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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Oct 31. 2020

아들의 사찰 고시원 생활

아들의 임용고시 도전기.


사범대에 다니는 아들은 첫 임용시험에 꼭 합격하고 말겠다는 각오로 대학생활에 충실했다.

그러나 학생수가 줄어든 탓에 아들이 전공 과목에서 전국적으로 교사를 단 한 명도 뽑지 않는 바람에 

시험에 응시조차 하지 못하고 대학을 졸업하게 됐다.

아들은 임용고시를 향해 전력투구 하다가 갑자기 벼랑 앞에 선 듯 상심이 컸다.

그러던 중 아들은 임용고시 공부를 하러 사찰 고시원으로 들어가겠다고 했고, 나는 결사반대를 했다.

좀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뒤바라지 해 주고 싶었다.

남들은 공시생들이 모여 있는 노량진으로 간다니까 너도 노량진으로 가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다.

그러나 아들은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아들은 "내 방이 있고, 세끼 밥이 있고, 비용까지 저렴하니 아주 좋다"라고 했다.

그리고 "공부에 방해가 되는 술집이 없고, 수다 떠느라 시간 허비하게 되는 카페가 없고, 

이런저런 유혹이 없으니 공부밖에 더하겠느냐"라고 농담도 했다.

아들을 설득하려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남편과 내가 아들에게 설득을 당했다.


사찰 고시원에 들어가기 전에 아들은 군대 갈 때처럼 머리를 짧게 잘랐다.

그리고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스마트폰을 2G 폰으로 바꿨다.
아들이 사찰 고시원으로 들어간 지 보름 만에 남편과 함께 아들을 보러 갔다.
절간으로 오르는 길이 고즈넉하고 향기로웠다.
처음 아들을 데리고 올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저귀는 새소리, 머릿결을 스치는 맑은 공기,  연둣빛 새순을 틔우기 시작하는 나무들, 

도란도란 흐르는 계곡 물소리, 수선스럽지 않고 조용한 산사......
아들의 방을 노크하자 뜻밖에 찾아온 가족이 반가웠는지 아들의 눈에 눈물이 글썽했다.
내 품속으로 쏙 들어오는 아들이 야위었다.
남편은 아들의 방문을 열고 청소를 시작했고, 나는 욕실 구석구석 락스를 풀어서 물때를 벗겨냈다.
방안의 먼지를 털어내고 이불을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뒤뜰 빨랫줄에 널어 일광욕을 시켜놓고 

삼겹살이 먹고 싶다는 아들을 데리고 시내로 나왔다. 
아들은 고기가 익기만 하며 무섭게 집어 먹었다.
나는 고기를 굽느라 바빴고 남편은 상추에 고기를 싸서 아들의 입에 넣어주기에 바빴다.

절간의 반찬이 나물과 김치, 미역국이나 된장국이 항상 나오다 보니 거의 비빔밥을 먹었으리라.

오랜만에 대하는 바깥 음식이 그 얼마나 맛있을까?
쌈배추 겉절이를 좋아하는 아들에게 먹이려고 새벽에 만들어 온 겉절이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새벽부터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자식이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은 참 보기 좋다. 먹는 자식보다 내 배가 더 부르다.


아들은 그동안 절간에서 지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새벽 예불을 알리는 타종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공부를 시작한단다.
산속에는 일찍 어둠이 찾아와 저녁 9시면 잠자리에 들었고, 

바깥출입은 식당에 내려가는 것과 오후에 절 뒤쪽 산길을 오르는 게 전부라고 했다.
그리고 절 주변을 맴도는 고양이가 있어서 예뻐해 주었더니, 

어느 날 아침 커다란 쥐 한 마리를 잡아다가 방문 앞에 놓아두는 바람에 기겁을 했단다.

그 고양이가 가끔 방문 앞으로 찾아와 놀아 달라고 불러낼 때는 함께 산길을 걷는데 운동도 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심호흡을 하다 보니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이란다.
마트에 들러서 아들에게 필요한 소모품과 간식거리를 사서 사찰로 돌아가면서 다음 주에 올 것을 약속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들에게 갔다. 

온 가족이 함께 영화를 보기도 했고, 

벚꽃 흐드러진 봄날에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아들에게 가서 경치 좋은 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올 때도 있었다.

아들의 합격을 위한 가족들의 응원과 격려는 봄, 여름이 지나고 늦가을 시험일이 다가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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