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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Oct 31. 2020

남매의 우애

작은딸이 학교에서 만든 햄버거

운전을 하고 가다가 신호대기에 걸려서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는데 바로 옆에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요즈음은 햄버거 가게도 대형화가 되어 넓은 주차장에 1,2층으로 넓은 홀을 가지고 있어 드나드는 사람과 차량이 꽤 많아 보였다

햄버거의 종류도 다양하고 커피를 비롯한 음료도 사람들의 취향을 겨냥해서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는 모양이다.

문득, 작은딸이 중학생일 때 일이 생각났다.

작은딸은 평소 요리에 관심이 많아서 엄마가 김치 담글 때라든가 음식을 만들 때 곁에 붙어서 엄마 도와주는 걸 좋아했다. 

김장할 때는 배추 속 싸 먹으며 간도 봐주고 무가 달달 할 때는 싱싱한 생굴 넣고 무생채를 버무려 달라고 주문하는 그 세대에 보기 드문 토종의 식성을 가진 아이다.

그 딸아이가 학교에서 가사실습으로 불고기 햄버거를 만들게 되었다 

수행평가에 반영되어 성적에 영향을 준다는 선생님 말씀에 좋은 성적을 받으려고 선생님 설명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들었다 

서툰 칼질로 햄버거 속에 넣을 야채를 써는데 갑자기 햄버거가 먹고 싶다던 동생 생각이 났다 

그래서 잘 만들어 집에 가지고 가서 동생과 함께 먹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야채를 더 갖다가 듬뿍 넣고 불고기도 타지 않게 속까지 푹 익혀 정성껏 햄버거를 만들었다

다 만들어진 햄버거를 각자의 접시에 올려놓고 선생님의 평가를 받았다  

딸아이가 A+를 받고 기분이 좋아서 웃고 있는데, 채점을 끝낸 선생님께서 세 명의 학생을 호명하시더니 

“가장 잘 만든 햄버거니까 교무실 선생님들께 맛을 보여 드리는 게 어떻겠느냐”라고 하셨다 

호명된 세 명의 학생 속에 끼어있던 딸아이는 너무나 뜻밖의 제안에 어찌해야 할지 가슴이 막 두근거렸다. 

잘 만들어진 햄버거가 갑자기 너무나 미웠다.

어떻게든 정성 들여 만든 햄버거를 동생에게 갖다 먹여야겠다는 생각을 포기할 수 없었던 작은딸은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선생님 저, 실기점수 A+ 안 주셔도 괜찮아요. 이 햄버거를 꼭 제 동생에게 먹이고 싶어요." 

나는 딸아이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코끝이 찡해왔다  

영어 듣기 평가에서 발음을 잘못 듣는 바람에  한 개를 틀려 만점 맞지 못한 게 속상하다고  

제 방에 틀어박혀 30분을 대성통곡하던 녀석인데, 그렇게 공부 욕심이 많은 아이가  제 동생에게 햄버거를 먹이고 싶어  자청해서 점수를 내어놓겠다고 하다니......... 

딸냄이의 심중을 헤아린 선생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더니 "점수는 그대로 A+줄 테니 동생 갖다 주거라"그러시더란다. 

다른 친구들은 자기가 만든 햄버거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딸냄이는 먹고 싶은 걸 꾹 참았다.

그 햄버거를 은박지에 잘 싸서 간직했다가 집에 돌아와서 동생과 반으로 나누어 먹었는데

아들 녀석이 그랬다

“작은누나가 만든 햄버거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라고.

저녁에 가게에서 돌아와 그 날의 일들을 두 아이를 통해 듣는데 나도 모르게 배시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동생을 사랑하는 작은 딸의 마음이 기특했기 때문이다. 

네 살 터울의 동생을 챙기는 모습이 엄마 못지않아서 대견했다.

아들이 새 아파트로 이사 온 후에 아토피 염이 생겨서 인스턴트 음식을 못 먹게 하는 바람에 햄버거는 잊고 살았다.

물 부어 먹는 라면을 비롯해 우리 집에서는 가공식품은 절대 금지였다.

그래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햄버거를 먹고 싶어 작은누나에게 햄버거 먹고 싶다고 투정을 부렸던 모양이다.

그걸 기억하고 있다가 가사실습 시간에 만든 햄버거를 집으로 가지고 와서 동생과 나누어 먹은 작은딸의 마음이 더없이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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