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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Oct 31. 2020

늦은 밤, 아들을 데리고 돌아오는 길

아들도 울고, 나도 울고.

혼자서 마감하느라 많이 늦어진다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 아들이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는 카페로 갔다.

워낙에 소문난 카페인 데다가 주말이다 보니 11시가 되어가는데 아들은 집으로 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은 평소에는 공부에 전념하고 주말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엄마 아빠가 뒷바라지해 줄 테니 임용고시 공부에 전념하라는 당부를 못 들은 체하는 아들이 야속했지만 

그 고집을 꺾지 못했다.

늦은 밤, 카페에 들어서니 마감일을 하느라 아들은 몹시 바빠 보였다.

나는 겉옷을 벗어 의자에 걸쳐 놓고 주방으로 들어가 고무장갑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아들이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엄마!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갑자기 달려들더니 고무장갑을 거칠게 빼앗았다.

그리고는 뒤에서 내 양어깨를 밀어 나를 주방 밖으로 밀어냈다.

"엄마, 이건 제 일이에요. 

그러니까 엄마는 여기에 앉아서 요즈음 젊은 사람들이 듣는 음악 들으면서 조금만 기다리세요."

둘러보니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었다.

휴지통도 비워야 하고, 바닥도 닦아야 하고, 무엇보다 세척을 해야 할 설거지감이 쌓여 있었다.

그러나 아들이 그렇게 화내는 모습을 처음 본 나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아들이 만들어 준 음료를 마시며 아들이 틀어 준 음악을 듣고 있었지만 

음악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소음이 되어 버렸다.


내가 도와주면 아들이 좀 편할 텐데, 얼른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서 쉴 수 있을 텐데, 

두 손 놓고 바라보고 있으려니 속이 상했다.

아들은 내 도움을 마다하고 기어이 혼자서 일을 마무리했다.

카페의 문을 잠그고 아들을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가 신호대기에 걸려 정차하고 있는데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내가 고생하는 건 살이 터지고 뼈가 부서져도 견딜 수 있는데 

자식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는 건 정말 가슴이 미어졌다.

눈물이 닭똥처럼 뚝뚝 무릎 위로 떨이 졌다.

하지만 나는 손으로 그 눈물을 닦을 수가 없었다.

아들에게 내가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들은 엄마가 우는 모습을 가장 가슴 아파했다.


눈앞이 흐려서 두 눈을 꾹꾹 눌러 눈물을 짜내며 운전을 하는데 아들이 가만히 내 오른손을 잡았다.

"엄마, 울지 마세요. 저는 지금 이렇게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엄마 아빠가 고생스럽게 번 돈으로 편하게 공부하는 건 옳지 않아요. 

아까 엄마가 주방으로 들어와서 고무장갑을 집어 들었을 때 소리 질러서 엄마, 미안해요.

하루 종일 소방서 구내식당에서 손에 물 마를 새가 없는 엄마가 

제가 일하는 곳에서까지 설거지하는 건 정말 싫어서 그랬어요.

우리 엄마가 식당에서 고생하는 걸 생각하면 나는 미칠 거 같아요.

얼른 성공해서 하루라도 빨리 그 구렁텅이에서 엄마를 꺼내고 싶어요. 하루도 그 마음을 잊은 적이 없어요.

엄마, 이제야 얘기하는 건데 제가 군대 있을 때 많이 힘들었어요.

엄마한테 제가 힘든 군생활을 하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아서 일체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정말 고약한 선임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몰라요.

깊은 밤에 불러내서 자기 빨래 다 시키고 빨래가 깨끗하지 않다고 다시 해 오라고 집어던지고, 

구석진 곳으로 데리고 가서 표 나지 않게 교묘하게 때리고..... 

학창 시절에 선생님이 제일 재수 없었는데, 내가 사범대에 다니니까 사회에 나가면 선생님이 될 거라고, 

그래서 재수 없다는 이유로 괴롭히고.... 

내무반에서 어려운 일이나 괴롭히는 선임이 있으면 이름을 적어 내라고 했지만

나는 한 번도 그 선임의 이름을 적어 내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엄마도 처음 해 보는 바깥일에 아줌마들의 텃세나 괴롭힘을 참고 일을 하시잖아요.

그런 엄마의 고생보다 내가 겪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고, 

이까짓 것도 견디지 못하면 나는 엄마 아들도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한여름에 유격훈련을 할 때도 이런 더위쯤 엄마가 무더운 주방에서 흘리는 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견뎠어요.

그리고  완전군장하고 30kg 배낭을 메고 왕복 40km를 밤새워 행군할 때도 

중대장님은 무거우면 짐을 좀 덜어내도 된다고 하셨지만 나는 먼지 할 톨 덜어내지 않았어요.

모든 힘듦은 엄마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거든요.

그리고 제가 아르바이트하느라 임용고시 공부를 제대로 못한다고 엄마가 걱정하고 있는 거 다 아는데 

조금만 더 돈을 모은 다음 공부에 전념해도 늦지 않아요.

작은 누나처럼 꼭 초수에 합격할 테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엄마, 아빠는 건강만 잘 챙기세요.

엄마 이 아들 믿고 울지 말고 씩씩하게 살아야 해요."


엄마의 고생을 자신의 담금질의 계기로 삼아 공부에 정진하고 있다는 아들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들이 내 손을 가져다가 볼에 비비는데 그 손등에 아들의 눈물이 축축하게 묻었다.

12시가 되어가는 늦은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끝낸 아들을 데리고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도 울고 아들도 울었다.

나는 못난 엄마 만나서 고생하는 아들이 가여워서 울고, 

아들은 기울어진 가세를 일으키느라 고생하는 엄마가 가여워서 울고.


한 달 후에 아르바이트를 접고 사찰 고시원으로 들어 간 아들은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현재 울산의 고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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