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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Oct 31. 2020

대학생 작은 딸의 편지글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우리 엄마.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우리 엄마
지금은 밤 10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에요.
시골에 위치한 학교 기숙사 창밖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개구리 우는 소리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저를 편안하게 해 주고, 책을 읽다가도 저는 가만히 생각에 잠기곤 해요.

그럴 때면 어김없이 가장 먼저 보고 싶은 가족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나에게 언제나 한 그루의 든든한 느티나무가 되어주시는 아빠, 

스스로의 힘으로 어학연수를 가기 위해 늦은 밤까지 아르바이트하면서도 불평 한 마디 안 하는 우리 언니, 

누나 앞에서는 무뚝뚝해도 주말에 작은누나 오면 주려고 냉장고 속에 오렌지를 꽁꽁 숨겨놓는다는 우리 막내, 

그리고 항상 우리 삼 남매를 위해 고생하시는, 생각만 해도 애틋한 우리 엄마.
누군가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면 

저는 망설임 없이 ‘우리 가족’이라고 대답해요. 
잊을 수 없이 즐거운 기억들도, 지금 생각해도 가슴 아파오는 슬픈 기억들도 모두 함께 해온 우리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 의지해왔잖아요. 


엄마, 그중에서 특히 엄마는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아려오는 존재인 거 아세요?
제 인생에서 무척 중요였던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부도로 집마저 넘어가는 모습을 보며 

저는 너무도 막막하고 가슴이 아팠어요. 
앞으로 닥쳐올 경제적 부담감이나 더 이상 좋은 집에서 살 수 없다는 사실에 두렵기보다는 

웃음과 희망을 잃은 엄마, 아빠의 그늘진 얼굴에 너무도 속이 상했기 때문이에요.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가도 엄마, 아빠의 슬픈 눈이 떠올라 억장이 무너질 듯 눈물이 나올 때면 

혼자 화장실로 달려가 숨죽여 울기도 했어요. 
그럴수록 저는 대학에 합격해 엄마, 아빠의 얼굴에 다시 웃음을 찾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를 악물고 더욱 열심히 공부했어야만 했어요.

그것이 제가 그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엄마가 늘 그랬잖아요. '도선생님 어머님'라는 말을 들어보는 게 엄마 소원이라고. 
솔직히 중학생 때에는 그런 엄마의 바람이 싫기도 했어요.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엄마의 이루지 못한 꿈을 제가 대신 이루어주길 바라시는 것만 같아 부담스러웠거든요.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어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고, 그로 인해 긍정적인 변화를 겪는 내 모습을 보며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교사가 얼마나 중요하고 멋진 존재인지 깨달았어요.

그리고 저는 한국교원대학교에 입학했지요.


엄마는 제가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는데도 보내지 못한 것을 가슴 아파하시며 

늘 입버릇처럼 미안하다고 하시지만, 저는 제 선택에 결코 후회하지 않아요. 

저는 저의 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고, 지금의 상황에 무척 만족해요. 
‘학교 공부에 충실한 것이 결국 수능 공부이다’라는 신념으로 학원, 과외의 도움 없이 

괜찮은 내신 성적을 유지했던 제가 서울권 대학교에 수시 지원을 하지 않은 것은 솔직히 아까운 일이었어요. 
다른 친구들이 대학교에 수시 원서를 넣어 합격을 하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좌절감에 주저 않고 싶은 적도 많았고요.
하지만 제가 교사의 길을 선택한 것은 단순히 엄마의 바람 때문도 아니고, 
서울의 사립대학의 어마어마한 등록금이 저를 가로막았기 때문도 아니었어요.

훌륭한 교사가 되고 싶다는 저의 간절한 꿈이 여기까지 저를 이끈 것이니까요.


하지만 요즘 교권이 무너지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선생님과 제자 사이에 유대감이나 존중을 찾아볼 수 없는 신문 기사들을 볼 때면 솔직히 두려워져요.

제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엄마, 진심은 통하는 법이잖아요.

엄마, 아빠가 늘 강조하셨듯이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입이 아닌 가슴으로 아이들과 소통하는 선생님이 된다면 아이들도 저를 존중해주고 믿어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교사가 되면 무엇보다도 가정의 불화나 경제적 문제로 상처 받는 아이들을 안아주고 싶어요. 
그러한 아이들의 심정을 잘 알기에 저는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치만 엄마도 잘 알고 계시죠?

욕심 많은 제가 결코 평생 선생님을 해서는 만족할 수 없을 거라는 걸요. 
저는 좀 더 넓은 세상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알아가고 싶어요.
대학에 와서 독일어교육과 영어교육을 함께 전공하면서 저는 참 많은 것들을 배웠어요. 
언어 자체를 공부하는 언어학도 배웠고, 원어민 교수님들의 회화 수업도 들었고, 

영어와 독일어권의 문화와 문학들을 배우기도 했어요. 
특히 문학 수업을 들으며 원서를 번역을 하다 보니 저는 요즘 새로운 길에 대한 꿈이 생겼어요. 
아름다운 우리 문학을 독일어, 영어로 번역하거나 

독일어, 영어로 된 문학을 우리말로 자연스럽게 번역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요. 
번역이란 단순히 다른 언어로 된 문장의 의미를 전달하는 작업이라기보다는 

작가의 의도와 문체를 살려서 또 다른 문학을 창조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를 닮아서 어릴 적부터 글 쓰는 일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즐기면서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능하다면 선생님을 하면서 함께 병행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선생님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이후에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향해 계속 걸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바보 같은 일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아직 젊고, 가능성이 많아요. 간절히 원하고, 노력한다면 못 이룰 것은 없어요. 
앞으로 더 많이 고민해봐야겠지만, 

제가 어떤 길을 가더라도 엄마는 늘 그래 왔듯이 신뢰 가득한 눈빛으로 저를 응원해주시리라 믿어요.


문학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엄마에게 꼭 소개해주고 싶은 시가 생각나네요. 
학교에서 영미문화 시간에 배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14행으로 이루어진 시) 중에 하나인데요.

머리에 소금 꽃이 핀 교수님께서는 이 시를 읽으실 때마다 당신의 유일한 아들이 떠오르신다고 하셨는데, 

저도 이 시를 읽으면 가족들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따뜻해져요. 
아마 엄마도 공감하실 거예요.

피천득 시인의 유명한 번역본이 있지만

제가 느낀점을 담아 제 나름대로 번역해볼게요.


<Shakespeare sonnet 29>
운명으로부터 수모를 당하고,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당하면
나는 소외된 내 처지가 서러워 혼자 깊이 울어봅니다.
귀머거리 하늘을 나의 소용없는 처절한 외침으로 괴롭히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내 운명을 저주합니다.
나도 어느 누군가처럼 희망 속에서 풍요롭게 살기를 소망하고,
누구처럼 잘 생기거나, 친구가 많은 또 다른 누구처럼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 사람의 재능과 저 사람의 능력을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나 스스로가 자신에게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
나는 자신을 경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도 문득 사랑하는 당신을 생각하면
나는 마치 이른 새벽에 일어나 
적막한 대지로부터 날아올라 천국의 문에서 노래를 부르는 종달새,
당신의 아름다운 사랑을 기억할 때면
나는 너무도 풍요로워져 세상 어느 제왕과도 내 운명을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엄마, 엄마는 나에게 이런 존재예요.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은 순간에서도 

엄마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속에는 희망의 불꽃이 피어오르고, 

한 걸음 한 걸음 내 길을 가야 할 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엄마의 격려와 믿음이에요. 
나는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진정 행복하고 

내 운명을 그 어느 부잣집의 딸과 바꾸고 싶은 생각은 단 한순간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러니 ‘이렇게 귀하고 똑똑한 우리 딸내미! 우리 집 말고 부잣집에 태어나지 그랬어?’라는 말은 하지 말아요. 

엄마가 그런 말 할 때마다 너무 속상하고 마음 아파요.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맛있는 과일, 좋은 신발 한 켤레, 예쁜 옷을 사는 것을 아까워하시면서 

늘 우리 삼 남매에게는 좋은 것만 주고 싶어 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하루라도 빨리 

엄마 고생 그 그동안 받아온 모든 것에 보답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사랑해요, 우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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