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그 가슴 시린 추억....
남편은 올여름 휴가에 지리산 가고 싶다고 했다.
장터목에서 야영으로 1박을 하며 고사목과 어우러진 원시림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새벽 일찍 천왕봉에 올라 장엄한 일출을 보자고 했다.
그러나 갑자기 시작된 태풍으로 등산로가 통제되는 바람에 우리는 장터목까지만 오르기로 했다.
텐트와 장비는 자동차에 남겨둔 채 최소한의 식량과 간식거리만을 배낭에 짊어지고
남편과 나는 비 내리는 백무동에서 장터목을 향했다.
쉼 없이 오르기를 4시간 남짓, 우리는 드디어 장터목 산장에 도착했다.
벼르고 별러서 나선 길인데, 여기까지 와서 천왕봉에 오르지 못하고 왔던 길 되짚어가게 되어 서운했다.
이른 새벽 선잠에서 깨어나 커피를 끓이며 일출을 기다리는 동안
먼 동해에서 이곳까지, 겹겹이 포개진 산봉우리 위로 버들 구름이 빨갛게 타오르는 광경을 보고 싶었다.
여름 내내 검게 그을린 투구를 쓴 듯한 천왕봉에 우뚝 서서 허공 속에서 일어나는 황홀하고 경이로운 태양, 동녘을 타고 광활한 대지를 밝히는 무념무상의 시간 속에서 또 한 세상이 열리는 그 일출을 보고 싶었는데......
역시 "천왕봉에서의 일출은 3대가 덕을 쌓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했던가?
그 악천후에도 장터목 산장의 대피소는 놀라울 만큼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등산화를 벗어 발목까지 차 있던 물을 쏟아냈다.
비닐 우비 사이로 비바람이 들이쳐 젖은 옷의 물기를 짜내고, 얼굴과 머리의 물기를 닦아내는데
그 태풍 속을 뚫고 강행한 산행에 기쁨 같은 야릇한 흥분과 성취감에 가슴이 뛰었다.
어느 정도 내 모습을 수습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둘러서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문득 극심한 허기를 느꼈다.
갑자기 배낭 속에 알뜰히 챙겨 온 짭짤한 밑반찬이며
잘 익은 김치 생각에 입안 가득히 군침이 고였다.
남편도 시장기를 느꼈는지 빨리 점심밥을 지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부쩍 서둘렀다.
그러나 우리가 서 있는 입구 쪽은 바람이 거세게 몰아쳐서 불을 피울 수가 없었다.
코펠을 올려놓고 밥 짓기에 마땅한 자리를 찾아 안쪽으로 들어가는 남편의 뒤를 따라
두어 걸음 옮기던 나는 그만 그 자리에 석상처럼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
아!
짧은 찰나,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호흡을 멈추었다.
내 입속에서는 비명과도 같은 신음 소리가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그였다. 이동원.
그는 아마도 내가 대피소 안으로 들어설 때부터 나를 알아보았던 듯
미동조차 하지 않고 저 마치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게서 조용히 눈길을 거두며 흠뻑 젖은 내 모습을 깨달았을 때 나는 당황했다.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의 장난인가,
왜 하필이면 이런 곳에서 이런 모습으로 그와 마주친 건지, 나는 알 수 없는 대상에게 화가 났다.
살아오면서, 한 번쯤 우연이라도 그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곱게 화장하고, 내 즐겨 입는 긴 스커트에 단정한 여인의 모습으로 도시 속 어디쯤에서 만났더라면, 불혹을 지난 내 나이가 풍기는 평온함으로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라도 담담하게 나눌 수 있었을 것을...
나는 한시라도 빨리 그의 시야에서 벗어나고 싶어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 사이 세차게 내리던 비는 그쳐 있었고, 는개가 자욱하게 내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 뒤를 바로 따라 나왔는지 가까이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소정아"
내가 천천히 등을 돌리자 낯익은 그의 얼굴이 성큼 내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이동원, 그가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6개월 짧은 수학 교사를 하다가 군대 간 사이 나는 다른 사랑을 시작했다.
편지를 보내는 횟수가 줄어들다가 제대를 불과 8개월가량 남겨 두고 결국 나는 그를 떠났다.
제대 후, 그는 소식이 끊긴 나를 만나게 해 달라고 며칠 째 날만 밝으면 친정집으로 찾아왔다.
그 모습이 딱하다고, 한 번만 만나 보라는 오빠의 권유로
마지막으로 그를 만난 건 가을의 문턱 어느 찻집에서였다.
"내게 사랑한다고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어서
동원 씨가 나를 그렇게 많이 사랑하는 줄 몰랐다."라고 말하자
그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런 걸 꼭 말을 해야지 아느냐"라고 반문했었다.
"군대 있을 때 사물함 속 작은 액자 속에 네 사진을 끼워 놓고
아침마다 너에게 인사를 건네며 하루를 시작했다.
단 하루도, 어느 한순간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는데,
너를 안 보고는 이 세상 살아갈 자신이 없는데,
단 한순간도 숨 쉴 수조차 없는데, 이제 와서 너를 잊으라고?
아무것도 묻지 않을게. 제발, 지금이라도 내게 돌아와 줘"
그의 목소리가 젖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금테 안경 너머 그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힐 때
나는 그를 찻집에 남겨 둔 채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오랜 세월 사랑한 그 사람이 지금 네 눈앞에 있잖아!
그가 저토록 간절히 너를 원하고 있는데. 어서 그 사람에게 돌아가!"
내 속의 또 다른 내가 절규하듯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를 사랑했던 감정이 되살아나 나는 그 찻집 건너편 전봇대 뒤에 기대어 서서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았다.
서늘한 가로등 불빛을 받아 더욱 초라해 보이던 그의 뒷모습,
그 서글픈 내음은 지금도 내 가슴에 처연한 아픔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헤어진 그와 16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마주치다니......
장터목 산장의 모퉁이에서 우리는 종이컵에 담긴 커피 잔을 들고 나란히 섰다.
창밖으로는 사나운 바람과 함께 짙은 운해가 몰려가고 있었다.
커피를 천천히 조금씩 조금씩 아껴가며 마시는데
부질없이 나의 목덜미를 타고 추억이 한 모금씩 스며들었다.
그가 첫 휴가 나왔다가 귀대하기 전날 밤,
우리는 첫 키스를 했었다. 그러나 그가 얼마나 긴장하고 떨고 있었던지
우리는 서로의 이빨만 달그락달그락 부딪히고 마는 어설픈 첫 키스를 하고 말았다.
내가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도 늘 빙그레 웃으며 바라봐 주던 사람.
내가 있는 도시까지 버스를 타고 달려와 두 시간을 기다리다가
겨우 30분 얼굴만 보고 돌아가면서도 화 한번 낼 줄 모르던 사람.
내 나이 스물둘 생일날, 발목까지 올라오는 갈색 부츠를 사주며
정갈한 흰 치아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어주던 사람.
수북하게 쌓인 떡갈나무 잎 밟으며 함께 거닐던 공산성 오솔길,
눈송이처럼 벚꽃이 하얗게 쏟아져 내리던 박물관 뒤뜰,
코스모스 흐드러지던 무령왕릉 가는 길,
햇빛 받아 눈부시게 빛나던 곰나루 백사장,
언제나 나를 기다리며 "찻잔"을 즐겨 듣던 그 음악 찻집.......
그 모든 풍경 속에 그와 내가 있었다.
그를 사랑하는 동안 그에게서는 늘 낙엽 타는 냄새가 났다.
호탕하지 않고 수선스럽지 않으며, 낙엽을 우려낸 빛깔의 목소리와
파스텔톤으로 부드럽게 가라앉은 그의 표정을 나는 참 좋아했었다.
오래된 낡은 일기장을 들여다보듯 잠시 추억에 잠겨있는 침묵을 깨고 그가 말했다.
“얼굴이 맑고 편안한 걸 보니 행복하게 살아온 것 같아 다행이다”라고.
“꼭 한 번쯤 보고 싶었지만 이런 곳에서 너를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라고.
안경알을 닦으며 미소 짓는 그의 얼굴은 까닭 없는 슬픔이었다.
따스하고 선한 그의 눈이 내 눈 위에 포개질 때
나는 한순간 마음 가득 얽힌 길을 지워 버렸다.
우리는 그리워해야 할 곳과
살아가기 위한 곳을 이어주는 다리 위에서 작별을 했다.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하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이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