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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일단 적었다

출간 계약하러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by 달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서울로 가는 KTX 안이다. 기차는 오랜만에 타본다. 20대 꽃청춘일 때 코레일에서 주관하는 '내일로 여행'을 가본 후로 거의 처음인 것 같다. 내 덩치가 커진 건지 원래부터 KTX 좌석이 비좁았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자리가 생각보다 좁다. 가방을 짐칸에 올려놓자니 통로 쪽 앉은 사람 때문에 다시 내리기가 번거로울 것 같아서 발등 위에 올려놨다. 그래서 좀 불편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가방 속엔 한 시간 뒤에 먹으려고 사 둔 소중한 김밥이 고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웃음)


아무렴 어떻노!

오늘은 뭐가 됐든 다 좋다.

지금 난 출간계약을 하러

서울로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약간 들뜨기도 했고, 조금 설레는 것 같기도 하다. 심장박동이 크게 뛰지 않는 걸로 봐서는 미친듯이 좋은 건 또 아닌 것 같다. 출간미팅 약속을 잡고 수도권으로 상경하는 기차를 탄 지금에도 그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정수리 위에서 흘러나오는 무미건조한 안내방송이 클래식처럼 들리는 걸 보면 확실히 상태가 정상은 아닌 것 같다. 그저 꿈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혹시 꿈이라면 영원히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년 3월부터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문학 관련 전공을 이수한 것도 글쓰기 관련 직업을 가진 적도 없지만, 어쩌다 보니 매일 글을 쓰고 있다. 글쓰기는 결코 만만한 게 아니지만, 쓰려면 또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게 바로 글쓰기였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게 다행이었다. 처음부터 글로써 뭔가를 이루고자 욕심을 냈으면 금세 제 풀에 지쳐 쓰러졌을 것이다.


퇴고가 뭔지 투고가 뭔지도 몰랐다. 그냥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일단 적었다. 그리고 어딘가에 올렸다. 브런치 이전엔 블로그였고, 이젠 아마 계속 브런치일 것이다. '신의 한 수'라는 말을 잘 안 쓰는데, 블로그에서 브런치로 넘어온 걸 떠올리면 신의 한 수라는 말이 절로 생각난다. 만약 순서가 바뀌어서 브런치에서 블로그로 넘어갔다면 도중에 글쓰기를 포기했을 확률이 매우 높았을 것이다.


브런치가 좋은 점은 '글만 쓰면 된다'가 성립되는 거의 유일한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유튜브, 네이버블로그, 티스토리블로그, 워드프레스 등 웬만한 건 다 해봤는데 유의미한 성과를 내려면 글만으로는 부족했다. 별의별 노가다(?)는 필수였다. 그렇지 않으면 할 맛이 나지 않는 구조로 이미 시스템화되어 있다 그쪽 세상은.


그에 비해 브런치는 오직 글만 쓰면 되는 곳이다. 난 책을 쓰지도 않았다. 유명인도 아니다. 남다른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도 않다. 직업도 평범하다. 인플루언서는 더더욱 아니다. 그런 내가 글만 썼을 뿐인데 어느새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 1년 만에 구독자가 1,300명이 다 되어간다. 누적 조회 수는 곧 100만 회에 다다른다(본 글을 쓰는 시점).


물론 구독자 수, 조회 수 따위의 수치들은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할 만한 것들은 아니다. 그럼에도 글만 썼을 뿐인데 꾸준히 우상향 하는 수치들을 보고 있자면, '아~ 글 쓸 맛 나네'라는 느낌을 보상받는다. 예전부터 브런치가 직접적인 수익구조가 없음에도 매력적이었던 건, 글쓰기라는 한 가지 활동에만 집중할 수 있게끔 환경설정이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1년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썼을 것이다. 1년은 365일인데, 브런치에 발행한 글은 600편이 넘어가는 걸 보면 말 다했다. 확실히 꾸준히 글을 쓰다 보니 평생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작가의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글쓰기로 먹고사는 삶을 가슴속에 품으니 글쓰기를 멈추기가 힘들었다.


글이 글을 부른다고, 이래저래 떠오르는 생각들을 막 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레 매거진과 브런치북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매거진도 매거진이지만, '진짜'는 브런치북이었다. 평소에 쓰는 수많은 글들은 브런치북을 엮어내기 위한 연습활동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될 정도다.


1년 동안 글을 쓰면서 출간제안을 받은 건 총 6번이다. 그중 두 번은 브런치에 등록된 메일로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이 들어왔었고, 그중 네 번은 브런치에 발행한 브런치북의 원고를 출판사에 투고해서 받은 제안이었다. 새로운 제안 메일로 제안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출판사에 에세이 원고를 투고할 수 있었던 것도, 브런치북을 쓰지 않았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었을 일이다.


터무니없이 비싼 글쓰기 강의는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혼자 씀으로써 나아지는 활동이니까. 이때까지 쓴 브런치북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건 마지막으로 썼던 것이고, 지금 내가 출판사와 계약하러 가는 것도 그 브런치북인 걸 보면 더욱 그렇다.


키보드 위에 손가락만 올리면 알아서 써질 정도로 잘 써질 때도 많았고, 하루종일 노트북 앞에 앉아 있어도 겨우 한 문단 쓸까 말까 한 날도 많았다. 그런 우여곡절을 끊임없이 겪더라도 계속 쓰고 쓰고 또 쓰고 싶다. 지난날들을 떠올려 보면 쓰면 쓸수록 더 많은 글을 쓸 수 있었고, 쓰면 쓸수록 조금씩 모든 면에서 나아졌다. 이만큼 좋은 게 또 어딨을까.




에세이 출간 소식

저의 첫 에세이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의 펀딩을 시작했습니다. 결혼의 본질인 '서로 잘 지내는 것'에 초점을 맞춘 저희 부부만의 독특한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결혼을 맘에 품고도 망설이거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지향하는 분들에게 추천드리며, 또 그런 분들에게 선물하기도 좋은 책이에요. 후원자분들에게는 저자 사인본과 온/오프라인 북토크 참여권을 드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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