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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Jun 15. 2024

이슬아 작가 너머에 있는 나를 돌아보다

이슬아 작가님의 강연을 보고 나서


어느 날, 아내가 이슬아 작가님의 강연이 김천 율곡도서관에서 열린단 정보를 입수하여 공유했다. 덕분에 말로만 듣고 사진과 영상으로만 접했던 이슬아 작가님을 실제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었다. 400석이 만석인 강연장에 좌석이 80% 이상은 들어차 있었다. 확실히 인기가 많은 분이었다. 사람 자체가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나도 언젠간 이슬아 작가님처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떠들 기회가 왔으면 좋겠단 마음이 들었다.


그날 강연의 제목은 '글쓰기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였다. 그래서 난 이슬아 작가님만의 글쓰기 철학과 삶이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강연 내용은 예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들어보니 '글쓰기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가 아니라, '글쓰기는 어떻게 나의 삶을 바꾸었나'에 가까웠다. 쉽게 말해 글쓰기와 삶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슬아 작가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이다.


사실 그 부분이 좀 아쉬웠다. 왜냐하면 이슬아 작가님의 서사(일간 이슬아, 남편분, 출판사 사장 등)는 이젠 너무도 유명해서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은 익히 알고 있을 법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직접 발걸음 하여 뵌 만큼 세상에 널리 퍼진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물론 현장반응은 좋았다. 그저 내 욕심이 컸던 걸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강연을 듣다 보니 이슬아 작가님은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처럼 보였다(원래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지만). 도전적이고, 과감하고, 자기 삶을 당당하게 살아내는 사람 같았다. 나라면 과연 저분처럼 출판사를 차릴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내 글을 사람들에게 직거래 형식으로 팔 수 있었을까. 부모님을 직원으로 채용할 수 있었을까. 요즘엔 드라마 각본도 쓰신다는데, 과연 내가 그 정도까지 분야를 넓힐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평소 집중력이 좋지 않아서 돈 주고 듣는 강연도 툭하면 엉뚱한 생각을 하느라 놓치는 경우가 많은 나였다. 하지만 이슬아 작가님은 뭔가 동종업계 동료(?)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해서 자세도 앞으로 기울이면서 최대한 집중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면서 이슬아 작가님이 서 있는 공간에 나를 대입시켜보기도 하고, '나라면 어떤 내용을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종종 했다.


강연 후반부엔 이슬아 작가님의 노래를 들어볼 수가 있었는데, 이슬아 작가님은 노래실력도 좋았다. 음색이 그냥 이슬아였다. 개성이 강한 줄은 알고 있었으나, 모든 것에 자신을 제대로 녹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슬아 작가님이 준비한 강연이 끝난 후에는 질의응답 순서가 이어졌다. 그때 맨 처음에 나온 질문은 바로 '글쓰기는 재능이 있어야 되는 건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글쓰기를 잘할 수 있는지'였다. 참 그 자리와 어울리는 질문이면서도 동시에 명확하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기도 했다. 더불어 글과 관련된 자리라면 언제나 나오는 질문 중 하나였다.


그만큼 한 두 번 생각해 본 주제가 아니었지만, 나도 속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일단 '어떻게 하면 글쓰기를 잘할 수 있을까요'에 대한 문제는 답이 명확했다. 그건 바로 글을 많이 써 보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많이 써 보는 것만큼 필력을 높이는 데 있어서 최선의 답은 없다고 본다. 실제 내가 경험한 일이기도 하고,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그 생각은 아마 변함이 없을 것 같다.


다만 재능에 대한 부분이 의외로 골치가 아팠다. 원래 재능과 글쓰기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여겼었다. 재능이 있건 말건 글을 많이 써 보기만 하면 누구나 다 글을 잘 쓰게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난 여태껏 단 한 번도 내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그나마 지금처럼 글을 쓸 수 있게 된 건, 시도 때도 없이 틈만 나면 글을 써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연장에서 이슬아 작가님의 말을 듣다 보니, '틈만 나면 글을 써온 게 재능은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재능이라고 콕 집어 말할 순 없었지만, 재능이 아니라고 하기에도 뭔가 딱 잘라 말하기가 애매한 부분이었다. 가만 보면 글쓰기에 관심 있다고 해서 틈만 나면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뭐가 맞는 걸까. 글쓰기와 재능의 연결고리는 두고두고 생각해 볼거리라는 걸 새삼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작가의 삶을 꿈꾸는 것에서 작가의 삶을 살아내는 과정으로 넘어가는 사람 중 한 명이 되는 바람에 오늘의 강연을 맞이할 수 있었다. 만약 글쓰기를 삶에 들이지 않았다면, 이슬아 작가님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분의 강연을 들어 볼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테다. 오늘 김천 율곡도서관에서 열렸던 이슬아 작가님의 강연은 의외로 아쉬우면서도 의외로 좋은 점이 많았던 오묘한 시간이었다.


그나저나 그분은 참, 남들로 하여금 얕지 않은 사유를 하게 만드는 남다른 매력이 있었다. 내가 되고자 하는 존재에 상당히 근접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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