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를 꼭 해야만 하는 걸까

ep 6. 퇴고에 대한 이야기

by 달보


우연찮게 글쓰기를 시작한 것치고 제가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중 퇴고하지 않고 글을 썼던 것도 꽤나 큰 영향을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퇴고를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못한 겁니다. 왜냐하면 전 퇴고가 뭔지 몰랐거든요. 투고나 퇴고라는 단어를 글 쓰기 전까지는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마 들었어도 저완 아무 상관없는 단어이기에 한 귀로 흘렸을 수도 있겠죠. 여하튼 전 퇴고를 하지 않은 덕분에 글쓰기를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쓰게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퇴고는 글쓰기에 있어서 무조건 거쳐야만 하는 절차입니다. 대부분의 초고는 상상 이상으로 엉터리거든요. 특히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남들에게 공개하는 글이라면 더더욱이나 퇴고를 거쳐야만 합니다. 덜어내지 않은 글은 투박하고 매력이 없습니다.


다만 글쓰기를 이제 막 시작한 경우 한동안 쓰는 것에 대한 흥미가 오를 때까지는, 퇴고 따윈 상관 말고 일단 되는 대로 써 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퇴고하지 않는 버릇이 들면 매우 곤란하겠으나, 그렇다고 초반부터 퇴고한답시고 매달리면 글쓰기가 더디고 힘들어서 중도에 포기할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어중간하게 포기할 바에는 차라리 대충이라도 쓰는 게 낫다고 보는 편이기에, 처음엔 그냥 아무 신경 말고 뭘 써내는 것에만 집중하는 걸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글쓰기를 포함하여 어떤 행위가 습관으로 자리 잡기 전까지는 그것이 할 만해야 합니다. 너무 쉬우면 지루해서 문제고, 너무 어려우면 힘들어서 문제입니다. 난이도를 자체적으로 조정해서라도 적당하다 싶을 만큼만 실천하는 게 멀리 봤을 땐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행동의 중요성을 간과하면 과정의 난이도는 대폭 상승하며 그에 따른 성과는 기대하기 힘듭니다. 뭔가를 별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하게 될 때까지는, 최대한 마음 편하게 설렁설렁 대충 하는 것도 습관을 들이는 데 있어서는 꽤나 괜찮은 공략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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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퇴고라는 게 뭔지도 모르고 블로그에 이런저런 글을 막 올렸을 때도, 사람들은 글이 좋다며 좋아요나 댓글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물론 '내 블로그도 방문해 달라'는 대가성 반응일 수도 있겠으나, 분명 진심으로 좋게 봐준 분들도 아주 없진 않았습니다. 그런 걸 보면 한편으로는 글을 다듬는 게 어쩌면 부질없는 게 아닌가 싶은 어리석은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글쓰기를 꾸준히 하다 보면 퇴고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게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쓸수록 보는 눈이 달라지면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이 많아지거든요. 맞는지 아닌지 판단이 애매한 맞춤법, 문맥상 어색하게 끼어 있는 문장, 산으로 가는 듯한 결론 등 당장 글의 앞뒤 어색한 부분이 눈에 훤히 보이는데도, 퇴고를 하지 않고 스리슬쩍 넘어가는 게 오히려 더 힘들 것입니다.


경험상 새로운 글을 쓰는 것보다 다 쓴 글을 부여잡고 퇴고하는 게 훨씬 더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고는 해야만 합니다. 힘들어도 그만큼 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모든 경우에 해당하는 건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엔 퇴고를 거듭할수록 글이 점점 나아졌었습니다. 그에 너무 집착해서도 안 되지만 적당한 선을 지키면서는 의무라고 생각하며 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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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전 처음에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글을 수정해 나갔습니다. 근데 요즘엔 초고를 한쪽 화면에 띄워두고 메모장 같은 걸 하나 열어서 새로 쓰듯 퇴고를 합니다. 왜냐하면 문장 고친답시고 일단 지웠다가, 고치고 나니 이전께 더 나았던 적이 상당히 잦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내 글을 필사한단 형식으로 써 나가면 고칠 만한 부분들이 자연스레 걸러지듯 눈에 들어옵니다.


만약 출판사에 투고할 만큼의 중요한 원고라면 컴퓨터로 퇴고를 마친 후 소리 내서 한 번 읽어봅니다. 소리 내서 읽는 건 상당히 귀찮은 일이지만, 글의 어색한 부분을 잡아내는 데에는 그만한 방법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글의 원천이 입으로 소리 내는 말에서 오는 것이기에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다 쓴 글을 인쇄해서 읽어보는 건 퇴고의 끝판왕입니다. 종이에 찍힌 글을 천천히 보다 보면, 모니터로는 수차례 읽어도 보이지 않던 갖가지 오류들이 심히 곤란할 정도로 눈에 포착되는 걸 경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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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초고는 쓰레기다'라는 헤밍웨이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퇴고를 몇 번 만 해보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만큼은 퇴고를 거치지 않아도 될 만큼 완벽하게 썼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글 중에서 정말 그랬던 적은 여태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정말 한 번 썼던 글을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읽어보면 거의 103%의 확률로 '대체 왜 이렇게 썼지'라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초고는 아무리 잘 써봤자 초고였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초고를 가차 없이 삭제하는 건 추천하지 않습니다.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초고가 이상해 보이는 게 대부분이긴 하나, 반대의 경우도 분명 생기기 때문입니다. 분명 초고는 쓰레기가 맞지만, 쓰레기이기 이전에 일종의 자료라는 걸 감안하면 굳이 애써 지울 필요는 없습니다.


전 글의 진도가 좀처럼 나가지 않으면 지우지 않고 별도로 빼놨던 초고를 다시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었습니다. 달리 말해 제가 썼던 글에서 약간의 인사이트를 얻어가는 셈입니다. 초고를 들여다보면 이전엔 지나쳤던 주옥같은 문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돈이 드는 일도 아닌 만큼, 특히 장기간에 걸친 작업인 만큼 초고라고 해서 무조건 지우지 말고 잠시만이라도 분리하여 저장해 둔다면 분명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필력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한 명의 인간인 이상, 글 보는 눈은 그때그때의 심리상태와 주변환경에 따라 달라집니다. 처음엔 별로라고 생각했던 문장들이 지나고 보면 담백하면서 꽤 괜찮은 표현처럼 다가왔던 경우가 꽤 많았습니다. 하여 저장공간이 극한으로 제한된 경우가 아니라면, 초고는 초고대로 수정본은 수정본대로 별도로 관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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