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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Oct 31. 2020

그 여름의 아버지

거친 물살 가르며 자식 업어 건너시던.

시내에서 자취를 하던 우리 삼 남매가 주말을 시골집에서 보냈던 그 해 여름밤,
밤새도록 그칠 줄 모르고 비가 퍼부었다.
빗소리가 어찌나 거세게 들이치는지 잠결인 듯 꿈결인 듯 내일 아침에 학교 갈 일이 걱정되어 잠을 설쳤다.
그러다 새벽녘, 깜빡 깊은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언제 비가 또 쏟아질지 모르니 얼른 아침밥 먹고 학교 가라”는 아버지의 다급한 목소리에 깨어나 보니 

거짓말처럼 비가 그쳐 있었다.
우리 삼 남매가 마루에 앉아 아침밥을 먹는 사이 

아버지는 깨끗하게 씻어서 말려 두었던 비료포대 세 개를 꺼내 오셨다.
또다시 비가 쏟아지면 자식들의 책가방이 비에 젖을까 봐서 아버지는 그 복합비료 포대 안에  
자식들의 책가방을 하나씩 집어넣어 단단히 지게 위에 묶으셨다.  
우리가 밥숟가락을 놓기가 바쁘게 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성큼성큼 앞서 걸으셨다.  
통학버스가 오려면 아직 시간이 여유가 있는데 웬일인지 아버지의 걸음은 몹시 서두르셨다.  
우리 삼 남매는 양말과 운동화를 벗어 들고 맨발로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치맛자락을 정강이까지 집어 들고 걷는 논둑길은 곳곳에 무너져 물이 종아리를 휘감았다.
논둑을 지나고 커다란 냇가 앞에 다다른 우리는 입이 쩍 벌어졌다.  
넙적하게 돌무더기를 쌓아 만든 징검다리는 물속에 잠기고 붉은 황토물이 넘실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느이들은 옷 젖으면 안 되니까 꼼짝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거라 아버지가 업어서 건너 줄 테니." 
아버지는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작대기로 발밑 물속을 가늠하시며 황토 물살을 가르기 시작하셨다.  
처음엔 아버지의 종아리에 닿던 황톳물은 아버지가 냇물 한가운데로 들어 갈수록 

무릎을 지나고 허벅지까지 잠겨 들어갔다. 
우리들은 숨을 죽이고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무사히 내를 건너 둑 위에 지게를 내려놓으시더니 다시 가셨던 길을 되짚어 오셨다.  
그리고는 그 당시 사범대 1학년이었던 셋째 오빠 앞에 등을 돌려 대고 몸을 낮추셨다.  
셋째 오빠가 혼자서 건너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아버지는 버럭 역정을 내셨다. 
"네가 건너기는 위험하단 말여, 얼른 아비 한티 업히지 못혀!" 
아버지는 다 자란 아들의 옷자락을 확 잡아당겨 덥석 업으시더니 다시 황토 물살을 건너기 시작하셨다.  
셋째 오빠를 냇가에 내려놓은 아버지는 다시 돌아오셔서 내 앞으로 등을 돌리셨다.  
그 당시 나는 수줍음 많은 2학년 여고생이었다.  
아버지는 자꾸만 나에게 등을 들이 대시며 재촉을 하셨지만 

나는 아버지의 등에 업히는 것이 부끄러워 뒷걸음질을 쳤다.
그런 내 마음을 헤아리셨던 걸까요? 
아버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달래듯이 말씀하셨다. 
"아버지한테 뭐가 부끄러워서 그려~ 통학버스 놓칠라 어서 업히거라..." 
아버지의 등에 업혀서 내려다본 황토 물살은 냇가에 서서 바라볼 때 보다 더 거세고 무서웠다.
나는 아버지의 목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격노한 자연에 대한 공포감과 큰 산처럼 든든한 아버지를 미더워하던 그 마음은 

내 나이 이순을 눈앞에 둔 지금까지 내 마음에 남아있다. 

아버지가 골수암으로 시한부를 선고받고 병원에 계실 때, 

셋째 오빠는 치료실이나 검사실로 이동을 할 때 아버지를 업고 다녔다,  
이생에서 하루하루 멀어지는 아버지의 따뜻한 체온을 등줄기로 느끼며 

그 순간이 너무나 간절하고 소중해서, 아버지를 휠체어나 침대에 눕히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 업은 아버지의 몸이 마른 삭정이처럼 가벼워서 억장이 무너졌다는 오빠. 
거친 황톳물 살 가로지르던 아버지의 그 당당한 걸음걸이와 산 같이 든든하던 아버지의 등이 그리워 

오빠는 속울음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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