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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연한 출발 May 04. 2022

불안정한 사랑의 민낯

영화 '아사코 Asako I & II' 리뷰

"나도 지금 마치 꿈꾸고 있는 것 같아. 아니 지금까지의 시간이 긴 꿈이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엄청 행복한 꿈이었지. 내가 성장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그런데 눈을 떠 보니 나는 전혀 변한 게 없어"


료헤이(히가시데 마사히로)를 두고 갑자기 다시 나타난 바쿠(히가시데 마사히로, 1인 2역)의 손을 잡고 떠나기로 결심한 아사코(카리타 에리카)가 바쿠에게 한 말이다. 이 대사를 기억해 두기로 하자. 


  영화 <아사코>에는 바쿠(히가시데 마사히로)와 료헤이(히가시데 마사히로가 1인 2역을 했다) 두 남자가 등장한다. 바쿠와 료헤이는 겉모습으로 구분할 수 없는 똑같은 커피로 보이지만 결국 물(성격, 본성, 영혼)이 달랐고 그 맛은 차이가 났다. 바쿠는 충동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며, 폭력적이고, 이기적이고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충동적으로 말없이 장기간 사라지고, 아사코를 소유하기 위해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아사코의 헤어짐의 손짓을 자신을 부르는 신호라고 이기적으로 판단한다. 료헤이는 친절하고, 배려심 있고, 예측 가능하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줄 안다. 인내심이 있고, 자존감이 높으며 자신을 희생할 줄 안다. 아사코가 료헤이에게 바쿠의 존재를 고백하자 그가 말한다.

"료헤이는 그게 싫지 않았어?"(아사코)
"처음엔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는데 결국엔 내가 그 녀석과 닮아서 아사코랑 사귈 수 있었던 거잖아? 그렇게 생각하니까 오히려 내가 운이 좋았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지"(료헤이)

 

 감독은 똑같은 상황에서 두 인물의 대비를 통해 차이를 드러낸다. 바쿠는 아사코와의 첫 만남에서 이름을 물은 뒤 바로 키스를 해버리지만, 료헤이는 아사코에게 일방적으로 다가가는 대신 그의 마음을 아사코에게 고백한 뒤 아사코의 허락을 기다린다. 장거리 운전을 하는 두 사람의 태도에서도 차이를 알 수 있다. 료헤이는 아사코와 ‘토호구 재건 축제’에 참여한 뒤 도쿄로 귀가하는 장거리 운전을 하게 된다. 아사코는 조수석에서 잠이 드는데 눈을 떴을 때 여전히 밤늦은 시간 고속도로 위였다. 료헤이는 묵묵히 그리고 안전하게 아사코를 집까지 데려온다. 그와 함께 했던 긴 시간들과 더불어 그에게는 믿음과 예측 가능성이 있다. 인생이라는 장거리 운전을 하게 되더라도 그가 돌발 행동을 하지 않고 자신을 안전하게 인도해 줄 수 있다는 안심과 신뢰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바쿠는 달랐다. 그는 아사코와 다시 만나 떠나면서 홋카이도에 있는 부모님 집에 가겠다고 목적지를 알려줬다. 아사코는 역시 깜빡 잠이 들었고 눈을 떴을 때는 전혀 자신이 예상할 수 없는 낯선 곳에 도착해 있었다. 그는 배고프고, 졸리고, 바다가 보고 싶어서 센다이 초입에 멈춰 섰다고 말한다. 전혀 예측 불가능하고, 자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그녀가 알고 있었던 바쿠와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이미 료헤이라는 사람과 오랜 시간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살아왔던 아사코는 그런 바쿠에게 더 이상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아사코는 바쿠에게 “바쿠는 료헤이가 아니야”(아사코) 라며 바쿠를 떠나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 아사코는 바쿠와 같은 성질을 지녔다. 관객은 아사코에게 감정이입을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만 그것이 어렵다. 아사코의 얼굴은 감정을 알 수 없을 만큼 무표정하다. 바쿠 역시 감정이 없는 것 같은 표정으로 일관한다. 두 사람은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랬다면 연인을 남겨두고 말도 없이 떠나지 않았을 것이고(바쿠), 연인이 떠났다고 해서 친구들을 남겨두고 말도 없이 도쿄로 가진 않았을 것이다. 바쿠는 아사코를 떠나며 남겨진 아사코에게 상처를 줬고, 아사코는 남겨진 친구들(하루요, 오카자키)과 료헤이에게 자신이 겪었던 똑같은 상처를 줬다. 만약 두 사람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알았다면 무턱대고 아사코의 앞에 나타나 다시 떠나자고 손을 내밀지도 않았을 테고, 아사코도 료헤이와 친구들이 옆에 있음에도 그의 손을 잡고 갑자기 바쿠와 떠나려는 결정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쿠는 아사코를 남겨두고 충동적으로 떠났다가 본인 기분이 내킬 때 다시 찾아온다. 아사코는 그런 바쿠의 행동에 상처 입고 홀로 지내다가 료헤이를 만나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사코는 바쿠와 똑같은 실수를 한다. 료헤이를 남겨두고 충동적으로 떠났다가 다시 료헤이에게 돌아간다. 료헤이는 아사코가 받았던 것과 똑같은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료헤이는 아사코가 바쿠를 받아준 것과 반대로 아사코를 내쫓는다. 여기서 바쿠와 아사코의 차이점이 생긴다. 료헤이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받았던 아사코는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만 그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인정하고 료헤이에게 받았던 사랑을 다시 료헤이에게 능동적으로 돌려주려고 노력한다. 료헤이는 다시 돌아온 아사코를 밀어낸다. 믿음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만약 아사코가 했던 방식으로 아무런 저항 없이 료헤이가 아사코를 용서했다면 아사코의 성장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감독은 옳지 못한 선택을 한 아사코에게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센다이 초입에서부터 료헤이를 다시 만나기 위해 걷고 또 걷는 고통을 받고 토호구에서 도움을 받았던 히로카와 씨에게 돈을 빌리려 갔다가 ‘어리석은 녀석’이라며 비난을 받는다. 아사코는 변명하지 않는다. 다시 찾아간 오카자키의 집에서 에이코는 바쿠 때문에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줬다는 아사코에게 ‘안 됐다’며 동정한다. 그런데 오히려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아사코의 성격이 다시 그녀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료헤이는 아사코를 무참히 밀어버리지만  아사코는 절대 밀리지 않는다. 아사코는 말한다. 

“료헤이에게 사과하고 싶어 하지만 아무리 사과해도 부족할 정도로 심한 짓을 했어 그러니까 사과하지 않을게.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런데도 나는 료헤이와 함께 살아가고 싶어. 그래서 지금 여기 있는 거야”(아사코)

 

 영화를 끝내는 두 사람의 대화가 압권이다. 비에 흘러넘친 강물을 바라보며 료헤이는 "더럽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사코는 “그래도 아름답다”라고 말한다. 비가 내려 흙탕물이 된 강물이 어떻게 아름다워 보일 수 있을까? 잔잔했던 사랑에 소나기가 내려 흙탕물이 되어 버렸지만 그것마저도 아름답다고 아사코는 말한다. 더 이상 료헤이에게 기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아사코와 평생 아사코를 믿지 못할 것이라는 료헤이. 한 사람은 진정한 사랑을 찾았지만, 진짜 사랑을 간직했던 사람은 잃었다. 아사코는 사랑을 받기만 하던 인물에서 이제는 누군가에게 진짜 사랑(신뢰, 희생, 배려)을 줄 수 있는 인물로 성장한다.


 다시 아사코가 했던 대사로 돌아가 보자. 다시 돌아온 바쿠와 떠나는 아사코는 바쿠와 도망치고 있는 지금이 꿈같다고 말한다. 바쿠와 함께 있는 그 순간은 그동안 자신이 바라왔고 꿈꾸던 순간이었다. 바쿠를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 그녀에겐 오로라였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생각을 고쳐서, 지금까지 긴 꿈을 꾼 것 같다고 말한다. 료헤이와의 행복했던 5년이 넘는 시간을 꿈(오로라)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바쿠는 료헤이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제 그녀 내면의 중심은 료헤이다. 하지만 과거의 짧고 강렬한 폭죽과 같은 사랑을 선택하며 스스로 꿈에서 깼고, 그 선택으로 인해 눈을 떠보니 제자리로 변한 게 전혀 없다고 말한다. 스스로 그 선택(바쿠와 도망치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고, 이미 이상적이었던 사랑을 깨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영화 <아사코>에는 아사코와 바쿠, 료헤이 외에도 인물들의 대조가 분명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아사코가 돌아온 바쿠의 손을 잡고 떠났을 때(선택 및 사건) 그녀의 베스트 프랜드이자 고향 친구인 하루요는 아사코의 결정이 인간적으로는 최악이었지만 한편으론 멋있기도 했다며 그녀의 결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녀와의 훗날을 기약했다. 아사코를 떠나지 않았다. 반면 사회에서 만난 친구인 마야는 같은 상황에 대해 료헤이의 편을 든다. 잘못된 선택이니 다시 돌아와서 료헤이에게 잘못했다고 말하라고 하지만 아사코가 받아들이지 않자 다시는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관계를 끊어낸다. 

 에이코(오카자키의 엄마)는 젊었을 적 '그이'와 아침밥 먹으려고 도쿄까지 가고 그랬던 자신의 사랑, 밥만 먹고 돌아와도 행복했던 그 사랑, 자신이 좋을 때 했던 사랑, 평생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사랑의 대상이 남편이 아니라 불륜 상대였다는 사실을 아사코에게 고백한다. 관객들은 에이코의 말을 듣고는 부부의 아름답고 순수했던 사랑에 따듯함을 느끼지만, 후반부 그녀의 고백을 통해 같은 사건을 또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다. 에이코는 루게릭 병을 앓고 있는 자신의 아들에게 무한한 어머니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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