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배울 수 없다

ep 7. 글쓰기강의를 추천하지 않는 이유

by 달보


전 글쓰기 강의는 들은 적도 없고 들을 계획도 없으며 들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글쓰기는 마치 검술처럼 가르칠 수는 있어도 전할 수는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수강료가 생각 이상으로 비싼 글쓰기 강의를 통해 배울 법한 것들은 마음만 먹으면 혼자서도 충분히 터득할 수 있다고 봅니다.


숱한 글쓰기 강의에서 하나 같이 강조하는 건 시중에 널린 글쓰기책에서 언급하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의 중요성을 일러주거나, '오늘 당장 써라' 혹은 '최대한 많이 써라'로 귀결되는 조언이 대부분입니다. 근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글쓰기는 결국 많이 써 보는 수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글쓰기는 남에게 배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필력은 글을 많이 쓰다 보면 몸소 느끼는 바가 누적되다 보면 자연스레 늘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단지 저마다의 타고난 기질과 환경이 다른 만큼 속도에 차이가 날 뿐.


하물며 제가 진행하는 글쓰기 모임(함께 모여 그날의 글쓰기 주제를 토론하고 각자 쓴 글을 낭독하는)에서 만난 사람들을 겪어보니 글쓰기의 문제는 99.9% 마음의 문제이지, 필력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스스로 창조한 마음의 벽만 넘어설 수 있다면 누구든지 글은 쓸 수 있었고 또, 대부분은 잘 썼습니다. 그런 걸 보면 글쓰기와 관련된 고충은 기술적 결함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심리적 요인에 의해 불거지는 일인 것입니다.


물론 지금 당장 글을 쓰거나 최대한 많은 글을 쓴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긴 합니다. 글을 써 보고자 다른 사람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면 기꺼이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글을 얼마 써 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글쓰기 강의부터 찾는 것보다는, 혼자서 이리저리 부딪히며 어느 정도 글을 충분히 써 본 다음 강의를 듣는 게 값비싼 수강료를 지불한 보람이 좀 더 있을 거라고 보는 것입니다. 물을 적시지도 않고 샴푸를 듬뿍 짜 봤자 거품이 나지 않는 것처럼요.




KakaoTalk_20240915_221634080_09.jpg


저는 자기 자신다운 글이 가장 매력적이면서도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글만 읽어도 글쓴이의 성향을 짚어볼 수 있을 만큼 글쓴이의 성향이 물씬 묻어나는, 왠지 글쓴이의 목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는 듯한 그런 글 말입니다(전 김영하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 알쓸신잡에서 봤던 김영하 작가님의 목소리가 음성지원이라도 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나다운 글을 쓰는 건 그냥 솔직하게만 쓰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 또한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일단 솔직하게 글을 쓴다는 것부터가 의외로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남들에게 공개하는 글은 두말할 것도 없고, 당장 나 혼자밖에 볼 일이 없는 일기를 쓸 때도 보면 있는 그대로의 심정을 고스란히 담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일기를 써 본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은 상황을 겪어봤을 겁니다. 남이 내 일기장을 읽어 볼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데 희한하게도 '혹시 누가 훔쳐보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거나, 다른 사람이 내 일기장을 우연히 들여다보게 될 상황을 알게 모르게 의식하면서 쓰게 되는 것 말입니다. 요컨대 솔직해지는 건 솔직하려고만 해서 될 게 아니라 연습이 필요한 일입니다.


하물며 평소 내 생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 내 생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일단 저부터가 그랬습니다. 전 글쓰기를 시작할 때부터 좋은 글을 쓰진 못할지언정 써내는 것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키보드 위에 손가락만 올리면 웬만큼은 뭐라도 써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쓴 글들은 당연히 다 제 머리에서 나온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근데 아니었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가끔 예전에 쓴 글들을 다시 읽어볼 때가 있습니다. 근데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다가 시간이 갈수록 이전 글들을 볼 때면 온전한 제 생각을 풀어쓴 게 아닌 것 같았습니다. 특히 초반에 썼던 글들이 그랬습니다. 꼭 책에서 읽었던 것들을 내 생각이라고 착각하며 쓴 것만 같았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썼던 예전 글들에서 유독 미국풍 자기 계발서의 기운을 한아름 머금고 있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전 자기 계발서를 정말 많이 읽었거든요.




KakaoTalk_20240915_221634080_05.jpg


제가 옛날에 썼던 글과 요즘에 썼던 글을 비교해 보면 거의 다른 사람이 썼다 해도 무방할 정도로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물론 제 생각이지만). 내가 쓰는 글의 내용이 진짜 내 생각에서 비롯된 것들이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 후로는 '과연 이게 내 생각이 맞을까'라는 의심을 항상 합니다. 나다운 글이 가장 좋은 글이라고 여기는 만큼이나 솔직 담백한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더욱 그렇습니다.


경험상 솔직한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은 가능한 한 많은 글을 써 보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하기 위해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낼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자기 자신을 관찰하고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나를 알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글쓰기만큼 스스로를 깊이 파고드는 일도 별로 없다고 봅니다.


나를 알아낸답시고 꼭 자신에 대한 글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주제의 글이든 쓰다 보면 본인 때가 묻어나는 법이고, 그렇게 드러나는 진실의 퍼즐조각들을 하나씩 끼워 맞추다 보면 비로소 솔직한 글을 쓸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을 갖추게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무식해 보일 정도로 많을 글을 쓰려는 건 더욱더 솔직해지기 위함도 있습니다. 저는 진솔한 사람이고 싶고 그런 사람이 쓸 법한 담백한 글을 쓰고 싶으니까요.

예전에 어느 독자분이 제게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작가님의 글은 다 좋은데, 작가님이 보이질 않아요. 전 작가님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합니다."


위의 말을 처음 접했을 땐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아무 일도 없이 넘어갔습니다. 만약 그때 독자분의 말을 귀담아듣고 혹시 뭔가 간과하고 있는 건 없는지 일말의 사유라도 했다면, 제 글의 출처를 좀 더 일찍 알아차렸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나마 그 후로도 계속 글을 써 온 덕분에 제 글의 모순점을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안 그랬으면 남의 생각을 옮겨 써놓고 내 안에서 나온 글이라며 염치없이 으스대고 다녔을 거니까요.




KakaoTalk_20240915_221634080_07.jpg


글쓰기 강사는 글쓰기에 대해선 나보다 더 많이 안다 해도(그조차 검증할 방법이 없으니 확신할 수 없지만) '나'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내면을 텍스트로 치환하는 것이 글쓰기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글쓰기를 해보겠다며 섣불리 글쓰기 강의부터 듣는 분들을 보면 일단 말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글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아니, 글쓰기는 원래 혼자 하는 일입니다. 난관에 부딪힌 글쓴이에게 필요한 건, 누군가의 신박한 솔루션이 아니라 사고방식의 전환이니까요. 그런 건 누가 갑자기 가르쳐준다고 해서 쉽게 와닿는 게 아닙니다. 힘들어도 본인이 스스로 해법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게 또, 가장 건강하게 성장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라는 뜻을 가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요. 인생의 모든 일이 그렇듯 글쓰기도 마음먹기에 따라 달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은 마치 새하얀 도화지만 같을 텐데, 자기 자신이라는 밑그림을 그리기도 전부터 외부인의 채색을 허락한다면 남의 흉내를 내기만 할뿐더러 결과가 흡족스러울 리도 만무하다 봅니다.


매 순간 나의 고충을 시원하게 해결해 주는 영웅 같은 존재가 있다 한들, 그것 또한 나름대로 큰 문제입니다. 외부요소에 기대는 게 익숙해질수록 스스로 뭔가를 극복해 내는 힘은 그만큼 약해질 테니까요. 글쓰기는 나 홀로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일인 만큼 평소 부단히 노력하여 올곧은 사람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부정적인 기운을 글에 담고 싶은 게 아니라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태세는 글에 고스란히 묻어나니까요.


글쓰기 강사는 수강생에게 대단한 걸 제공하지 않습니다(애초에 그럴 수도 없고요). 심지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작가일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은 기고 날아봤자 결국 남입니다. 글쓰기에 관하여 타인이 내게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쓰지 않고 있던 상태를 쓰게끔 심리를 자극하거나, 주변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약간의 팁을 알려주는 게 전부입니다.


설령 그 이상의 무언가를 제공한다 한들 길게 보면 오히려 해롭기만 할 것입니다. 글쓰기의 본질은 '나'를 덜어내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남의 견해가 개입된다면, 그 자체로 첨가제나 촉진제를 가장한 불순물이 섞이는 일일 테니까요.




[신간 안내]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이전 07화퇴고를 꼭 해야만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