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감정에는 총량이 있다
대기업에 취직하고, 외제차를 타고, 인프라가 훌륭한 새 아파트에 입주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그 모든 과정의 종착역은 어떤 감정을 얻기 위함이다. 인간은 그런 감정적 보상이 없으면 생각하지도 움직이지도 않는다. 의욕이 생기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그런 감정들은 꼭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아무것도 아닌 일들에서도, 간단한 취미생활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원대한 꿈을 이룬 성공인들이 멈추지 않고 계속 뭔가를 시도하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어떤 감정이든 간에 모든 건 전부 다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그중 유독 '나 성공했어요'라고 떠벌리는 사람은 전혀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여전히 어느 한쪽이 채워지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을 뽐내지 못해 알단 난, 그러니까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을 동경하고 그들과 비슷해지고 싶어 한다. 동시에 모든 성공인들이 다 그럴 거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진정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굳이 사람들 앞에 나설 이유가 없으니까. 이미 모든 게 충분한데 뭘 더 얻겠답시고 나서려 할까. 뭔가를 얻게 되면 그만큼 뭔가를 내어주게 되어 있다. 세상의 원리가 그렇다. 실용적인 지혜는 대부분 은둔의 고수들이 거머쥐고 있다. 강하지만 눈에 띄지 않고 조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말이다. 운이 좋지 않고서야 그런 사람들을 만날 일도, 만난다 하더라도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게 될 일은 거의 없다. 때문에 본인 인생의 돌파구는 스스로 찾아나가는 게 가장 지름길인 걸지도 모른다.
'진짜'는 먼저 손을 내밀지 않는다. 그들은 필요한 게 없다. 원하는 건 이미 모두 갖고 있다. 반면에 '가짜'는 대뜸 뭔가 대단한 걸 주겠다며 친절하게 다가오는데, 그런 부류가 있다면 경계부터 하는 게 좋다. 내게서 뭔가를 앗아갈 목적이 있을 확률이 부단히 높으니까. '살면서 대가 없이 무료봉사를 한 적이 얼마나 있었는가'를 떠올려 보면 쉽게 답이 나오는 문제다.
남들의 부러움과 인정만 얻어가는 사람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은 참 알면 알수록 알 수 없는 묘한 곳이다. 하나를 주면 그 이상을 얻게 된다. 그리고 뭘 받으면 그만큼의 뭔가를 내어주게 된다. 의도와는 관계없이 말이다. 화려한 명성과 호화로운 삶을 누리는 대신 대중들에게 평범한 일상을 반납할 수밖에 없는 유명인들을 봐도 그렇다.
별 볼 일 없는 일상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연예인이라는 직업만큼 위태롭고 불행한 게 없다고 본다. 그게 더 낫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겠으나, 내 기준에서는 1만 내주어도 얻을 수 있는 행복을 10이나 줘야 겨우 얻을까 말까 한 존재로 전락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혹은 삶 전체를 통틀어 누릴 법한 행복을 단기간에 몰아 받은 나머지, 이후의 행복을 기대할 수 없거나.
인간의 감정도 총량이라는 게 있지 않을까. 때 이른 성공은 미래의 행복을 성공이라는 수단으로 미리 땡겨와 쓰는 일일지도 모른다. 일찍이 빛을 본 사람들이 어느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이런 생각이 아주 엉터리가 아니라면, 적당한 행복감을 전 생에 걸쳐 소소하게 맛보며 지내는 것도 꽤 괜찮은 삶이 아닐까 한다.
뭔가를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불행할 일이 없거나, 불안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에 그딴 건 없다. 고로 물질적 추구는 그리 현명한 생각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게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사람도 있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 더 큰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게 바로 인간이고 세상이다.
채울 거면 안에서부터 채워나가는 게 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