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주관적인 독서와 글쓰기의 차이점
독서
나는 항상 말하곤 한다. "책은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예요."라고 말이다. 군생활 도중 우연히 읽게 된 소설책을 시작으로 장르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어왔다. 사실 장르가 뭔지도 몰랐다. 에세이가 뭔지도, 자기계발서가 뭔지도 모를 만큼 무지했다. 쥐뿔도 모르면서 욕심만 많아가지고 침상 옆에 7,8권씩 쌓아가며 읽어왔더랬다.
'책 읽는 게 노는 것보단 낫겠지'라는 생각도 있긴 했지만, '할 게 없어서' 책을 읽었다는 게 거의 진실에 가깝다. 그러니까 별 기대 없이 책을 가까이한 것이었다. 근데 그런 것치곤 머릿속을 지배하던 사고방식 체계가 뒤집어질 정도로 난 많이 변했다. 이를테면 존경할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인사를 하지 않던 사람들에게도, 존중받아 마땅한 별개의 존재로 바라봄으로써 인사를 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또한 그동안 '알고 있다'라고 생각하던 것들을 의심하고 사유함으로써 나름의 사고체계를 정립해 왔다. '이제라도 깨닫게 돼서 다행이다'라고 생각될 정도로 세상엔 말도 안 되는 엉터리 같은 것들이 많았다. 특히 사회적 통념이나 문화 같은 것들은 재정의하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 것들이 얼마나 사람들의 관념을 옭아매고 있는지 직접 파헤쳐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덕분에 이전처럼 꼭두각시 같은 삶은 더 이상 살지 않게 되었다. 그조차 양날의 검과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다만, 너무 책만 읽었다는 부분만큼은 좀 아쉽다. 독서를 많이 하면 할수록 좋기만 할 줄 알았는데, 너무 읽기만 하는 건 또 그것대로 문제였다. 독서는 명확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책은 독자 내면에 균열을 일으킬 만한 양질의 자료가 방대하게 들어있다. 하지만 인생이 변하는 데 있어서 생각이 바뀌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실적인 외부행동이 필수적으로 따라야 한다. 난 그런 것도 모르고 실제로 뭘 할 생각은 않고 주야장천 책만 읽어댔다. 책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지만 책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였다. 책이 보여준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건 별개의 일이었다.
"책도 읽다 보면 거기서 거기다."
"독서만 해가지고서는 현실적으로 유의미한 변화 혹은 뚜렷한 성과를 달성할 수는 없다."
"전에 없던 새로운 내용이 담긴 책은 그 어디에도 없다."
어느 정도 남부럽지 않을 독서량을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대부분은 위와 같은 말들에 공감하지 않을까 한다.
독서는 남의 생각을 읽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또 책을 읽기만 하는 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다. 그러니 책 많이 읽는 자랑은 자랑이기도 하면서, 충분히 부끄럽게 여길 만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난 그런 것도 모르고 '그래도 뭔가는 하고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는 살고 있다'라는 착각 속에 빠진 채, 적지 않은 세월을 글자가 찍힌 종이 앞에서 허무하게 흘려보냈다.
중간중간 께름칙한 기분이 들 때마다 더 많은 책을 읽는 게 최선의 선택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그때 내가 취해야 했던 최고의 선택은 독서를 멈추는 것이었다.
글쓰기
난 새벽기상을 시작하면서부터 글쓰기를 함께 시작했다. 전날 야식을 먹거나 술을 먹으면 새벽기상은 실패하더라도, 글 쓰는 것만큼은 빼먹은 적이 없다. 매일의 흔적을 날짜별로 기록해두지 않아서 감히 100%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99.9%는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글을 썼을 것이다. 1년 동안 브런치에 발행한 글만 해도 총 600편이 넘어가는 걸 보면 말 다했다.
글쓰기는 독서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점이 많았다. 일단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글을 쓰는 건 능동적인 활동이라는 점이었다. 달리 말해 독서가 남의 생각을 통해 간접적인 경험을 하는 것이라면, 글쓰기는 나의 생각을 고스란히 글로 씀으로써 자기 자신을 직접 발견하거나 체험하는 일이었다. 독서는 하면 할수록 지식만 쌓여가는 데 비해, 글쓰기는 하면 할수록 나를 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당연하게도 글쓰기의 비중은 독서를 압도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나와 '더욱더'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쓰는 글이 실제 내 생각이 아니라 알고 보니 남의 생각이었던 적도 많았으나, 그것 자체도 하나의 발견이자 경험이고 성장이었다. 사실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좋았다기보다는, 기억나는 내용들이 별로 없어서 찝찝한 마음이 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글쓰기는 아니었다. 글을 쓸 때는 힘든데, 어떡해서든 쓰고 나면 기분이 좋았다. 후련하고 시원했다. 힘들게 운동하고 나면 개운한 것처럼 말이다.
독서는 적당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글쓰기는 아니었다. 글쓰기는 정말 하면 할수록 더 많이 써 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지기만 한다. 한 편의 글을 쓸 때마다 +1의 성장을 맛보지만, 동시에 -2의 부족함을 느낀다. 분명 당시에는 잘 쓴 글이라고 생각했던 글도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면 127% 정도의 확률로 불만이 일어난다. '왜 이렇게 썼지', '분명 퇴고를 했는데도 이 모양이네'와 같은 말만 생각난다. 그런 형편없는 글을 읽고도 좋은 반응을 해주신 독자분들에게 감사하면서도 죄송할 따름이다.
세간에는 좋은 글쓰기책도 훌륭한 글쓴이도 많지만, 글쓰기는 혼자 쓰고 혼자 배우며 혼자 깨달아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가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작법서나 글쓰기와 관련된 에세이를 읽거나 강의를 들어도 좋지만, 들이는 품에 비해서 얻는 건 실로 미미할 것이다. 그간의 글쓰기 경험이 없을수록 더욱더 말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독서와는 다르게 적당히는커녕 있는 힘을 쥐어짜내서라도 더 많이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당히 취미로써 즐기고 말 게 아니라, 나처럼 글쓰기를 인생의 과업으로 삼거나 글로써 뭔가 성과를 이루고 싶은 사람일수록 말이다.
독서한 세월을 영광스럽게 여기지만, 진작에 글도 좀 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