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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Oct 31. 2020

아들의 물수건

아픈 엄마의 이마에 물수건 올려준 손길

아들 녀석이 유치원에 들어가던 너 댓 살 적이었다.

내가 감기 몸살로 몹시 앓아누웠다.

식구들 아침밥 거르는 일이 없었는데 그때는 어지럽고 전신이 아파서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었다. 

겨우겨우 기어 나와서 전기밥솥에 밥만 안쳐 놓고 남편이 달걀부침과 구운 김 하고 있는 밑반찬 꺼내서 

세 아이들 아침밥을 챙겨 먹였다.

남편은 회사로, 두 딸내미는 학교로, 아들 녀석은 유치원으로 모두 썰물처럼 빠져나간 빈집에서 

혼자 끙끙 앓았다.

전날 병원에서 받아 온 약을 먹었는데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열에 들떠서 입에서는 단내가 나고 눈을 감으면 몸이 땅속으로 푹 꺼져 들어갔다.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하고 오후 시간이 되어 갈 무렵,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 거실을 가로질러 아들의 발자국 소리가 자박자박 들려오더니.

유치원 가방을 방바닥에 뚝 내던지는 아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눈 뜰 기운조차 없어 그냥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아들은 가만히 다가와서 내 이마를 손으로 짚어보더니, 손을 씻는지 욕실 쪽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잠시 후 차가운 뭔가가 내 얼굴에 철썩 얹혀졌다.

깜짝 놀라서 눈을 떠보니 아들이 물수건을 내 이마 위에 올려놓은 거였다.

물수건을 이마에 올려놓으려면 물기를 좀 짜야하는데

그걸 몰랐던 아들은 물이 줄줄줄 흐르는 수건을 그냥 갖다가 내 이마에 얹었던 것이다.

욕실에서 내가 누워있는 침대까지 방바닥엔 물이 흥건하고 침대 모서리와 베개가 금방 흠뻑 젖었다.

물이 줄줄 흐르는 수건을 엄마 이마 위에 올려놓고 

"엄마 많이 아파?" 아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누워있는 나를 내려다보는데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


아들은 어릴 때 감기에 걸리면 열부터 올랐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거나 약을 받아다가 먹이기보다는

내 방식대로 아기를 보살폈다.

가습기를 사용하기보다는 방안의 윗목에 젖은 빨래를 널어 습도를 높였다.

열이 내릴 수 있도록 얼음물에 적신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 주고, 겨드랑이는 얼음주머니로 마사지를 해 주었다.

또 젖은 수건을 이마 위에 올려주고 소화가 잘되는 음식을 만들어 먹이면서 

아이 스스로가 병을 이겨 낼 수 있도록 곁을 지키며 보살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끔 앓는 감기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몸이 스스로 이겨낸다는 걸 

두 딸을 키우며 경험을 통해서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켜보고 보살피면 아기는 스스로 병을 이겨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아이의 병이 누그러들지 않으면 그때서야 병원에 갔다.

그랬더니 아들이 자기 이마에 물수건 올려 주던 엄마의 정성을 잊지 않고 있다가

제 어미가 앓고 있으니까 그대로 해 주었던 것이다.

그까짓 방바닥에 물이 흥건하고 침대와 베개가 젖었기로 그것이 무슨 대수인가?

아들이 엄마 빨리 나으라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이마 위에 올려준 물수건은

세상에 그 어떤 특효약보다도 최고의 몸살감기약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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