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을 함부로 판단했던 지난날들을 떠올리며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반바지 하나 걸치고 땅바닥에 드러누워 직선으로 내리 꽂히는 뜨거운 볕과 맞짱 뜨고 있는 사람을 길가에서 본다면 아마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말았을 것이다.
'뭐 하는 인간이지?'
'이상한 사람이네..'
'타 죽으려고 작정했나 보다!'
단, 예전의 나였다면 그랬을 거란 말이다. 이젠 웬만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내가 아닌 누군가를 별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오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내가 호주를 가기로 마음먹은 건, 호주를 간답시고 대기업을 퇴사하고 느닷없이 떠난 사촌형님 덕분이었다. 당최 이유는 모르겠으나, 공부와는 담쌓고 산 덕분에 다가올 미래의 전망이 어두웠던 고등학생 시절의 내 눈엔 가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가보고 싶어졌다. 부족한 영어실력은 군생활 도중 공부하며 끌어올리고, 부족한 비용은 군생활 내내 모아둔 월급과 제대 후에 바로 시작한 알바로 충당했다. 그리고 1년 후 23살이 되던 해, 생애 처음으로 다른 나라 땅을 밟아봤다.
살면서 흔히 들었던 말 중에 '해외여행을 하면 시야가 넓어진다'라는 말이 있었다. 처음엔 해외를 가 본 적도 없고, 시야가 넓어진다는 게 무슨 뜻인지도 잘 몰랐기에 그런 말이 들리면 한 귀로 흘리고 말았다. 그런데 호주 브리즈번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내 꽉 막힌 '시야'에 조그만 숨구멍을 내 줄 만한 일이 있었다.
공항 출입 게이트를 나오자마자 처음 눈에 들어온 사람은 여행 가방을 메고 맨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이었다. 처음엔 그를 보며 '저런 사람도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이어 온몸에 미세한 전율이 스치는 게 느껴졌다. 난 내가 너무 어색했다. 만약 한국에서 맨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을 목격했더라면 심하게는 미친 사람, 못해도 정상은 아닐 거라고 지레짐작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달라진 건 밟고 서 있는 땅밖에 없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전에 없던 사고가 머릿속에서 일어난 것이다.
누가 보면 별 거 아닌 일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내게 그때 그 찰나의 순간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알고 보니 그동안 이상한 사람들이라 생각했던 사람은 실제 그들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내가 이상하게 바라보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잘 알지도 못하는 남들의 겉모습만으로 함부로 문제를 부여한 나 자신이었다. 23년 만에 깨달은 사실이었다.
물론 그때 한 번 그랬다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상해 보이지 않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이상하게 보이는 사람들은 길거리에 많다. 하지만 이제는 누가 이상하게 보여도 함부로 이상하다며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상대방이 이상하게 보이는 건 그 사람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현상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생각'이 만들어 내는 착각이라는 걸 매 순간 떠올리고자 애를 쓴다.
그러다 보니 나를 옭아매던 고정관념은 하나둘씩 소멸해 갔고, 그 빈자리엔 잔잔한 행복감을 안겨주는 지혜가 조금씩 들어차곤 했다. 호주로 떠나기 전에 수많은 책을 탐독해서 그럴 수 있었던 건지, 사람이 극적으로 다른 환경에 처하면 사고가 자연스레 확장돼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이상하게 여기는 것일수록 잘만 살펴보면 얻을 게 은근히 많다는 점이다. 고로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는 건, 일종의 '기회'인 셈인지도 모를 일이다.
에세이 출간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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