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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연한 출발 Apr 22. 2022

혈중 알코올 농도 0.05%가 만드는 삶의 변화

영화 <어나더 라운드 Another Round> 리뷰

 제목에서부터 술 냄새 풍기는 이 영화는 술과 함께하는 일탈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영화다. 네 명의 동료 교사들인 니콜라이(마그누스 밀랑), 마르틴(매즈 미켈슨), 페테르(라스 란데), 톰뮈(토마스 보 라센)는 중년의 위기 Midlife crisis[청년 시기의 끝인 40대를 넘어가는 시점으로 젊은 시절에 가졌던 기회와 목표를 지난 뒤 목적의식을 잃고 불안과 걱정에 빠지게 되는 시기다. 권태와 의욕 상실이 대표 증상]에 빠진 남성들이다. 노르웨이의 철학자 핀 스코브데르는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만 돼도 삶의 질이 올라간다는 이론을 냈다. 마틴(매즈 미켈슨)이 친구들 중 가장 먼저 일탈을 시도한다. 


 영화는 3개의 챕터로 구성을 나눠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챕터 1은 ‘혈중 알코올 농도 0.05%가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를 살펴보고, 챕터 2는 혈중 알코올 농도가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전제에서 ‘각자 다양한 알코올 농도를 통해 반응을 알아본다’ 즉 더 많이 마신다. 챕터 3은 ‘최대로 혈중 알코올 농도를 올려서 해방감을 느껴보는 것’을 전제로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만취하는 실험을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는 그 실험들의 결과들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줬고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보여준다. 


  가벼운 일탈은 삶의 활력이 되어 주기도 한다. 적정량의 알코올은 우리를 여유롭게 만들어 무료한 일상에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몸의 긴장이 풀리고, 침착 해지고, 느긋한 상태에서 개방적이게 만든다. 마르틴은 그 효과를 똑똑히 맛봤다. 역사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특별히 하는 일이 없었다. 사람도 잘 만나지 않고, 아내는 야간 근무가 많아서 얼굴을 보기도 힘들다. 젊은 시절 잘생긴 외모와 청바지를 입고 자신만만하게 재즈 발레를 추며 젊음을 누렸고, 교수가 될 가능성까지 있었던 자신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한탄하며 그는 운다. 그의 수업 학생들은 그의 수업을 지루해하고 학부모들까지 소환해 그의 수업에 불만을 표현한다. 아내는 더 이상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단 한잔의 술기운이 그를 바꿨다. 본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매력들이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학교 수업과 가정의 분위기를 살렸다. 활력이 생기며 학생들은 그의 수업에 집중하기 시작하고, 아내는 그의 변화에 눈물까지 보인다. 하지만 술의 도움으로 찾은 일상의 변화는 삶을 무의미하게 바꾸어 버렸던 근본적인 이유들까지 해결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술이 주는 부정적인 사회적 영향, 알코올 중독에 대한 우려로 실험을 중단한다. 그리고 우려는 현실이 됐다.


 영화는 술을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만능 약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속에서 술에 취한 인간에게 도움을 받는 건 본인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다. 술에 취한 마르틴의 수업은 그의 학생들이 온전히 졸업할 수 있게끔 해줬다. 술에 취한 체육 교사 톰뮈는 따돌림당하던 학생이 축구 경기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게 해 준다. 심리학자 페테르는 의과 시험을 앞둔 학생에게 술을 권함으로써 그가 시험에 합격하게 도와준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술 중독에 빠지고, 가정은 파탄 나고, 어린 자녀들에게 못 볼 꼴을 보이기도 한다. 술로 만들어진 자신감과 여유로움은 허상이었고, 술에서 깬 순간 부정적이었던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와 있었다.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삶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다. 권태가 인간을 게으르게 만들고, 목표 없는 삶이 인간을 방황하게 만든다. 술에 취해 고무됐던 자신의 매력적인 모습은 원래 그의 내면에 잠재해 있던 모습이었다. 마르틴은 절제를 통해 오히려 술의 도움을 받는 듯 보였다. 맨 정신으로 가족들과 함께 간 캠핑에서 아이들과 행복했던 시간을 보냈고, 그는 아내와 만족스러운 잠자리를 가졌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마음의 거리는 돌이킬 수 없었다. 어쩌면 평생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을지도 몰랐던 관계의 문제들이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드러나게 되는데 명확하게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려는 의지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게 도와준다. 


 영화는 성공적으로 관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해준다. 영화 초반부 무기력하고, 부정적이고, 앞이 막막하고 미래가 없던 주인공 마르틴에게 관객은 공감한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관객은 마르틴과 함께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정말 술을 마신 것처럼 흥분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극 중 ‘술에 취한 상태에서만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연주가 헤르포르트’의 연주를 4명의 인물들이 술에 취해 듣는 장면이 있는데, 그 음악을 듣는 동안 정말 술 냄새가 느껴지고 술에 어느 정도 취한 흥분, 고취 상태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마르틴은 젊은 시절 배웠던 재즈 발레를 친구들의 권유에도 절대 추지 않았다. 일상에 매몰된 그의 내면에는 춤을 출 수 있는 에너지가 없었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 그가 다시 춤을 추기 시작하는 장면은 숨 쉬기 힘들 정도로 답답했던 감정이 시원하게 뚫리는 카타르시스를 준다. 말 그대로 환희의 파티였다. 그의 댄스는 OST <What a life>와 함께 극 중 인물들 그리고 관객들에게 환한 웃음을 짓게 만들어주는 멋진 엔딩이다.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말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젊음이란 꿈이다. 사랑이란 꿈의 내용이다.” 마르틴은 아내에게 묻는다. “내가 젊은 시절과 비교했을 때 지루한 사람이야?” 아내는 대답한다. “확실히 젊을 때와는 다르지." 마르틴은 잃어버렸던 아내의 마음을 다시 되찾으려 한다. 아내와 다시 사랑을 시작할 용기를 얻었고 이 영화는 마르틴의 사랑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마르틴의 꿈의 내용을 봤고, 꿈을 꾸는 마르틴은 젊음을 되찾았다. 


영화 <어나더 라운드>의 원제는 덴마크어로 ‘DRUK’, 의미는 ‘음주’라는 뜻이다. 영어 제목은 우리에게 익숙한 ‘Another Round’로 영어권에서 술 한잔이 모두에게 돌아갈 때 1 round라고 표현한다는 점에서 ‘한 잔 더 마시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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