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찾는 맛집의 현실
얼마 전 아내와 함께 여수로 1박 2일 여행을 갔었다. 여수는 처음 방문하는 곳이었는데, 대체적인 느낌이 뭔가 통영이랑 비슷한 것 같았다. 첫날은 가볍게 바닷바람 쐰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즐겼다. 그리고 이틑째 날 아침에 우린 아침밥을 먹으려고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을 검색하여 네비를 찍고 찾아갔다.
식당 근처에 다다랐을 때 주변을 둘러보니 시장판이었다. 왠지 한 블럭만 더 갔다간 주차할 공간이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찰나에 문 닫힌 은행의 주차장에서 딱 한 대 비어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곳을 보자마자 놓칠세라 잽싸게 핸들을 돌려 주차를 했다.
'센스 좋았다'라는 생각을 맘 속으로 몰래 여민 채, 시원한 아침공기를 만끽하며 식당까지 걸어갔다. 주말 이른 아침부터 아내와 함께 낯선 장소에서 걷고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분명 골목길로 들어서기 전까지는 길가에 사람들이 별로 없었는데, 우리가 방문하기로 한 식당이 있는 골목엔 웨이팅 하는 이들이 바글바글했다. 우연히 찾아간 그곳이 하필 유명한 맛집인 모양이었다.
우리 부부는 그 광경을 보자마자 1초 만에 돌아섰다. 아침부터 그렇게 줄 지어 기다리며 배를 채우기는 싫었다. 마침 전날에도 맛집이라며 찾아간 곳의 음식들이 그저 달고 짜기만 해 실망을 샀던 참이어서 한 치의 고민도 않고 가차 없이 돌아설 수 있었다.
헛걸음했다 생각하니 괜스레 배가 더 고파지는 것만 같았다. 우린 골목 밖에서 다음 행선지를 찾기 위해 잠시 서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서 다른 식당을 찾느라 옆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이전 골목에서도 식당 한 개 있던데 간판이 심상치 않더라. 거기 한 번 가 보자."
"음.. 그래."
아내의 반응은 미적지근했으나 마땅히 다른 곳도 갈 데가 없었던 관계로 마지못해 나를 따라오는 듯했다.
두 블럭 정도를 더 걸어가니 조금 전 눈에 들어왔던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그곳을 다시 보아하니 내가 발견한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걸 봤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골목 밖에선 간판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혹시 아직 문 안 열었나'라는 미심쩍은 마음으로(밖에선 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 문을 살짝 열어젖히니 우리 할머니보다 나이가 조금 적은 듯한 사장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물론 웨이팅은 없었고, 넓지도 좁지도 않은 식당 안에 손님은 우리 둘 뿐이었다. 왠지 직감적으로 잘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장님, 백반 두 개요~"
기다리는 동안 가게 내부를 둘러보니 오래된 식당의 흔적이 곳곳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옛 건물을 전시한 박물관을 방문하기라도 한 것만 같았다. 사진도 몇 장 찍었다. 아내와 난 '느낌 좋음'이라는 메시지를 눈빛을 통해 주고받으며 말없이 음식을 기다렸다.
뭘 굽는지 지글지글거리는 소리도 나고, 칼이 식재료를 갈라 도마와 부딪히며 나는 송송송송 소리도 났다. 특히 칼과 도마의 합주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ASMR 같았다. 분명 아내가 요리할 때도 비슷한 소리가 났던 거 같은데 뭔가 모르게 달리 들렸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는 그런데서도 차이를 벌리는 건가 싶었다.
잠시 후 테이블을 가득 메우는 한 상이 차려졌다. 다행히 좋은 예감은 어긋나지 않았다. 막 대단한 반찬은 없었지만, 흡족감이 차오를 만큼 정성이 가득한 밥상이었다. 음식들이 무리하게 짜거나 달지도 않아 먹기에도 좋았다. 게가 들어간 찌개가 특히 시원해서 좋았다. 된장찌개는 아닌 것 같은데, 된장찌개라고 해야 될 것 같은 맛이었다.
이전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식당에서 기다리지 않기로 한 건 좋은 선택이었다.
"쩌~기 옆에 OOO식당 가 봤어?"
열심히 밥 잘 먹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사장님이 대뜸 물어보셨다. 사장님이 언급한 식당은 우리가 앞서 찾아갔던 사람들이 줄 지어 서 있던 그곳이었다.
"아.. 안 그래도 거기 먼저 갔다가 사람들 너무 많아서 여기 왔어요."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서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난 그 집에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는지 모르겠어."
이처럼 운을 떼시길래 그냥 하시는 소리겠다 싶어 먹던 밥을 계속 먹으며 대충 흘려들으려 했다.
"거긴 게장도 수입산 갖다 쓰기 때문에 현지인들은 아무도 안 가거든. 반찬도 사다가 쓰는데 그걸 사람들이 줄까지 서가면서 먹으려고 하니까 기가 찰 노릇이지."
"아, 진짜요?"
반찬 사다 쓴다는 말에 흠칫 놀라서 밥 먹다 말고 되물었다.
"거기 사장님이 나이가 많이 드셔서 허리가 완전히 굽었어. 그래서 반찬을 사다 쓰지 않고는 감당이 안 된디야."
맛집의 현실인가 싶었다.
근데, 그 집만 그럴까.
난 맛집 찾아가는 취미가 없다. 김치 하나만 있어도 세상 맛있게 밥 한 그릇 뚝딱 할 수 있는데, 굳이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자 애를 쓰지 않는다. 사실 더 맛있는 음식이라는 게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맛이 다른 음식은 있어도 더 맛있는 음식이랄 게 있을까라는 의문을 남몰래 품곤 한다. 사실 배만 채우면 장땡이다.
물론 맛집을 검색할 때가 아주 없진 않다. 가끔 혼자 여행을 떠나는데(둘 이상은 관광이라고 여기는 편이다) 그럴 때는 맛집을 찾아간다. 하지만 사람 생각하는 게 똑같은 건지 내가 검색한 집이 하필 유명했던 건지는 몰라도, 발길 닿는 곳마다 사람들이 줄 서 있지 않은 곳이 별로 없었다.
기껏 먼 걸음하여 찾아간 곳에 사람들이 줄 서 있으면 내가 항상 취하는 공략이 있다. 그건 바로 '옆집 아무데나 들어가기'였다. 그 전략은 거의 대부분 성공적이었다. 맛집 근처에 있는 식당들은 음식맛들이 상향 평준화라도 된 것만 같았다.
언제 한 번은 제주도에서 고기국수로 유명한 식당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줄 지어 있었다. 그 옆에 문이 활짝 열린 다른 고기국숫집도 있었는데 그곳은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난 어김없이 루틴을 실행에 옮겼다. '옆집 아무데나 들어가기'말이다.
줄 지어 기다리는 사람들을 지나쳐 옆집에 당당히 혼자 들어가서는 가장 안쪽 자리에 앉아 고기국수를 주문했다. 그런데 갑자기 내 뒤를 이어 사람들이 들어오더니, 파리만 날리던 식당은 어느새 만석이 되었다. 내가 앉은 4인용 테이블에 처음 보는 남자분과 합석을 해야 했을 정도였다. 세상 사람들은 누군가의 뒤를 따라 밟는 걸 참 좋아하는 듯했다. 하긴, 그게 편하긴 하니까 충분히 이해는 한다.
경험상 맛집이랍시고 찾아간 곳마다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정도로 인상 깊었던 곳은 거의 없었다. '이 정도면 줄 서서 기다릴만하지'라기보다는, '맛이 없는 건 아닌데 줄 까지 서 가며 먹을 정도는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드는 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순수하게 음식맛으로만 승부를 보는 맛집은 별로 없다. 음식의 맛보다는 무슨 특별한 서비스가 있다든지, 어떤 계기로 유명세를 타서 그 영향으로 명성을 이어가는 곳이 더 많았다. 사람들이 카페를 찾을 때도 커피맛이 아니라, 카페의 구조를 보고 찾아가는 것과도 비슷한 원리라고 본다.
사람들이 맛집을 찾아가는 것도 무조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일념 하나만이 이유가 아닌 것 같았다. 시간적 혹은 경험적으로 손해 보기 싫은 마음, 남들 다 먹고 다닌다는 거 나도 한 번 먹어보고 싶은 마음 등이 복잡다단하게 얽혀서 맛집을 찾는 게 아닌가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어떤 정보를 얻을 때면 '내가 직접 찾았다'라고 여기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거의 대다수다. 인터넷은 어느 정도 '짜여진 판'에 의해 돌아가기에 '그들'이 내주는 정보들만 얻어갈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래 저래 다르게 검색해서 맛집을 찾아가도, 가는 곳마다 희한하게 사람들이 줄 지어 서 있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집의 맛과는 관계없이 말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다 비슷해서 그렇지 않을까'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세간이 돌아가는 정황상 '사람들의 생각을 다 비슷하게끔 만들어놓는 무언가'가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싶은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라지만, 오히려 그 흘러넘치는 정보들로 인해 시야와 선택의 범위가 극도로 제한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차라리 기분 탓이라고 하고 싶지만, 감히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라는 게 지극히 자명한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