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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Oct 31. 2020

바이올렛 앞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다.

이른 봄 화원 앞을 지나다가 앙증맞게 피어있는 바이올렛이 예뻐서 

붉은색, 보라색, 흰색, 꽃분홍색... 여덟 개의 바이올렛을 샀다.
어머니께서 내게 물려주신 나무 함지박 안에 비닐을 깔고 

그 안에 소복하게 담아서 햇살 가득한 창가에 두고 며칠간은 내 눈이 호사를 했다.
하지만 온실에서 피워 낸 꽃이라서 그런지 날이 갈수록 그 색깔이 퇴색되더니
올라온 꽃 대궁마저 활짝 피지 못하고 그대로 시들어 나를 안타깝게 했다.
사올 때는 그렇게 예쁘던 바이올렛이 한 달도 넘기지 못하고
버리자니 아깝고 베란다에 그냥 두자니 보기 싫은 눈치만 받는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렸다.
꽃이 지닌 색깔을 제대로 보려면 햇볕을 많이 받아야 하는데
아파트의 베란다에서는 아무래도 바깥만큼 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는 피었던 꽃이 시들고 꽃망울마저 까맣게 죽어버린 그 작은 화분 여덟 개를 
몽땅 쏟아서 버리려고 밖으로 끌어냈다.


그런데 막상 버리려고 하니 꽃은 져버렸어도 이파리가 싱싱한 화초를 버리기가 가여웠다.
그래서 볕이 가장 잘 드는 베란다 바로 안쪽 창가 쪽으로 나란히 놓아두었다.
바이올렛이 저만치 구석으로 밀려 날 즈음 우리 집 베란다에서는 꽃 잔치가 시작되었다.
진달래, 영산홍, 호접란, 군자란, 제라늄 사랑초, 칼랑코에....
온갖 꽃들이 앞 다투어 피고, 연초록 새순을 내밀며 바람이 불적마다 애잔하게 손짓하는 
아디안텀의 애교에 정신을 빼앗겨 바이올렛의 존재는 까맣게 잊었다.
다만, 다른 화초에 물을 줄 때 스치듯이 가끔 물을 주었을 뿐, 
바이올렛이 다시 꽃을 피울 거라는 기대는 아예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나절, 두어 개의 화초를 분갈이하고 화분의 위치를 조금씩 바꾸어 변화를 주다가 

큰 화분에 가려져 있는 바이올렛을 무심코 넘겨다 본 나는 그만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아! 어느새, 어쩌면, 봐주는 이 하나 없는데도 혼자서 저렇게 예쁘게 꽃을 피웠을까?"
여덟 개의 바이올렛 화분에 모두 꽃봉오리가 봉긋하게 올라와 있었고
제비꽃 색깔과 꽃분홍의 바이올렛은 이미 만개해 있었다.
거실에 앉아서는 다른 화초에 가려져 바이올렛이 잘 보이지 않았기에 

그동안 꽃 대궁이 올라오는 것마저도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아예 바이올렛에는 관심조차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구석으로 밀어 놓았던 바이올렛을 내 눈에 잘 띄는 곳으로 끌어냈다.
누가 돌보지 않아도 제 몫을 해 낸 바이올렛을 보며 문득 미안하고 애처로웠다. 
꽃이 졌다고 그 봄이 다 가도록 따스한 눈길조차 주지 않고 손길 한번 건네지 않은 
변덕스러웠던 내 마음이 부끄러웠다.

쪼그리고 앉아서 오래도록 바이올렛을 들여다보며 내가 살아오는 동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혹여, 외면한 내 이웃은 없었는가 뒤돌아보았다.
사람을 대함에 있어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하지 않고
내 기분에 따라 행동한 적은 없었는가, 바이올렛이 내게 묻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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