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펀지 같은 나, 아내를 만나 물들다
"내가 널 보면 뭐가 생각나는지 알아?"
"뭔데?"
"스펀지."
군생활 중 나보다 3살 많은 동기가 날더러 스펀지 같다고 했다.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주변 사람들의 장점을 잘 빨아들인다고. 근데 단점도 마찬가지라고. 그러면서 그는 내게 주변 사람들이 무척 중요할 거라고 얘기했다.
그 동기는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소위 4차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흘리듯이 한 말은 내 가슴에 콕 박혀버렸다. 나를 스펀지에 빗대어 말한 게 마치 원래 알고 있었던 사실마냥 마음 깊이 와닿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난 정말 스펀지 같은 면이 있었다. 처음부터 스스로 잘하는 건 없어도 따라 하는 건 다 잘했다. 그림은 잘 못 그려도 따라 그리는 건 잘했고, 게임은 잘 못해도 잘하는 사람을 따라 하다 보면 평균 이상은 했다. 심지어 난 남들의 걸음걸이나 말투 손버릇까지도 눈길 가는 게 있으면 나도 모르게 학습(?)하곤 했다. 정신 차리면 어느새 주변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종종 있었다.
내 주변에 누가 있는지에 따라 인생이 갈릴 거라는 그 동기의 말은, 세월이 흐를수록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 아내를 보면 그 스펀지가 생각난다. 하는 것마다 열심히 하지 않은 게 없었음에도 풀리지 않던 인생이, 아내를 만난 후 하늘을 군림하던 먹구름이 물러난 듯 환한 빛으로 가득 차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아내를 만난 후에 내 삶에 일어난 변화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책을 더 열심히 읽게 된 것
2. 주변에 인상 좋은 사람들이 많아진 것
3. 안정적인 직장으로 이직한 것
4. 새벽 기상을 시작한 것
5. 글쓰기를 발견한 것
무엇보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게 정말 컸다.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가지 일을 몇 년 동안이나 꾸준하게 해 보는 진귀한 경험을 하고 있다. 평소 몰입할 만한 좋아하는 일이 생기고, 그에 따른 꿈까지 생기니 가뜩이나 안온했던 일상에 전에 없던 행복감이 스며들었다.
스펀지부터 시작해서 아내를 만난 후에 일어난 변화들이, 어제 아내와 저녁을 먹다 보니 문득 들었다.
한때는 내가 잘했기 때문에 지금의 평온에 이를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아내가 아니었다면 난 인생을 좀먹는 악순환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내를 만나서 다행이다.
그리고 난 운이 좋은 놈이다. 좋은 사람 같아 보여서가 아니라 단지 예뻐서 좋아하기 시작한 건데, 그런 사람이 잿빛으로 물든 내 마음을 오색찬란한 색감으로 물들일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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