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면서도 글쓰기를 해야만 하는 사람
한동안 오른손의 새끼손가락이 찌릿거렸다. 어디 부딪혀서 그런 건 아니었다. 이전에 비슷한 증상이 있었던 적도 없었다.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지만 글 쓴답시고 키보드를 두드려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증상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병원 갈 정도로 아픈 건 아닌데, 무시할 정도로 약한 것도 아니었다. 아프다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그렇다고 내내 아픈 것도 아니었다. 잠깐 아팠다가, 괜찮았다가를 반복했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에 새끼손가락이 괜찮아지는가 싶더니, 다음으로는 세 번째 손가락에 비슷한 저림이 일어났다. 새끼손가락과 거의 동일한 증상이었다. 어중간하게 신경 쓰이는 정도도 같았다. 확실히 가만히 있는 것보단 타이핑할 때 통증이 적극적으로 일긴 했다. 그럼에도 딱히 별다른 조치를 취하진 않았다. 좀 지나면 낫겠거니 싶어서 그냥 내버려두었다.
요즘은 손가락이 찌릿거리는 건 거의 사라졌다. 대신에 어느샌가부터 목 주변이 뻐근하다. 어디서 누가 당기는 거라 하기도 그렇고, 누가 누른다고 하기도 그런 불편한 느낌이 온종일 목 언저리를 맴돈다. 보통 누가 어깨를 주무르면 '시원하다'는 생각이 든 적이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목 주변을 누르면 파스라도 붙인 듯 살짝 시원한 느낌이 든다. 좋은 건가?(아마 아닐 것이다)
손가락이 찌릿거리는 건 참을 만했다. 통증 자체가 미미하기도 하고 계속 그러는 게 아니라 간헐적으로 찌릿거린 것이기에 막 걱정이 되고 그러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목 상태는 손가락보다 통증은 약간 더 심한 것 같고, 허리 디스크와 마찬가지로 목 디스크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생각나서 조금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맨 처음엔 수영할 때 음파(숨 쉬는 동작)하는 동작에서 목에 너무 힘을 주고 고개를 돌려서 그런 건가 싶었다. 달리 말해 목이 뻐근한 건 글 쓰는 것과는 관계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날 친구들 단톡방에서 목이 뻐근하다고 했더니, 한 친구가 노트북 할 때 고개를 오랫동안 떨구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니냐고 했다. 그 말을 보자마자 아차 싶었다. 그 당시에도 난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었는데, 정말 보니까 고개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상으로 앞으로 쏠려 있었다. 글쓰기를 시작한 이래로 거의 매일을 그렇게 지내왔는데, 뻐근함이 이제야 찾아온 게 되레 신기할 따름이었다.
한편으로는 손가락이 저리고 목이 뻐근한 게(목이 뻐근한 게 글쓰기 때문이 맞다면) 영광의 흔적처럼 같기도 하다. 그만큼 글을 많이 썼다는 지표로도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통증은 두말할 것 없이 불쾌하다만, 몸에 이상증상이 생길 만큼 글을 많이 썼나 싶은 생각에 묘한 쾌감이 이는 게 사실이다. 혹은 내가 제정신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고 글을 좀 덜 쓰거나, 며칠 쉰다거나 하진 못하겠다. 실은 얼마 전에 글 안 쓰고 며칠 지내보는 것을 시도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겐 글 안 쓰며 지내는 게, 스마트폰을 없이 지내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어느새 난 쉬면서도 글을 써야만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듯하다. 좋은 건가?(아직은 잘 모르겠다)
왠지 아내가 이 글을 보면 기겁할 것 같다.
추가로 등짝도 한 대 맞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