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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Oct 31. 2020

거스름돈이 이상해요

심부름 간 아들에게 생긴 일

아들 녀석이 초등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하루는 김치를 담그는데 마늘이 좀 부족했다.
그래서 아들에게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주면서 깐 마늘 한 바구니를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그런데 지폐 한 장 들고 쪼르르 달려 나간 아들이 한참을 지나도 돌아오지를 않았다.
아들은 엄마의 단골집을 다 꿰고 있어서 시간이 늦을 이유가 없는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엄마가 야채는 어느 가게에서 사는지, 마트는 어디를 가고, 푸줏간은 어디를 애용하는지, 

과일은 어디를 즐겨 찾는지, 그리고 깐 마늘은 아파트 입구 할머니에게서 산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내가 아들을 낳을 때 산고가 심해서 아들을 낳고 한동안 오른쪽 팔을 쓰지 못했다.
물 컵 하나 드는 일도 버거울 만큼 손목에 힘이 없어서 장보는 일은 늘 남편이 도와주었다.
세월이 지나서 아들이 자란 만큼 많이 회복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손목에 힘이 없어서 시장에 갈 때는 아들이 따라나섰다.
그러라고 한건 아닌데 언제부턴가 내가 시장에 간다고 하면 

아들은 엄마를 따라나서서 당연한 듯이 장바구니를 들어주었다.
그러다 보니 아들은 시장에서의 내 행동반경을 다 알고 있어서 
깐 마늘은 아파트 입구의 할머니에게 가서 사면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기다려도 아들이 오지 않아 막 현관을 나서려는데 그때서야 아들 녀석이 발그레한 얼굴로 황급히 들어섰다.
내가 왜 이렇게 늦었느냐고 다그치려고 하는 순간 아들이 종이봉지를 불쑥 내 앞으로 내밀었다. 
"엄마, 이 붕어빵 마늘 할머니가 사 주셨어요" 
"그 할머니가 왜 너한테 붕어빵을 사 주셨는데? 

너, 엄마가 길거리 음식 먹지 말라고 하니까 붕어빵 먹고 싶은데  엄마에게 혼날 거 같으니까

혹시 할머니 핑계 대는 거 아니야?" 
"아니에요, 엄마, 제가 찬찬히 얘기해 드릴 테니까 이 붕어빵 엄마도 드세요."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만 원짜리 한 장을 내고 3천 원짜리 깐 마늘 한 바구니를 샀단다.
마늘이 든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한 손에는 거스름돈을 쥐고 거의 집 앞에 이르러서 

무심코 거스름돈이 든 손을 들여다보니까 좀 이상하더란다.
걸음을 멈추고 손에 꼭 쥐고 있던 거스름돈을 펼쳐보니 천 원짜리 지폐 사이에 5천 원짜리 한 장이 끼어있었다.

그때는 화폐가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예전의 지폐는 천 원짜리와 5천 원짜리의 지폐 크기가 현저히 달랐지만 

새로운 지폐는 색깔만 다를 뿐 그 크기에 별 차이가 없어졌다.
아들은 갑자기 가슴이 막 뛰더란다. 

만원을 내고 3천 원어치 마늘을 사고도 오히려 돈이 만 천 원으로 늘어났으니 어린 아들 가슴이 온전하겠는가?
어떻게 해야 하나... 엘리베이터 앞에서 망설이는데 갑자기 외할머니 생각이 나더란다.
마늘 파는 할머니를 보면 외할머니가 생각나서 무더운 여름날에는 시원한 두유를 사다 드리곤 했는데,

하루 종일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마늘을 까는 할머니의 모습과 외할머니의 모습이 겹쳐졌다고 한다.

그대로 왔던 길 되짚어 달려가서 그 할머니께 거스름돈을 돌려 드리면서 

5천 원짜리가 한 장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날도 어두운 데다가 눈이 침침해서 돈 색깔이 잘 안 보여서 그랬던 모양인데, 

어쩌면 이렇게 착한 학생이 다 있느냐"며 큰소리로 칭찬을 하시더란다.
그러자 그 곁에서 배추 파는 아줌마 사과 파는 아저씨도 칭찬해 주시고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쳐다봐서 좀 부끄러웠지만 기분은 좋았단다.


"엄마, 그 할머니가 이 붕어빵 사 주시면서 저한테 그러셨어요 나중에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요."
더 많이 받은 거스름돈을 돌려 드린 아들의 행동은 당연한 것이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요즈음 사람들이 어디 교과서처럼만 살아가던가?
누구나 정답은 알고 있지만 그 정답대로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남을 속이고 

심지어 흉기 들이대며 남의 것을 빼앗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뜻밖의 공돈이 거저 굴러 들어왔으니 엄마에게 거짓말하고 혼자서 슬그머니 써버려도 모를 일이었다.


퇴근한 남편과 붕어빵을 하나씩 나누어 먹으며 낮에 있었던 아들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두 딸들도 막내 동생을 토닥토닥 안아주면서 기특하다고, 아주 잘했다고, 자랑스러운 내 동생이라고, 

아낌없는 칭찬을 해 주었다.
그 뒤로 나는 아침마다 아들을 깨울 때 아들의 볼에 내 볼을 비비며 이렇게 말해주었다.
"훌륭한 사람이 될 우리 아들, 그만 일어나세요."
"장래가 촉망되는 우리 아들! 아침밥 먹고 학교 가야지!"
나는 알고 있다.
엄마에게서 늘 이렇게 예쁜 말을 듣고 자란 아들은 앞으로도 절대 비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너무 웃자라거나 쓸모없게 된 나무가 있을 경우 
톱이나 칼로 잘라버리는 대신 온 부락민들이 모여 그 나무를 향해 크게 소리 지른다고 한다.
"너는 살 가치가 없어!" "우린 널 사랑하지 않아!" "차라리 죽어 버려 죽어 버려!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려!" 
그 나무가 들어서 가슴 아파할 만한 말을 계속하면 그 나무가 시들시들 말라서 죽어버린다고 한다.
말 한마디가 이렇게 생명을 좌우할 만큼 폭력적일 수 있고, 
오랫동안 마음의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한 예가 될 수 있다.

장영희 문학 에세이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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