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정 Oct 31. 2020

아버지와 국밥

졸업하던 날 아버지가 사주신 국밥 한 그릇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졸업식을 끝내고 자취방으로 돌아오니 아버지께서 기다리고 계셨다. 
시골집에서 늦게 나오는 바람에 졸업식장에는 가지 못했지만

나에게 밥 한 그릇 사 먹이려고 기다렸다는 아버지를 따라간 곳은 시장 입구 허름한 국밥집이었다. 
그 시절에는 짜장면 한 그릇이면 최고로 호사스러운 외식이었는데 

아버지는 명절이나 제사 때 맛볼 수 있었던 고깃국을 딸에게 먹이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구들장이 뜨끈한 방에 앉아서 잠시 기다리니 큼지막한 질그릇 뚝배기에 설설 끓는 국밥 두 그릇이 들어왔다. 
아버지는 대뜸 당신 국그릇을 내 국그릇 가까이 밀어 놓으시고는 
당신 국그릇 속의 고기를 건져 내 국그릇으로 퍼넣으셨다. 
저는 됐으니까 아버지 드시라고, 너무 많아서 이걸 어떻게 다 먹느냐고 한사코 만류해도 

아버지는 못 들은 척하시면서 당신 국그릇의 건더기를 딸의 국그릇으로 퍼 담으셨다.

아버지는 "아침밥을 든든하게 먹었더니 밥 생각이 없다. 입천장 데지 않게 천천히 식혀서 먹으라"고 하시며

내 숟가락 위에 잘 익은 섞박지와 배추김치를 번갈아 올려 주셨다.

배가 고팠던 나는 고기가 뻑뻑하게 들어 있는 국밥 한 그릇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내가 내리 딸 둘을 낳고 셋째를 임신했을 때, 유난히 입덧이 심해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나른한 봄날 며칠 째 빈속으로 누워 있던 나는 문득 그때 아버지와 함께 먹었던 그 국밥 생각이 났다.

잘 익은 김치 얹어서 먹었던 그 국밥 한 그릇만 먹으면 이깟 입덧쯤 훌훌 털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누워 있던 나는 벌떡 일어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당장 그 국밥이 먹고 싶다고. 

물 한 모금 넘기는 것도 힘들어하던 아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니까 몹시 반가웠던 모양이다.
내 전화를 받은 남편은 단숨에 달려와 나를 태우고 마티재를 넘고 금강변을 달려 공주로 향했다.  

꽤 세월이 흘렀는데도 다행히 그 국밥집은 낡은 양철 간판을 그대로 달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졸업하던 날 아버지와 함께 왔을 때처럼 뚝배기에 설설 끓는 국밥 두 그릇이 나왔다. 
남편은 국밥을 몇 술 뜨더니 "이 국밥이 맛있어? 시내 일식집에서 내가 사다 준 생선초밥은 냄새난다고  

쳐다보지도 않더니..."라고 말끝을 흐리며 슬그머니 수저를 내려놓았다.

나는 입천장이 벗겨지는 것도 모르고 그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을 거뜬하게 비우고 

남편의 뚝배기에 든 건더기도 더 건져다가 먹었다.

어찌나 맛있던지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는 것도 몰랐다.

남편이 어찌 알겠는가! 내 국밥에는 아버지의 다정한 눈빛과 따뜻한 사랑의 추억이 듬뿍 들어 있었다는 것을. 

그 맛은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특별한 것이라는 것을.....

어쩌면 나는 큰딸이 맛있게 밥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아버지의 그 눈빛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이전 04화 그 여름의 아버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