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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연한 출발 Apr 28. 2022

남편이 죽은 뒤 다른 아내를 만나다

영화 <사랑 후의 두 여자 After Love> 2021 리뷰 

 차 한 잔을 우려내는 시간 사이에 남편 아메드(나세르 메마르지아)가 죽는다. 슬픔을 채 가누기도 전에 그에게 숨겨진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인 메리(조안나 스캔런)는 진실을 묻기 위해 그 여자가 살고 있는 프랑스로 떠난다. 

 영화 <사랑 후의 두 여자 After Love>는 두 인물을 등장시켜 비교함으로써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자 했다. 메리는 영국인으로 태어나 14살 때 만난 파키스탄인 남편과 사랑에 빠져 개종을 했다. 항해사인 남편은 집으로 돌아오는 날 오후 4시면 하염없이 자신을 기다리며 절벽에서 손을 흔들고 있을 아내를 걱정하며 음성 메시지를 남긴다. 녹음된 음성 메시지는 아메드가 죽은 뒤 메리가 무너지려 할 때마다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유일한 끈이다. 메리는 쥬느를 처음 만난 날 외적인 비교를 한다. 그날 저녁 자신을 꽁꽁 싸매고 있던 옷들을 벗어던지고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몸을 유심히 바라보는 계기가 된다. 

 바다 건너 프랑스에서 아메드와 살림을 차린 여성 쥬느(나탈리 리샤르)는 메리에 비해 날씬하고, 금발에 직업여성이다. 쥬느는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타인에게 의존하는 불안형 불안정 애착을 보인다. 그녀와 아메드 사이의 자식인 솔로몬(탈리드 아리스)은 엄마가 학교 지리 선생님과 차 안에서 불륜 행위를 친구들이 목격했고 그것이 창피하다고 말한다. 그녀는 자식에게 안정감과 신뢰를 주지 못한다. 쥬느는 아메드를 만나고 있으면서도 다른 남성과 또 다른 교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메드가 아내가 있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까지 낳고 살고 있다는 점과 아메드와의 관계가 안정적이지 못해 또 다른 남성과 연애를 하고 있다는 것이 그녀의 현재 삶의 모습이다.


 영화 속 서스펜스는 쥬느가 메리를 청소부로 오해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메리가 가진 우월감은 남편과 어린 시절을 공유(연애 녹음테이프)했고, 그 사랑을 위해 개종까지 한 자신의 헌신에서 나온다. 아메드가 죽었다는 사실은 아직까지 자신만 알고 있으며 메리는 쥬느를 알지만 쥬느는 메리를 알지 못한다. 메리는 남편과 자신의 숭고한 사랑을 부정할 진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 쥬느와 아메드 사이에는 메리에겐 없는 아이 솔로몬이 있다. 자신이 몰랐던 시간 속에서 아메드의 또 다른 가정(비디오테이프)이 눈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을 언제 밝힐지는 메리의 손에 달려 있다. 


 영화 <사랑 후의 두 여자 After Love>는 사랑이 끝난 후의 이야기다. 두 사람 모두 아메드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 히잡을 쓰는 메리에게 쥬느가 묻는다.


 "결혼하면서 개종했어요? 그거 쓰면 힘들지 않아요?"(쥬느)
"그 시절에 나는 남편을 위해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을 했죠."(메리) 

 메리의 표정과 어투에는 자신의 삶에 대한 그리고 자신의 사랑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있었고, 그것이 그녀를 규정하는 정체성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영국에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아메드를 만났다는 쥬느의 말에 메리가 묻는다. 


"그걸 알면서도 결혼했나요?"(메리)
"아메드도 신경 안 썼는걸요. 우린 결혼도 안 했고, 이혼도 못 해요. 함께지만 함께가 아니죠."(쥬느)
"어떻게 나눠가질 수 있죠?"(메리)
"모두 스스로 정한 규칙을 깨면서 살죠. 나 때문에 그는 좋은 남편이 되겠죠." (쥬느)

 사랑은 이미 죽고 없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영화 시작부터 남편을 죽인다. 남편의 죽음으로 남겨진 두 아내가 누구의 사랑이 더 가치가 있는지, 누구의 사랑이 옳은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랑 후의 두 여자라는 제목을 하고 있지만 메리가 중심인물로 존재한다. 사랑이 떠난 후 고통과, 인내와, 감내의 시간을 관객들과 보내는 인물은 메리뿐이다. 쥬느는 상대적으로 아메드의 죽음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과정과 시간이 굉장히 짧다. 영화는 사랑이 떠난 후의 메리의 삶에 대해 말한다. 메리는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다른 사랑의 존재에 대해 모르던 인물이다. 아메드는 메리와 쥬느 사이에 불륜을 저지른 당사자이며, 쥬느는 메리의 존재를 알고 있음에도 아메드와 만나 아이를 낳았다. 아메드의 죽음으로 예상하지 못한 갈등에 직면하게 되고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고, 확인하고, 재정립할 수 있는 인물은 메리뿐이다. 그래서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온전히 메리라는 인물에게 몰입할 수 있다. 절벽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시각화한 장면이나, 바닷가에 누워 파도에 휩쓸릴 듯 몸을 내맡긴 메리의 모습에서 그녀의 비참하고 무너지는 속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그녀는 감정의 절제를 위해 알라신께 기도 올리며 자신의 내면의 불안한 마음을 종교적으로 승화하려 노력하고 발버둥 친다. 


 산 사람은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하고 이런 예상치 못한 비극 앞에서 어떻게 자신을 규정하고 살아갈 것인가, 스스로를 어떤 사람으로 바라보고 살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다. 나의 존재를 흔드는 상황에 직면한 상태에서 나를 어떤 사람으로 규정하고, 받아들이고, 극복할 수 있을지 메리는 선택해야만 한다.

 “안녕하세요. 메리예요.” “안녕하세요. 아메드의 아내예요.” “메리예요.” 자신의 이름으로 설 것인지, 아메드의 아내로 자신을 규정할 것인지 메리는 고민한다. 자신을 아메드의 아내라고 다시 소개하는 순간 쥬느와 솔로몬과는 함께 할 수 없다. 메리가 메리로 존재할 때 쥬느 모자와의 갈등은 사라지게 된다. 오히려 솔로몬의 마음을 친모인 쥬느보다 더 잘 헤아려줄 수 있는 관계를 맺는다. 메리는 쥬느와 솔로몬을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메리는 솔로몬에게 자신의 연애시절 순수했던 그의 사랑이 담긴 녹음테이프를 솔로몬의 손에 쥐어준다. 솔로몬은 메리의 품에 안겨 운다. 이는 성경에 나오는 솔로몬의 재판을 떠오르게 한다. 서로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하는 두 여인 사이에서 솔로몬 왕은 아이를 반으로 갈라 나눠가지게 한다. 가짜 엄마는 그렇게 하길 원하지만 진짜 엄마는 아이의 죽음을 용납할 수 없어 가짜 엄마에게 주라고 말한다. 메리는 자신에게 유일하게 남은 남편의 사랑이 담긴 테이프를 솔로몬에게 건네주며 아이 안에서 남편의 사랑을 완성시킨다. 


 감독 알림 칸은 정체성과 사랑, 슬픔에 대한 이야기이며 가족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영화라고 말한다. 알림 칸은 파키스탄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이 영화의 인물 메리(조안나 스캔런)는 실제 감독의 어머니를 모티브로 하였다.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이슬람교로 개종하여 새로운 종교와 문화, 음식 그리고 언어에 적응해야 했던 자신의 어머니를 향한 애정을 표현하고자 했다. 

 감독은 다양성과 편견에 저항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등장인물 즉 복잡하고, 지엽적이지 않은 존재의 이슬람교도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그동안 매체에서 볼 수 없었던 인물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감독의 어머니의 삶은 그 자체로 드라마틱하다. 사랑을 위해 개종한 여성이라는 타이틀은 많은 것을 포기하고, 다시 새로운 삶에 적응해야만 했던 인물의 삶을 잘 나타낸다. 한편으로 현대 사회의 이슬람 여성이 매체에 잘못 표현되는 것(일차원적이고 지엽적인 존재로 묘사됨)을 바로잡으려는 시도였다.

 감독은 작품을 통해 탐구하고 싶었던 궁극적인 질문은 정체성에 대한 개념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구체적으로 누구를 위하여 구성하는지 탐구하는 것이었다. 진실과 도덕, 기만이 관계 속에서 어떻게 교차하는지, 이야기 속 인물들이 본인의 도덕률을 어떻게 깨트리고 탐구해 가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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