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선물로 선택한 자유와 여유
우리집은 화목했고 부모님은 내게 많은 사랑을 주셨다. 하지만 생일이라는 개념을 망각이라도 한 듯, 그들은 내 생일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다. 덕분에 난 생일을 모르고 자랐다. 생일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러다 초등학생 때 생일 잔치에 초대 받아 친구집에 놀러갔을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떡볶이, 피자, 치킨에 둘러쌓인 케이크의 촛불을 끄며 생일을 기념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부모님을 미워하거나 내 처지를 불쌍하게 여기진 않았다. 친구들이 생일 파티를 하거나 말거나, 난 내 생일을 보통날처럼 보내는 게 좋았다.
"생일 선물로 받고 싶은 거 없어?"
가장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 중 하나였다. 생일을 조용히 넘어가고 싶기도 하거니와, 물욕을 담당하는 구역에 가뭄이라도 일었는지 갖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나마 책 정도는 받으면 좋을 것 같긴 했다. 하지만 밀리의 서재로 전자책 위주로 독서를 하게 되면서는 그마저도 의미없었다. 정말 난 생일 선물로 받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근데 최근 들어 원하는 게 생겼다.
"여보, 나 생일 선물로 받고 싶은 게 생겼소."
"무엇이오?"
"4시간."
"응?"
"혼자 카페 가서 조용히 글 쓰고 싶소. 내게 자유시간을 주시오."
그건 바로 시간이었다. 난 시간이 필요했다. 평소 자주 가던 카페에서 조용히 글을 쓰고 싶었다.
올해 7월에 세상빛을 보게 된 현이를 키우면서부터는 글 쓰는 게 쉽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만, 현실은 예상밖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는 것도, 자정이 될 무렵까지 글을 쓰다 자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현이가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고정적이지 않은 탓이었다. 그나마 아내가 많이 배려해준 덕에 매일 글을 쓰고는 있다. 그럼에도 예전처럼 혼자만의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여유롭게 글을 쓰던 시절이 사뭇 그리웠다. 그래서 난 아내에게 생일 선물로 시간을 달라고 했다.
약 5개월 만에 들른 카페는 여전했다. 미국에 사는 소꿉친구집에 들린 듯 아늑했고, 공간을 메우는 배경 음악은 내 플레이리스트를 압도했다. 넓은 평수를 자랑하는 세 개의 층엔 각기 다른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카페 사장님은 가구에 진심인 듯 하나 같이 디자인이 평범하지 않았다. 처음엔 별나다고 생각했는데, 자주 찾다 보니 그 카페만의 특징이자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런지 난 이제 웬만한 신상 카페를 가도 심심한 느낌을 받는다.
점심 시간 전에 도착해서인지 손님이 별로 없었다. 3층으로 가 항상 앉던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지체할 거 없이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함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선곡이 훌륭해 블루투스 이어폰을 꺼낼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꼬박 3시간 동안 글쓰기에 몰입했다.
행복했다. 아내의 허락 하에 자유를 만끽해서인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시간만 있으면 이렇게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짙은 행복감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내게 필요한 건 좋은 차도, 넓은 집도, 비싼 물건도 아니었다. 매일 주어지는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 시간에 글만 쓸 수 있다면 더는 바랄 게 없었다. 일찍이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평안을 끌어당길 줄 아는 내가 좋았다. 노트북 키보드를 정신없이 두드리는 와중에 그런 상태에 이르렀다는 게 새삼 감격스럽고, 또 감사했다.
젊을 땐 시간이, 늙어서는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연봉 7천의 직장을 포기하고 월급이 반토막 나더라도 시간을 벌 수 있는 곳으로 과감히 이직하고자 했던 이유다. 그런 나의 무책임한 결정과 막연한 미래를 지지하고 믿어준 아내가 아니었다면 글쓰기를 발견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글 쓰는 삶을 꿈꾸며 지금의 안온을 누릴 수 있는 건, 비로소 아내라는 은혜를 말미암아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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