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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Oct 31. 2020

아들과의 봉사 활동

장애인과 함께 문화재 돌아보기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고 처음 열린 학부모 모임에 참석했을 때,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봉사할 수 있는 "사랑나무 가족봉사단"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잖아도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과 대화가 줄고 사이가 소원(疏遠)해지고 있어서 고민하던 차에 
이보다 더 좋은 계기는 없을 것 같아서 아들과 함께 봉사단에 가입했다.
아들은 "공부할 시간도 빠듯한 데다가 놀토에는 늦잠도 푹 자고 여유롭게 쉬고 싶은데
엄마하고 봉사하러 다닐 시간이 어디 있느냐"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나는 그런 아들을 앉혀놓고 차근차근 설득을 했다.
"엄마는 너와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 봉사단체에 가입한 거야. 생각해봐. 

너는 아침 일찍 학교에 가면 야간 자율학습 끝내고 늦은 밤이나 돼야지 집으로 돌아오잖아.  

휴일에도 늦잠 자고 방에 틀어 박혀 있으니 우리 아들 얼굴 한번 제대로 보기도 힘들어.
그래서 한 달 에 두 번 놀토에는 네가 모든 것 다 내려놓고 엄마와 함께 보람 있는 일 하면서 

바깥바람도 쐬면서 뜻깊은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어.
평소에 미처 나누지 못한 대화도 나누고 맑은 공기 마시며 자연 속을 걷고 싶기도 하고......"
아들의 눈치를 살피며 말끝을 흐리자 그때서야 아들이 흔쾌히 허락을 했다.


맨 처음 봉사하던 날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할 만큼 힘이 들었다.
그 날 내가 맡은 일은 휠체어를 밀어주는 동행이 없으면 집 밖을 벗어 날 수 없는 
중증 장애인 여자아이를 내 차에 태워서 문화재가 있는 곳까지 이동해서 
함께 문화재를 관람하고 점심 식사까지 한 후에 집으로 데려다주는 일이었다.
장애인 인권포럼에 가입한 삼십 여 명의 학생과 학부모는 각각 자기에게 배정된 장애인을 데리고
아침 9시까지 문화재가 있는 곳으로 집결을 해야 하므로 나는 아침부터 몹시 분주했다.
그날은 제법 굵은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장애인의 집에 도작하니 마침 휠체어를 탄 뇌성마비 장애인이 어머니와 아파트 입구에 나와 있었다.
어머니께 "잘 보살 필테니 걱정 마시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그 아이를 인계받아서 휠체어를 밀고
차 가까이에 대고 차 문을 열었다.
아들이 우산을 펴서 받쳐 주고 있었지만, 우산 하나에 셋이 쓰고 있으니 금세 옷이 젖어들었다.
나는 급한 마음에 그 장애인을 얼른 차에 태우려고 앞에서 번쩍 안아 일으켰다.
그런데 아! 그 장애인의 몸이 마치 나무토막처럼 뻣뻣한 게 아닌가?
뇌성마비를 가진 장애인은 유연하게 움직이는 우리의 몸과 많이 다르다는 걸 미처 몰랐던 나는 
휘청거리며 균형을 잃었다.
순식간에 나에게 엄청나게 실려오는 그 몸무게를 어떻게 감당할 수가 없어 내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한 손으로 내게 온몸의 무게를 실어오는 장애인을 끌어안고, 

한 손으로 황급히 차체를 붙잡고 넘어지려는 내 몸을 지탱하며 아들에게 소리쳤다.
"아들! 엄마 좀 도와줘! 빨리!"
아들이 들고 있던 우산을 팽개치고 황급히 그 아이를 뒤에서 붙잡았다.
아들과 힘을 합쳐 무사히 아이를 차에 태우고 나니 땀이 흘렀다.
장애인을 옮길 때의 요령이나 방법을 모르고 무작정 덤빈 나 자신의 무모함에 화가 났다.
그대로 그 장애인을 끌어안고 콘크리트 바닥으로 나뒹굴었으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서늘했다.
잘 접어지지 않는 휠체어를 어렵게 접어서 트렁크에 싣고 나니 온몸이 땀과 빗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차에 올라 준비해 두었던 수건으로 그 장애인의 젖은 머리와 얼굴을 닦아주며 말했다.
"미안해요, 내가 처음이라 많이 서툴러서 이렇게 옷도 다 젖고 뜻하지 않은 고생을 시켰네요."
그 장애인은 일그러지는 얼굴에 웃음을 띠며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아들과 한 조가 되어 움직이며 

도시 주변의 문화재를 탐방하고 함께 밥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대화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몇 차례 봉사를 하는 동안 아들과 나는 휠체어를 간단하게 접는 방법과 

비탈길에서 휠체어를 밀고 내려올 때는 뒷걸음질 쳐야 한다는 걸 알았다.
또한 계단에서 장애인을 이동시킬 때는 3인 1조가 되어 

장애인의 시각을 뒤로해서 들어 올려야 한다는 것도 터득했다.

그리고 그동안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장애인들도 아주 가까운 우리의 이웃임을 느꼈고,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그들에게도 꿈이 있고 웃음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들 나름의 행복이 있고, 사랑도 있다는 것도 알았다.
만나는 횟수가 거듭 될수록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지고 서로 음식을 먹여주고 권하는 정겨운 모습도 늘어 갔다.
그러나 한 가지 가슴 아픈 일은, 우리와 동행하는 그들에게서는 한결같이 짙은 좀약 냄새가 풍겼다.
오랫동안 장롱 속에 잠들어 있던 외출복을 꺼내 입고 나서야 할 만큼 우리와 함께하는 나들이가 
그들에겐 특별한 외출이라는 걸 알았을 때, 내가 이 봉사를 시작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아들 녀석도 그동안 당연한 거라고 여겼던, 미처 깨닫지 못했던 소중한 것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 활동을 끝내고 돌아오는 내내 엄마 손을 꼭 잡았다.


그렇게 시작한 아들과의 봉사활동이 두 해 째가 넘도록 이어졌다.
그동안 장애인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은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리다가 

문득 걸음 멈추어 서서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는 자기 성찰의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아들은 학교에서 요구하는 봉사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형식적으로 봉사를 하는 게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봉사를 통하여 따뜻한 마음결로 세상을 바라보는 깊은 시선과 

이웃을 보듬을 수 있는 손길을 갖게 되었다.
어느 날이던가, 거리를 지나다가 높은 턱을 만나 쩔쩔매고 있는 장애인을 보고
망설임 없이 달려가 휠체어를 밀어주는 아들 녀석의 모습을 보며 흐뭇한 적이 있었다.

어찌 생각해 보면 봉사란 

"내가 남에게 베푸는 자선이 아니라 흐트러지는 나 자신을 안으로 거두어들이는 행위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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