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어른이 될 게 아니라
어릴 땐 세상 모든 어른들이 하늘만 같았다. 어른이라면 모르는 게 없고, 그들이 하는 말이라면 당연히 모두 맞는 말인 줄 알았다. 그래서 엄마가 갑자기 화를 내면 무조건 내가 뭘 잘못했겠거니 생각했다.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는 인생의 화풀이를 내게 할 거라고는 그 당시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든 어머니든 회초리를 들면 일단 내가 무조건 죄를 지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여기지 않으면 날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를 원망하게 될 일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가 소위 어른이라고 불릴 만한 나이가 되어 보니, 여태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작자들은 모두 어른이 아니었다. 아니, 세상에 어른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혼자선 생존할 수 없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니만큼 다들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다들 엇비슷하게 행동하는 것일 뿐이었다.
사실 어른 같은 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하지만 문제는 어른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자들이 본인이 어른이라는 이유로, 어른이 아닌 이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어른들 중에서 진짜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두 사람이 평생 함께 하기로 약속한다고 해서, 서로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올린다고 해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해서, 심지어 혼인서약서를 쓴다고 해도 실제 마음이 이어지는 마법은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어른도 마찬가지였다. 본인이 어른이라고 스스로 여기는 사람은 있겠으나, 남들이 어른이라고 추켜세우는 이는 존재하겠으나, 실제로 진정한 어른 따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어른 같아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더 점잖을 뿐일 것이다.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더 남들을 배려할 줄 아는 것뿐일 것이다. 타고난 성향 자체가 온순하고 마음에 뿔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면 또한 그들의 존재를 형성하고 있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털어서 먼지 나오지 않는 사람은 없다. 고로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 중에 떠올리는 어른 같은 건 실제로는 없다고 본다. 단지 성인은 곧 어른이어야 하고, 철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들 믿고 싶으니 다들 서로가 서로를 어른이라고 인식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까 한다.
그럼에도 어른 같아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실제 어른 같은 면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지향하는 모습을 상대방으로부터 마주해서 그런 걸 거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다혈질인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을 보며 어른스럽다고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나이 들었으면 어른이 되어야 한다', '남자가 군대를 나오면 철이 들 것이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면 책임감이 강해질 것이다'라고들 하는데 어디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쉽게 되는 사람들이 있던가.
철 들지 않아도 된다. 부자가 되지 않아도 된다. 가정을 이루지 않아도 된다. 그리 된다고 해서 행복해진다는 보장도 없다.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어떤 식으로 살든 아무 문제가 없다. 명확하게 정의할 수도 없는 지향점을 추구하면 본인 스스로 본인이기를 저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을까. 인간은 어른이 될 필요가 없다.
우린 어른이 될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
내가 나 자신이 되지 않으면 그건 그 자체로 불행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이 어른이라고 인정해도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이뤘다 해도, 여전히 마음 한 곳이 허하고 일상에서 행복감을 여미지 못하는 건, 아마 자신의 본성과 어긋나는 삶을 살아내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