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완벽할 수가 없었다

결함에서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

by 달보


내 삶에 책을 들이기 시작하며 인생이 변할 수 있었던 건 내 머릿속에 있는 고정관념들이 하나둘씩 깨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이 깨진다는 건 내가 현재 알고 있는 것들이 수많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과도 같다. 이런 과정을 처음 겪으면 한동안은 암담한 기분이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인생에서 보이지 않던 새로운 문들이 활짝 열리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기뻐해야 한다. 특히 성장욕구가 남다른 사람이라면 말이다. 고정관념이 하나둘씩 깨지다 보면 그 자리에 나만의 주관적인 생각들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그런 생각들은 힘이 있고 그만큼 내면의 중심을 견고하게 해준다. 인간은 본인만의 중심이 단단해질수록 사물에 대한 본질을 꿰뚫어 보는 힘이 강해진다. 힘 들이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그런 혜안이 생기는 것이다.


내가 내 손으로 이런 글을 쓰긴 부끄럽지만 나도 어느 정도 그런 혜안이 조금씩 생겨난 것 같다. 어떤 현상을 마주하더라도 바로 눈에 들어오는 정보만을 믿지 않으며, 그 배후에 어떤 진실이 감춰져 있는지 파악하기가 쉬워졌다. 그리고 그런 진실을 자주 겪다 보면 대개 단순한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알아보는 것이 그리 어렵지도 않다.


한 번씩 다들 이런 경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내가 알고 있던 단어가 어느 날 갑자기 되게 어색해 보이는 경험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내 익숙했던 느낌으로 돌아오지만, 나 같은 경우엔 잊을만하면 일상에서 흔히 보이는 단어들이 갑자기 너무 어색하게 다가올 때가 많았다. 그 순간만큼은 내 눈에 보이는 단어가 단어의 뜻과는 별개로 무슨 그림처럼 보인다. 그리고 단어의 뜻과 연결시키려 해도 너무 어색하다. 그건 애초에 내가 알고 있던 그 뜻을 포함하고 있는 단어가 아니라 그냥 하나의 그림이었던 것처럼 그것이 나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단어가 나에게 본인이 원래 어떤 것이었는지 알려주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느낌을 처음 느끼기 시작했을 때는 내가 잠시 정신이 몽롱한 정도로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순간들은 놓치기 아까운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는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내가 나도 모르게 나의 의식을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날것을 보는 아주 뜻깊은 찰나였던 것이다.


당신은 사과라는 단어를 보면 사과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고 단어 그 자체로써 바라볼 수 있는가? 애플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아이폰과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지 않고 애플이라는 한글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가? 아마 그런 생각을 시도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원래부터 사과의 이름이 사과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게 뇌구조적으론 당연한 기능이기 때문에 이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서 난 세상에 완벽한 게 존재할 수가 없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적어도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 중에서는 말이다.


우리는 단어로써 소통한다. 현대 문명도 컴퓨터에 코드라는 단어를 기입함으로써 점점 더 발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어는 단어 자체로써의 기능은 완벽할진 모르겠으나, 인간의 뜻, 우주의 진실, 존재의 본질을 담기엔 너무나도 부족하며 그 한계가 명확하다.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은 인간의 생각과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들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완벽을 추구하려 해도 재료 자체가 빈 공간투성이다. 이러한 사실을 어느 순간부터 깨닫기 시작한 나는 나를 포함한 우리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단어의 프레임에 갇혀 사는지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욱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놈에 문화 때문이다. 호칭, 존칭, 예의범절 같은 것들이 대한민국에서 무난하게 살아가기에 약간의 도움이 될진 모르겠으나 그런 것들이 하나의 정답이라고 살아가다 보면 많은 기회들을 놓치고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끼리 어울려 자기들끼리 북 치고 장단 칠 확률이 높아지며 아쉽게도 지혜로운 삶을 살아갈 확률은 그에 반비례한다.


사람들은 서로 이해하는 단어를 주고받으며 소통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하나의 착각이다. 같은 나라의 언어를 주고받더라도 받아들이는 상대방은 전혀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만약 단어가 완벽했다면 우리는 오해 같은 걸 할 일이 없어야 한다. 만약 단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었다면 세상 모든 문제들은 대화로써 풀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이런 빈틈 덕분에 우리에겐 살아갈 의미가 더욱더 깊어진다. 어떤 문제에 대해 사유하며 행동해야 할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단어가 갖고 있는 결함의 빈 공간이 되려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만약 모든 것이 완벽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보면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니까. 뭘 해야 할 필요가 없으니까. 이처럼 삶은 알다가도 모르는 참 재미로 가득한 곳인 것 같다. 우리의 인생은 애초에 완벽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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