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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Oct 31. 2020

큰딸, 드디어 꿈을 이루다

경찰이 되기까지


큰딸은 아빠의 부도로 더 이상 대학을 다닐 수 없는 위기에 처했다.
어쩔 수 없이 휴학을 하고 1년간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등록금을 마련해 대학을 졸업했다.
취업 준비를 하던 큰딸이 어느 날, 엄마, 아빠 앞에 앉았다.
그리고 단호하게 간절하게 말했다.
"엄마, 아빠, 제가 얼른 취직해서 엄마 아빠를 도와야 하는데 이런 말씀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토익 만점 강사가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어학연수를 다녀와야 하는데 제 힘으로 공부하고 돌아올 테니 허락만 해 주세요. 
TESOL 과정을 공부하고 돌아와 최고의 영어 강사가 될게요."
큰딸은 영어 학원에서 단기간 일을 하여 비행기 표를 사고 
호주에서 한 달가량 버틸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들고 어학연수를 떠났다.  
그 당시 큰딸은 호주에서 가끔씩 안부 전화를 했었는데 그때마다
"어려움 없이 잘 지내니까 엄마, 아빠 제 걱정은 마세요"라고 했지만 
나중에 귀국해서 조금씩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어 보니 말도 못 할 만큼 고생을 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달래며 눈물 젖은 빵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전기세를 아끼기 위해 선풍기도 틀지 않았고, 추운 날에도 전기 매트도 쓰지 않았단다.
주얼리 회사에서 운영하는 백화점에서 근무하느라 다리는 퉁퉁 부었고, 
조금이라도 싼 방을 구하기 위해 수없이 가방을 쌌다가 풀었고,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공부하는 학교까지 트램을 이용하고 나머지 거리는 왕복 한 시간을 걸어 다녔단다.
영어 실력을 쌓기 위해 한국 사람이 없는 전문대 수준의 학교에 들어가서 혹독하게 자신을 담금질하며 

테솔 자격증을 따 가지고 돌아온 큰딸은 자신의 목표였던 영어 전문 강사가 되었다.

영어강사 일로 돈을 벌어서 아빠를 도왔다.
그 당시 아빠가 개인회생 절차를 밟고 있어서 한 달에 2백만 원씩 법원을 통해 빚을 갚고 있었고, 

사글셋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5년 간, 개인회생 절차가 끝나자 큰딸은 비로소 묻어 두었던 속내를 털어놓았다.
"경찰이 되고 싶어요,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공부하겠어요. 
 모아 놓은 돈도 좀 있고 부족한 건 아르바이트해서 충당할 테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큰딸은 꿈을 향해 첫걸음을 시작했다.
그러나 경찰 공부는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남들은 오직 공부에만 전념해도 합격이 힘든데 낮에는 아르바이트하고 

밤에 공부를 하다 보니 아무래도 공부가 뒤쳐지는 눈치였다.
한 번, 두 번, 낙방이 거듭 되면서 큰딸은 지쳐갔다.
공부하느라 모아 두었던 돈도 바닥을 드러냈고 자존감도 바닥으로 추락했다.
"공부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내가 경찰시험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탄식을 했다.
그쯤에서 경찰 공부를 포기하자니 그동안 공부한 게 아깝고 억울하기도 했다.
아니, 공부를 포기하면 평생 인생의 낙오자로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더 힘들어했다.


큰 딸이 여러 번의 시험에 낙방하고 시름에 젖어 있던 그즈음, 
나는 대학 기숙사에 있는 아들까지 불러 온 가족을 한자리에 모았다.
큰 딸이 좋아하는 잡채와 불고기를 볶아 놓고 맥주도 사다 놓으시고 오랜만에 다섯 식구가 모이니 

즐거워야 하는데 거듭된 실패로 기가 죽은 큰딸 때문에 분위기가 침울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환한 목소리로 힘주어 말했다.
"우리 큰딸, 엄마가 지원할 테니 노량진으로 가라. 

집에서 아르바이트하며 혼자 공부하느니 공시생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서 자극도 좀 받고 

하고 싶은 공부 실컷 해 보거라."

교사인 작은딸도 

"그렇게 해, 언니가 내 뒷바라지해 줬으니까 이제는 내가 언니 뒷바라지할게."


우리 가족은 그날 밤, 마치 큰 딸이 합격이라도 한 것처럼 기분 좋게 술잔을 들었다.

첫 잔은 "우리 큰딸을 위하여"

두 번째 잔은 "언니를 위하여"

그리고 세 번째 잔은 "큰누나를 위하여"건배를 외쳤다
그 날 그 자리는 어깨가 처져있던 큰딸에게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동안 어느 누구의 도움도 한사코 거절하던 큰딸은 

"꼭 합격해서 내려오겠다"는 각오로 캐리어에 옷가지 몇 벌과 책을 가득 싣고 노량진으로 향했다.
그리고 책상 앞에 가족사진을 붙여 놓고 공부를 시작했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그 사진을 보며 흩어지는 마음을 다잡았단다.


큰딸은 카페에 가지 않았고, 친구도 사귀지 않았다. 
그리고 길을 걷거나 화장실에 갈 때, 밥을 먹을 때, 깨어있는 모든 순간에는 

메모장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단다.
집에서 혼자 공부하던 방식에서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유명한 강사의 강의를 장학생으로 뽑혀 지원을 받으며 공부했다.
아들은 주말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큰누나에게 보내주며 
"큰누나! 밥은 꼭 챙겨 먹어. 공부도 체력이 있어야 해"라며 큰누나를 격려했다.
그렇게 공부에 전념한 덕택에 3개월 만에 필기시험에 합격했고, 

체력시험과 면접을 거쳐 큰딸은 드디어 대한민국의 경찰이 되었다.


엄마 아빠가 뒷바라지를 제대로 했더라면 좀 더 일찍 합격할 수 있었는데, 

못난 부모 때문에 너무 많은 고생을 한 큰딸에게 미안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맏자식 노릇 하느라 서른 넘어서 자기의 꿈을 향해 도전을 한 큰딸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큰딸은 현재 서울 동작경찰서에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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