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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연한 출발 Apr 25. 2022

하나의 음악, 두 개의 멜로디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리뷰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2021.07.14 개봉)는 사랑의 시작부터 이별까지의 과정을 다룬 멜로/로맨스 영화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2005.03.25 개봉)의 감독인 도이 노부히로의 최신작이다. 각본은 사카모토 유지,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10.08 개봉)의 각본가다. 전통 멜로/로맨스 영화의 작가와 감독이 만나 현시대의 일본 청춘들의 사랑이야기를 선보였다.


 일본의 어느 카페. 하나의 핸드폰에 이어폰을 꽂고 한쪽씩 나눠 음악을 듣는 커플의 모습을 보고 따로 떨어져 있던 두 커플의 남자와 여자는 같은 말을 한다.

 “이어폰의 좌, 우에서 나오는 음악은 완전히 달라. 저 연인은 지금 다른 음악을 듣고 있는 거라고. 연애는 각자 하나씩이야. 쟤들은 그걸 몰라.” 


 하나의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남자와 여자가 다른 생각과 경험을 한다. 바로 하치야 키누(아리무라 카스미)와 야마네 무기(스다 마사키)다. 무기와 키누는 다른 지역에 살았지만 마치 운명처럼 한 곳에서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눌수록 또 다른 자신을 만난 것처럼 대화가 끊이질 않는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쌓아가며 점점 가까워지고 무기의 집에 가게 된 키누는 마치 자신의 책장 같다고 놀라워할 정도로 두 사람은 천생연분임을 감독은 강조한다. 대망의 고백을 결심하게 된 날, 그 둘은 하루 종일 일상의 대화를 나누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고백에 대한 생각뿐이다. 영화는 내레이션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관객은 두 사람이 말해주는 내레이션을 들으며 같은 사건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데 그 대화마저도 똑같아 이 커플의 파릇한 사랑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의 두 주인공의 사랑을 방해하는 적대자는 현실이다. 무기는 웹사이트용 일러스트를 그리며 돈을 벌고 싶어 하는 대학생이며, 키누는 만화를 사랑하고 아르바이트를 한다. 두 사람은 사랑에 심취한 나머지 현실을 잠시 망각하고 오직 사랑에 몰두한다. 두 사람은 프리터[영어의 ‘자유로움’을 뜻하는 free와 독어의 ‘노동자’를 뜻하는 아르바이터 arbeiter를 합성한 일본의 신조어-네이버 지식백과]이기 때문이다. 키누가 먼저 취업 전선에 뛰어들고, 무기는 계속 자신의 꿈인 그림으로 먹고살기를 원하지만 1컷에 1천 엔이던 작업료가 3컷에 1천 엔이 되면서 생활고 걱정이 더해진다. 설상가상 고향으로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요구를 거절하자 아버지는 지원금 5만 엔 마저 끊어버린다. 무기는 꿈을 잠시 미뤄 둔 채 통신 물류업체에 취업하면서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된다. 키누는 힘겹게 딴 자격증까지 포기하고 월급은 적지만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이벤트 회사 직원으로 취업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마치 한 몸과 같던 두 사람은 꿈을 좇는 것과 현실에 타협하는 것을 반복하며 서로 다른 가치관이 드러나고 이제는 독립적인 두 사람이 된다. 낭만이 없는 사회 시스템을 욕하던 무기는 어느새 "산다는 건 책임"이라고 말하며, "낭만은 취업에 도움이 안 돼"라던 키누는 돈을 포기하고 꿈을 좇는다. 무기는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결혼을 선택한다. 하지만 마법처럼 무기가 청혼하던 그 자리에 자신들의 연애 초기 설레고 애틋하고 조심스럽던 모습을 재현하는 커플을 보게 되고 너무나 변해버린 자신들의 모습에 결혼까지 이르지 못한다. 두 사람은 오래된 여느 커플처럼 편안하지만 싸움이 줄어들고 침묵의 시간이 길어진다. 


 같은 음악을 듣고 있다고 착각하는 동안 각자의 이어폰에서 나오는 다른 멜로디는 음악의 끝을 향해 멈추지 않고 흐른다. 상대방의 생각과 가치관을 듣지 못하는 소통의 부재는 오해와 갈등을 통해 사랑의 끝을 만든다. "4년 동안 만나도 서로에게 모르는 게 있었네"라고 말하는 키누의 대사는 인간관계 특히 연인 관계에 있어서 핵심을 표현한다. 서로의 같은 부분에 집중했던 연인 관계였기 때문에 미지의 영역이 남는다.  


 ‘시작이란 건 끝의 시작’ ‘만남은 항상 이별을 내재하고 있고, 연애는 파티처럼 언젠가는 끝난다 […] 생존율이 몇%에 그치는 연애 속에서 나는 살아남을 것이다.’  - 키누가 좋아하는 블로그 작가 메이

이렇게 썼던 작가는 사랑 중에 자살을 한다. 키누는 자신의 사랑을 메이씨에게 겹쳐 생각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상적인 이별이 있다면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의 그것이다. 윤홍균(정신건강의학박사) 저자의 책 <사랑 수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이별까지도 사랑이다. 아름다운 사랑인지 아닌지는 이별할 때, 그러니까 멀어질 때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잘 헤어지는 것도 사랑이 할 일이다." 


 두 사람은 이별을 결심하는 순간까지 똑같은 다짐을 한다.

 “오늘 이 결혼식이 끝나면 헤어질 거야. 그런데 말이야. 마지막이니까 더욱 웃는 얼굴로 잘 지내라고 말할 생각이야.” 


 이런 이별이 이렇게 가능했던 이유는 그들의 다툼 끝에는 항상 플러스알파의 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바탕 말싸움 뒤 그냥 그대로 서로 뒤 돌아 각자의 영역으로 들어가거나, 입을 꾹 다물지 않는다. 싸우더라도 무기를 위해 내린 차(tea)를 전해주며 그의 앞에 앉아 대화를 나눈다. "너무 우려냈나 봐"(키누) "내가 딱 좋아하는 정도야"(무기), 한참 싸우고 난 뒤에도 키누는 무기에게 자신이 추천해 주고 싶었던 소설을 전해준다. "요즘은 무슨 소설을 읽어?"(무기) "정말 좋은 소설이야 읽어 봐"(키누). 들끓는 감정에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한쪽이 용기를 내어 대화의 마지막은 배려로 끝난다.


 이 영화의 내레이션은 이어폰에서 나오는 서로 다른 음악을 의미한다. 관객들은 인물들의 생각을 따라가면서 이야기의 진전을 확인하고 개성 있는 생각들을 들으며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제목의 꽃다발은 자주 봤던 흔한 꽃의 다발로 우리의 보편적인 사랑이야기임을 암시한다. 영화 속에는 제목에서 쓰인 꽃다발이 무슨 꽃의 다발인지 나오지 않는다. 무기는 키누와 함께 찍은 사진에서 머리맡에 꽃들이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이 꽃이 참 흔하던데 이름이 뭐야?”라고 묻지만 키누는 “여자가 꽃 이름을 알려주면 남자는 평생 그 꽃을 볼 때마다 그 여자 생각을 하게 된대”라고 자신이 좋아했던 작가 메이 씨의 블로그 글을 인용한다. 그리고는 키누는 무기에게 꽃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다. 키누는 꽃의 이름을 말해주지 않음으로써 영화 제목에 있는 ‘꽃다발’의 꽃을 유추하지 못하게 한다. 그저 흔한 꽃으로 남는다. 화사하게 피었던 꽃은 언젠가는 지게 마련이다. 꽃이 시들어 마르는 순간까지도 사랑이다. 


장르: 멜로, 로맨스/ 일본/ 123분
개봉: 2021.07.14
감독: 도이 노부히로
주연: 아리무라 카스미(키누 역), 스다 마사키(무기 역)
 영화 속 등장하는 소설 이마무라 나츠코의 <소풍>2011을 읽어본다면 영화를 한 층 더 즐길 수 있다. 단편 소설 <소풍>은 책 <여기는 아미코>에 실려있는 세 편 중에 한 편이다. “높은 사람인지 몰라도 이마무라 나츠코의 ‘소풍’을 읽어도 아무 느낌 없는 인간일 거야”라는 무기와 키누의 대사가 각각 한 번씩 총 두 번 나온다. 사회로 진출한 키누와 무기가 고된 압박 면접 그리고 거래처의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서로를 위로해 주는 상황에서 나온 대사다.
 소설 <소풍>의 주인공은 루미와 같이 일하는 동료들 그리고 나나세다. 루미가 일하는 롤러를 타고 일하는 술집에 어느 날 나나세가 취업을 위해 찾아온다. 자신들의 나이(평균 16세) 보다 많고, 어머니뻘보다는 나이가 적어 보이는 나나세. 그녀는 루미와 직장 선배들에게 자신의 남자 친구인 하루켄키에 대해 이야기해 주길 좋아한다. 나나세의 연애 스토리는 아름답다. 두 사람이 이 세계에서 처음 연결되는 방식이나 두 사람이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는 순간 등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루미와 동료들은 개그맨인 하루켄키를 단 한번 본 적도 만난 적도 없지만 나나세의 말을 듣고, 믿고, 그녀의 사랑을 항상 응원한다. 그곳에는 상반된 두 입장이 존재한다. 나나세의 러브 스토리를 믿고 응원하는 루미와 친구들 그리고 나나세가 순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는 젊은 신입 직원이다. 작가는 나나세가 하루겐키의 진짜 연인인지 답을 주지 않는다. 정말 나나세가 하루겐키와 만나고 있는 연인이거나 혹은 나나세 씨가 혼자 인기 개그맨인 하루겐키와 연애하고 있다는 망상에 빠진 인물일 수 있다는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소설을 읽다 보면 ‘그것이 중요한가?’라는 의문이 든다. 나나세는 모두에게 친절했고 폐를 끼치지 않았으며, 그의 핸드폰을 찾기 위해 용수로를 깨끗하게 청소까지 하게 됐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녀를 대하는 루미와 동료들의 태도가 조금 불편해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나나세의 말은 믿지 못할 거짓말이지만, 새로 들어온 신입의 말(도쿄에 가기로 했던 나나세 씨가 내내 공원에 앉아 있었다)은 믿을 수 있는 것인지 선택하게 만든다. 어느 순간부터 루미와 동료들은 나나세의 이야기가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이미 그들의 삶에서 나나세의 이야기는 그들의 이야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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