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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Oct 31. 2020

시를 담은 작은딸 편지

미국에 단기 어학 연수를 간 딸의 편지

그리운 우리 엄마에게


엄마 메일을 보고 나면 눈물이 나려고 해요.

엄마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메일만 봐도 느껴져서 그런가 봐요

오늘 엄마가 보내온 메일에 "울지 마 톤즈"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 있는 걸 보니, 엄마도 방송을 보았군요.

수단의 슈바이처로 살다 떠나신 고 이태석 신부님의 생애는 종교를 초월하여 인간이 어떻게 화합하고 즐겁게 사는지를 가르쳐 주신 분이셨어요.

그동안 걸어왔던 의사의 길을 접고 신부가 되어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라는 마을에서 외면받는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고 학교를 지어 학생들을 가르쳤지요.

그의 짧은 생애가 안타깝지만 그의 정신은 계승되어 톤즈에 학교와 병원을 건립하고 많은 학생에게 교육의 혜택을 주고 있다고 해요.

나는 그 방송을 보면서 정말 한 자루의 초 같은 인생을 사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의 몸이 불살라져 가는 것도 모른 채, 조용하고 아름답게 세상을 비추다가 사라진 촛불 같은 분.

그분이 몸소 남긴 가르침은 자신과 같이 헌신적으로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 어려운 사람을 둘러보고, 그들에게 따뜻하게 손길을 내밀 수 있는 마음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나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엄마도 그런 생각 들었지요?


아, 엄마가 나를 많이 보고 싶어 하는 거 같아서 사진 몇 장을 첨부했어요

캔터키가 경마로 무지 유명한 곳인데, 얼마 전에 캔터키 경마 박물관에도 놀러 가고,

어제는 링컨 대통령이 태어난 통나무 집에도 다녀왔어요.

이곳저곳 많이 다녀와서 놀러 갔다 온 사진들이 많아요. 

스타벅스라는 커피집도 미국이 본고장인데, 처음으로 사 먹어본 스타벅스 커피와 함께 찍은 사진도 있고요.

미국에 있으면 참 살기 좋은 나라라는 것이 느껴져요.

교통도 뻥뻥 잘 뚫려있고, 즐길거리도 많고, 사람들도 여유로운 거 같아요.

그런데 백만 번 생각해도 난 여기보다 한국이 좋아요.

한국에서 엄마, 아빠, 언니, 똥강아지랑 사는 게 제일 행복해요.

맨날 윤기 나는 밥을 먹을 수 있고, 엄마가 해 주시는 묵은지 쪽갈비 찜과 비빔국수 생각이 많이 나네요.


그래도 미국까지 온 만큼 최대한 영어 실력을 많이 키워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제 임용고시도 준비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기본적인 영어 듣기, 쓰기, 말하기 능력이 뒷받침이 돼야 하는 걸 생각하면 여기 있는 1분 1초도 소홀히 하면 안 되는 거 같아요

많이 듣고, 많이 말하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데 엄마! 나 여기서 매일매일 칭찬받아요.

내 발음이랑 억양이 정말 미국인 못지않게 자연스럽다고 칭찬받은 적도 있고,

작문할 때 웬만한 미국인보다 표현력이 뛰어나다고 칭찬받은 적도 있어요.

선생님이 나보고 미국에서 공부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기도 하셨어요.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단순히 칭찬을 받아서 기분이 좋기보다는, 

그동안 내가 공부해왔던 방식이 옳았다는 걸 인정받는 거 같아서 기뻤어요. 

독일어도 그렇고, 영어도 그렇고, 나는 항상 원어민이 발음하는 그대로 하고 싶어서 연습했거든요.

새로운 단어를 볼 때마다 발음기호를 보고 그 단어의 발음과 강세를 확인했던 습관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내가 된 거 같아요.

글 쓸 때 표현력이 좋은 건, 내 생각에 난 엄마를 닮아서 그런 거 같아요.

감정을 표현할 때에도 난 그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단어를 찾기 위해 사전을 찾아보고, 

그중에서 가장 느낌이 와 닿는 걸 고르는데, 

난 원어민에게도 어색하지 않은 적절한 단어를 찾아내는데 재능이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요즘 느끼는 건데, 내가 우리 문학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한다면 

참 잘할 수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나라에 뛰어난 문인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노벨문학상이 안 나온 건 번역의 문제라고 늘 생각했거든요.

내가 그걸 한번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엄마, 내가 너무 자만하는 건가? 

나한테 이렇게 좋은 재능을 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그나저나 똥강아지가 종종 내 얘기하는 거 같네요?

세뱃돈 받으면 나랑 옷 사러 갈 생각도 하고!

보통 다른 남동생들은 누나랑 쇼핑할 생각 절대 안 할 텐데

그 녀석은 누나들을 참 좋아하는 거 같아요.

기특한 우리 똥강아지...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외삼촌과 약속한 대로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설날에 친척들한테 나 미국에 단기 어학연수 간 거 학교에서 장학생으로 보내준 거라고 얘기하세요.

집안 살림도 어려운데 미국은 왜 갔느냐고 큰아빠, 작은 아빠가 한 마디씩 하실 것 같아요.

큰집에 가면 우리 엄마, 아빠 무시당하는 거 같아서 기분 나쁘지만, 조금만 참으세요.

내가 초수에 임용고시 합격해서 엄마, 아빠 목에 힘주게 해 줄게요.

어제 영미문학 강의를 듣는데 너무 가슴 찡한 시가 있어서, 엄마한테도 소개해주고 싶어요!


미국의 유명한 흑인 시인 로버트 헤이든이라는 사람이 쓴 시인데 내가 한번 번역해볼게요!

잘 읽어봐요, 엄마!


그 겨울 일요일들

일요일에도 아버지는 일찍 눈을 떠
어스름한 새벽의 추위 속에 옷을 입으셨다
그리고는 주중의 노동으로 아프도록 부르튼 손으로
밑불을 살려 집안에 온기를 불어넣었지만
아무도 그에게 감사하지 않았다

나는 추위를 가르는 장작 패는 소리를 들으며 일어났고
방이 따뜻해질 때에서야, 비로소 그는 우리를 부르셨다
그러면 나는 집안 가득한 오래된 가난의 분노를 느끼며
느릿느릿 일어나 옷을 입었다

추위를 몰아내고
나의 좋은 신발을 가지런히 닦아주신 당신에게
무심한 듯 말을 내뱉으며
내가 무엇을 알았을까, 내가 뭘 알았을까
사랑의 근엄함과 외로운 의무에 대해.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아빠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날뻔했어요.

아마 엄마는 이 시를 읽고 외할아버지 생각이 났겠지요?

세상의 모든 아빠들은 다 똑같은 모습인가 봐요. 내가 얼른 선생님 돼서 효도할게요!

엄마, 많이 그립고 보고 싶어요. 아빠에게도 작은 딸이 많이 보고 싶어 한다고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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