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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Oct 31. 2020

아주 특별한 여행

아들이 전역한 후에.

아들이 군 복무를 마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엄마 아빠에게 큰절을 하면서 전역 인사를 대신하는 아들의 모습이 대견하고 듬직했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 놓고 나는 마음고생이 참 많았다.
어느 자식이든 다 귀한 자식이지만 내리 딸 둘을 낳고 늦게 얻은 아들이라서 내게 더욱 각별하다.
몸무게가 50킬로를 턱걸이하는 야윈 아들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혀 밤잠을 설쳤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꽃이 너무 흐드러져서, 나뭇잎이 푸르러서, 비가 내려서, 
일찍 찾아온 무더위가 등줄기를 적셔서 아들 생각이 간절했다.
저녁이 되면 환하게 웃는 얼굴로 현관문을 들어서며 
“배고파요 엄마, 김치볶음밥 해 주세요”하던 아들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리기도 하고
엄마 다리를 주물러 주던 그 따뜻한 손길이 그립기도 했다. 


스무 해를 사는 동안 엄마, 아빠 말을 거스른 적 없고, 초, 중, 고 12년을 개근할 만큼 성실했던 아들이다. 
길을 가다가 무거운 손수레를 보면 얼른 달려가서 밀어주고, 
걸인이 있으면 호주머니에든 돈 다 털어 주고, 무거운 짐을 든 할머니를 보면 그 짐을 들어주던 착한 아들이다.
그 아들을 군대에 보내 놓고 일기를 쓰듯 매일 편지를 쓰며 보고픈 마음을 다독였다. 
훈련이 힘에 부치더라도 잘 견디라고 당부했다.
혹여 마음 상하는 일이 있더라도 참고 또 참으라고 당부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몇 개의 고비를 넘기고, 또 몇 개의 관문을 통과하는데 
그때 육체적인 나이만 먹어가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나이가 쌓여서 새로운 눈이 열리고 
그렇게 인간은 성숙해지는 법이라고, 군 복무가 너에게 그런 계기가 되어 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엄마가 살아 보니 영원한 것은 없더라, 그러니까 군 복무 기간 동안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를 네 좌우명으로 삼으라는 당부도 했다. 
그러나 엄마의 걱정과는 달리 가끔씩 날아드는 아들의 편지에서 고된 훈련도 잘 견디며  
강인하고 씩씩한 남자로 변해가는 아들의 모습이 엿보였다.
밥도 맛있고, 군대는 무조건 힘든 곳 인 줄만 알았는데 우려했던 것보다 분위기도 좋고, 
무엇보다 공기가 맑고 상쾌해서 몸이 나날이 건강해지는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일요일마다 아빠와 함께 사우나에 다녀온 후에 뜨끈한 해장국을 먹던 날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부모님 곁을 떠나고 보니 잘못했던 것들이 후회되고, 

더 잘해드리지 못했던 것들이 죄송하다는 편지를 받았을 때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돈을 버는데 몸을 쓰시지 말고 몸을 지키시는데 돈을 쓰시라는 당부로 

엄마 아빠의 건강을 챙기는 편지에서는 부쩍 어른스러워진 아들이 느껴졌다.
훈련 기간이 늘어 가면서 뽀얗던 아들 피부가 구릿빛으로 그을렸고 곱고 나약했던 모습이 
강인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변해 갔다.


그렇게 무사히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이 엄마와 단 둘이서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군대에서 받은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서 여행 경비를 만들었던 것이다.
제대하면 엄마하고 여행을 가서 맛있는 밥도 사드리고, 엄마 좋아하는 라떼 커피도 사 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른 아침, 아들과 함께 부산행 기차를 탔다.
아들과 함께 광안리 바닷가 모래밭을 거닐고, 아들과 함께 맛집 찾아서 싱싱한 생선회에 초밥도 먹고, 

아들과 나란히 바닷가 오래된 낡은 철로를 걷다가 사진도 찍었다.
그러다가 다리쉼도 할 겸, 달맞이 고개 경치 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바다를 내다보는데

그 경치가 아찔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잔잔한 바다, 그 위를 평화롭게 거닐고 있는 요트..... 
그때 마주 앉아 있던 아들 녀석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엄마 옆자리로 와서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아들이 휴대폰에 연결된 이어폰의 한쪽을 내 귀에 꽂아주었다. 


그 순간 내 귀에 들리는 음악은 'When I dream'이었다. 
영화 '쉬리'의 마지막 장면에서 제주도의 푸른 바다가 펼쳐지며 내 귀를 황홀하게 했던 그 노래가 
그 자리 그 풍경에 기가 막히게 어울렸다. 
가족이 함께 영화관에 가서 '쉬리'를 본 후로 그 영화의 OST 'When i dream'을 좋아하게 됐는데

그 분위기에 맞는 바닷가에서 들으니 그 감흥이 더욱 좋았다.
부산 달맞이 고개 카페에서 푸른 바다를 내다보며 아들과 이어폰을 한쪽씩 나누어 끼고 들었던 그 음악은 
내 생애  두고두고 좋은 음악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아들과 다녀온 여행은 두고두고 추억하게 될 행복한 하루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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