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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Oct 31. 2020

고3 작은딸의 편지글

어버이 날에 받은 편지

어버이날이 다가오는데 입시생이다 보니 부모님께 선물을 준비할 만한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편지를 쓰려니까 좀 쑥스럽고 새삼스럽다는 생각이 드네요.
고등학교 3학년이나 되어서도 매년 별다를 게 없는 "앞으로도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사랑해요"
라는 편지를 쓰기는 부끄러웠습니다.
아니, 그 보다도 저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더 앞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위 명문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보니 같은 반 친구들의 부모님들이 

대부분 교수, 변호사, 의사를 비롯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부모님의 직업에 대한 열등감이나 부끄러움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던 저는 
언제부터인가 친구들 사이에서 부모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기가 죽기 시작했습니다.
'장사치'라고 깎아내리며 장사하는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저를 슬프게 했습니다.
그건 단지 낡은 유교적인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보수적인 사람들의 시선 일뿐이라고 
아무리 저 자신에게 타일러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어쩌다가 시내에 볼 일이 있어 나갔다가 엄마가 일하시는 매장에 놀러 가기라도 하면
진열장에 잠시라도 시선을 두는 사람들에게 "뭘 찾으세요"라고 물어보셨다가
무시당하기 일쑤인 엄마의 모습이 안쓰러웠습니다.
어떤 날에는 막 점심 식사를 하려던 참에 온 손님에게 전자사전 기능이나 콘텐츠를 한참 설명했지만 

손님은 다른 데 가서 더 보고 오겠다고 가버렸고,

진열장을 정리한 후 이미 다 불어버린 칼국수를 드시는 엄마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날 저는 다니던 수학 학원에서 수강료를 환불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백화점에 옷을 사러 가면 엄마가 정상 매장으로 제 손을 잡아끌어도 

엄마의 그 손을 뿌리치고 제가 들어서는 곳은 언제나 상설매장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 학원이나 과외를 하지 않고 혼자서 어떻게 공부를 하느냐며 걱정을 하실 때는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하는 공부는 정말 힘겹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새벽 두 시가 지나도록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를 앞에 놓고 뜨거운 눈물을 흘린 날은 얼마나 많았는지,
주무시는 엄마 아빠가 들으실까 봐 속울음을 삼키며 얼마나 많은 좌절을 겪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쪽집게 과외 선생님을 만나고 수학성적을 쉽게 올리는 반 친구를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 때마다 생각나는 불어 터진 칼국수를 드시던 엄마의 모습은 

날카로운 바늘로 심장을 찌르듯이 제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렇게 버티다가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지쳐 버렸고, 부모님이  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직업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장사를 하시는지 원망스러웠습니다.

별장 같은 2층 집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늘 여유 있는 친구를 볼 때마다 마냥 부러웠습니다.
돈 걱정 없이 입고 싶은 옷, 먹고 싶은 음식, 메고 싶은 비싼 메이커 가방을 사는 친구들 사이에서 
상설매장에서 산 값싼 옷을 입은 제가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나름대로 부모님의 고생을 헤아리는 효녀라고 자부했지만 

저도 어쩔 수 없이 멋 부리고 싶고, 갖고 싶은 것도 많은 철없는 여고생이었을 뿐입니다.
그렇게 채울 수 없는 허기와 욕심에 괴로운 나날을 보낼 즈음
엄마의 편지 한 통에 저는 그만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소중한 나의 작은 딸에게'로 시작된 엄마의 편지글,
그 내용 중에서 아직도 제 가슴에 도흔처럼 남아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쁜 딸! 너 그거 알고 있니?
사람이 느끼는 행복 중에서 가장 큰 행복은 바로 자식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걸.
엄마 생애 가장 위대한 일은 바로 너희 삼 남매를 낳아서 
스물셋, 열아홉, 열다섯 되도록 바르고 건강하게 잘 길렀다는 것, 
매 순간순간 너희들의 모습은 늘 엄마에게 가슴 벅찬 행복이고 기쁨이란다
똑똑하고 예쁜 큰딸, 착하고 상냥한 작은딸, 반듯하고 명석한 내 아들!
가끔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이 되어 준 너희들 생각을 하면 가슴에 환하게 불이 켜진단다.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 생명, 너희 삼 남매가 있어
엄마의 생은 빛나는 별빛이고 꽃이 한창인 숲일 수 있단다


엄마의 편지를 더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온통 눈물이 범벅되어 버린 그 편지를 가슴에 품고
죄송함과 죄책감이 범벅이 된 속죄의 눈물을 끝없이 흘렸습니다.
제가 얼마나 어리석고 생각이 짧았는지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엄마 아빠께서는 이 힘겨운 불황의 긴 터널 속에서도 우리 삼 남매를 바라보며 
온갖 고통을 견디신다는 걸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는 넘치도록 큰 부모님의 사랑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습니다.
아침마다 내가 기분 좋게 잠에서 깨어나도록 내 발을 꼭꼭 주물러 주시는 아빠의 큼직한 손.
아무리 피곤해도 새벽 6시면 어김없이 윤기 나는 현미밥에 맛깔스러운 반찬을 만들어
나에게 밥 한술이라도 더 먹이려 애쓰시는 엄마의 마음.
매일 아침 과일을 깎아 오목한 그릇에 담아두었다가 나를 태우고 등교시켜 주시는 10여 분의 시간동안
차 안에서 과일을 먹을 수 있도록 챙겨주시는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던 아빠의 배려.
11시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는 시간에 늘 학교 앞으로 나를 태우러 오시는 사랑 많은 아빠.
내가 방울토마토가 맛있다고 했더니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방울토마토를 사 오시던 엄마의 사랑.
그 모든 일상들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부모님의 사랑이었음을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언제나 우리 삼 남매의 토양이 되어 주시는 그 헌신, 그 사랑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께 한 가지 간곡하게 당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제가 과외도 안 하고 학원 수강도 안 하는 걸 가슴 아프게 생각하지 마세요.
지금까지 그래오셨던 것처럼 작은딸 믿고 지켜봐 주세요.
그동안 극복한 숱한 좌절, 시행착오 그리고 눈물겨운 노력이 오히려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든 것 같아요.
저 혼자서 공부해도 영어는 언제나 1등급인걸요.
수능일 다가온다고 초조해하지도 마세요.
엄마 아빠의 그 노고를 보상해 드리기 위해서라도 꼭 성공하겠습니다.
친구들이 가진 옷이나 친구들이 누리는 환경을 부러워하지 말고
명석한 두뇌와 재능으로 너 자신을 명품으로 만들라는 엄마의 그 당부 잊지 않겠습니다.

어버이 날을 맞이하여 평소에 엄마 아빠께 고백하지 못했던 말을 이렇게 편지로 대신합니다.
엄마, 아빠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이 편지를 쓴 작은딸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임용에 합격하여 영어교사가 되었고,

지금은 자신이 졸업한 고등학교에서 후배들을 사랑과 열정으로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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