 방해만 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겐 내 가치가 높냐 마냐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난 오늘도 글을 썼냐 안 썼냐가 중요하다.


설사 내 가치가 실질적으로 높다고 한들 그 또한 일시적일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는데, 그보다도 더 빈번하게 나의 마음을 비롯한 전반적인 상태도 변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일시적으로는 한 사람의 가치가 오르내릴 순 있겠으나, 어느 한 지점에 계속 머무를 일은 없다는 말이다. 때문에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오늘이라는 가능성'안에서 해내는 데만 집중하며 살아갈 뿐이다.


또 그게 행복한 삶이라고 믿는다.



김OO
Q. '모든 삶의 범위에 제한을 두면 행복해진다'에 대한 의견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도 확실한 방법은 일상을 단순화시키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 실제로 '이것저것 하던 일상'에서, '한 가지만 하는 일상'으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아주 안정적인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출도 없고, 가진 물건도 없으며 친구들도 만나지 않을뿐더러, 하는 거라곤 읽고 쓰는 일밖에 없다. 그런 요즘의 난 그 어느 때보다도 흡족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물론 그 이상의 성과도 따라온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간절히 바라기도 하지만), 그건 어느 정도 운도 따라야 하는 일이기에 오늘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만 신경을 쓰고자 노력한다.


반면에 삶의 범위가 넓어지면 오히려 불안해질 일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뚜렷한 한계가 있다. 인지할 수 있는 범위도 그렇고, 인식할 수 있는 것도 그렇고, 개개인의 능력도 그러하다. 때문에 '삶의 범위가 넓어진다'라는 건 생각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뿐이지, 현실적으로는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라고 본다.


더군다나 좋은 일을 경험하면 더 좋은 일을 맞이하려 하고, 나쁜 일을 겪으면 어떡해서든 그런 일을 피하고자 집착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때문에 한 사람이 삶의 범위를 넓히려고 들면 오늘이라는 현재에 머물지를 못하고, 밑도 끝도 없이 계속해서 '더 넓은 세상'만을 추구하느라 시간을 흘려보낼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마치 만족하는 법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마음으로 여기는 삶의 범위는 넓히되, 눈으로 보는 삶의 범위는 좁히는 게 일종의 '비결'이 아닐까 한다.


황OO
Q. '존경받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난 고민도 않고 사랑받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존경한다'는 건 상대방의 극히 일부적인 요소만을 겨냥한 데서 일어나는 마음이고, '사랑한다'는 건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품는 데서 오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난 존경하는 사람이 없다. 겉으론 아무리 달라 보여도, 알고 보면 너도나도 다 똑같은 게 바로 인간이니까.


만약 누군가가 자신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더라도 '난 그래도 너를 다 알지 못한다'를 시전 할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의 한계다. 모르는 사람을 굳이 존경해서 좋을 건 없다. 괜히 누군가를 높게 들추면 그와 비교되는 나 자신만 낮아질 뿐이다.


비슷한 이유로 난 위인도 딱히 존경하지 않는다. 알 수 없는 경로로 전해 내려오는 그들의 이야기는 본인이 풀어낸 썰도 아니거니와, 설사 그들이 살아 돌아와 본인의 영웅담을 직접 들려준다고 한들 영화 한 편 보듯 흘려듣고 말 것이다. 난 '사람'이 훌륭한 게 아니라, '상황'이 훌륭한 사람을 빚어낸다고 보는 편이기 때문이다.


세간의 위대한 업적을 마주하면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이런 행동도 해낼 수 있구나'라고만 받아들이지, '아 그분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야'라고까지는 생각지 않는다. 그럴 만한 상황과 약간의 우연이 더해지면 누구든지 영웅이 될 수도, 누구든지 악마가 될 수도 있는 게 인간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유OO
Q.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본인만의 방법

남들과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서로 간의 상호작용을 피해 갈 길이 없는 나로서는, 타인의 평판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심신이 휘둘릴 정도로 마음을 쓰진 않는다. 남들은 그저 그들만의 세계에서 사유할 뿐이고 나 또한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요컨대 너와 난 함께 있으면서도 각자 다른 세상을 살아간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게끔 시스템화되어 있지만, 대신 '선택권'이라는 게 존재한다. 달리 말해 외부적인 영향의 개입을 막아낼 도리는 없지만, 그 이후의 해석과 받아들임은 오로지 개개인의 역량과 지혜에 맞게 나뉜다는 것이다. 내가 평소 마음공부를 부단히 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몰입할 수 있고 내 시간과 에너지를 기꺼이 쏟아부을 만한 '일'을 찾는 것이다. 자신만의 과업을 찾아 몰두함으로써 일상이 바로 잡히면, 타인의 평판뿐만이 아니라 자신을 옭아매는 거의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사람이 한곳에 집중하면 다른 것에 신경 쓸 만한 여력이 없어지는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능력이 제한적이라는 것에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나 역시도 가족문제, 회사문제, 친구들에 관한 문제들이 여전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여의치 않을 수 있는 건,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글을 쓸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같은 것들 말이다.


정말 인생의 과업이라고 할 만한 것을 찾아 그 일로써 하루를 충실히 보낼 수 있는 상태로 진입한다면, 인생 대부분의 문제들은 자연스레 해결될 거라고 감히 확신해 본다. 실제 내가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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