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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연한 출발 Apr 17. 2022

미래를 잃어버리는 병 알츠하이머

영화 <더 파더 The Father>2020 리뷰


 알츠하이머는 미래를 잃어버리는 병이다. 영화 <더 파더 The Father>는 알츠하이머(노인성) 치매에 걸린 안소니의 시점으로 치매 환자가 겪는 감정적 고통에 집중한다. 가족이 기억나지 않고, 내가 살던 집이 어디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나를 잊으며 잃는다. 시간이 멈춘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내 행동의 의도와 동기가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영원히 낯선 공간에 홀로 놓인다. 기억을 잃었지만 감정은 여전하다. 두렵고 혼란스럽고 답답하고 외롭다. 


 비현실적인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영화적 특징으로 관객들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안소니의 시점에서 그가 앞으로 겪게 될 혼란을 함께 체험한다. 안소니는 아직 건재한 자신을 환자 취급하며 간병인을 고용하려는 딸 앤(올리비아 콜맨)이 못마땅하다. 딸이 자신을 환자로 만든 뒤 자신의 집을 남편과 함께 차지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딸이 자신을 떠나려는 것 같다. 그때부터 관객들은 안소니의 혼란에 공감하기 시작한다. 딸 앤의 얼굴이 처음 보는 얼굴로 바뀐다. 분명 딸의 남편을 만났는데 딸은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지금껏 한평생 노력으로 일군 소중한 내 집이 내 집이 아니라 딸의 집이고 내가 얹혀살고 있다고 앤이 말한다. 처음 보는 여성이 자신의 딸이라고 말할 때 믿어야 할까? 낯선 남성이 딸의 남편이라고 말할 때 믿어야 할까? 날 헤치려는 수작이 아닐까? 안소니는 더 고집스러워진다. 낯선 사람들(가족)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하고 나의 보금자리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조차 점점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안소니가 겪는 혼란은 그의 총체적인 기억이 뒤섞였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를 시나리오 단계에서 플롯으로 구성하고 편집으로 효과를 더한다. 과거에 만났을 누군가와 어딘가에서 나눴을 대화들이 시간 순서로 기억나지 않고 뒤섞여 비순차적으로 섞이는 것이다. 안소니는 자신이 만났던 여성들의 얼굴을 딸 앤의 얼굴로 보기 시작한다. 진짜 앤의 얼굴과, 치매 병동에서 자신을 돌봐주는 간호사(올리비아 윌리암스)가 딸의 얼굴이 되기도 하며, 진짜 사위의 얼굴이 병실에서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른 남성 직원(마크 게티스)의 얼굴로 바뀌기도 한다. 안소니는 자신을 돌봐주러 온 간병인의 얼굴을 자살한 막내딸의 얼굴로 지각하지만 정작 막내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그리워할 뿐이다. 사건 또한 뒤죽박죽이다. 딸 앤의 남편을 만났다고 운을 띄우지만 앤은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대답하고, 언제 결혼할지 물으니 이미 이혼을 했다고 대답한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어제의 집과 오늘의 집의 인테리어가 다르지만 안소니에게는 모두 같은 공간이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새로운 사람, 새로운 공간, 새로운 관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 속의 누군가로 대체하는 것이다. 시간은 섞이기도 하면서 끊기기도 한다.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하루가 바뀌기도 하고 방금 일어난 사건이 또다시 연속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영화라는 매체가 갖는 편집의 힘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며 관객들은 눈앞의 스크린에서 보이는 혼란을 온전히 체험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런 파격적인 편집과 요소들의 변형을 관객들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안소니 홉킨스라는 대 배우의 연기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물과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편집은 되려 관객들에게 혼란한 가중시킬 뿐 안소니에게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들의 한가운데서 굳건히 스스로를 지키려고 집중하고 노력하는 안소니(안소니 홉킨스)가 있었기 때문에 관객들은 그에게 몰입하는 한편 영화는 중심을 잘 잡을 수 있었다. 영화 <더 파더 The Father>의 갈등은 내면적 갈등이다. 물리적인 사건과 갈등이 그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내면의 변화가 그를 괴롭히고 혼란스럽게 한다. 내적 갈등이 영화의 주요 갈등이 되면 영화는 정적이게 되고 더욱 배우의 연기에 의존하게 된다.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겪는 심리 변화의 단계들을 안소니 홉킨스는 훌륭하게 표현해 냈다. 동일한 장면에서도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그의 연기를 보고 있자면 연기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놀랍기만 하다. 


 영화 <더 파더 The Father>2020(2021.04.07 개봉)는 감독 플로리앙 젤레르가 자신의 7번째 희곡 ‘아버지’를 영화로 각색한 작품이다. 희곡 ‘아버지’를 직접 연극(2016)으로 연출했던 경험이 있으며, 감독은 다시 영화 시나리오로 각색해 직접 연출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영화적인 요소와 연극적인 요소를 적절하게 갖추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강점이 됐다. 영화 속 주요 대화 장면에서 안소니(안소니 홉킨스)의 입을 통해 연극의 독백과 같은 톤과 리듬으로 말하거나, 일상에서 쓰지 않는 추상적인 단어와 비유를 쓰기도 한다. 자칫 뜬금없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오히려 이와 같은 요소들이 주제에 더 큰 울림을 주고 인물과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연극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참고해 볼 수 있는 사항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안소니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그의 눈과 귀가 되는 것 이상으로 알츠하이머 환자들의 인지 방식까지 간접경험해 보면서 그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아버지가 더 이상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과, 딸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가족 모두에게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현실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듯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한 인물에 지나친 감정이입에서 벗어나서 지는 잎과 푸른 잎의 대조를 통해 삶과 죽음,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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