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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연한 출발 May 26. 2022

일상을 벗어난 곳에 봄이 있었다

영화 <스프링 블라썸>2022 리뷰 

 권태 속에서 하루하루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선물은 봄과 같다. 


 권태라는 벽을 깰 수 있는 건 호기심이다. 16세 소녀 수잔(수잔 랭동)은 일상에서 무료함, 지루함, 권태를 느낀다. 새로울 것 하나 없고 또래의 학교 남자 친구들, 여자 친구들은 따분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가는 길에 위치한 극장에서 연기하는 연극배우 라파엘(아르노 발로아)가 수잔의 시선을 끈다. 수잔은 그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한다. 라파엘은 곁을 맴도는 수잔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고, 수잔 또한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면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라파엘 또한 연극배우로서의 삶에 권태를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35세로 그녀의 권태로움을 알고 있고 이해한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천천히 가까워진다. 전혀 다른 서로의 삶에서 새로움을 찾는다. 라파엘에게 석류 레모네이드가 바로 그것이다. 수잔에게 오페라 음악이 그것이다. 라파엘은 수잔에게 자신이 즐겨 듣는 오페라를 들려준다. 라파엘에게 그 음악은 일상이고 습관이지만, 수잔에게 그 음악은 새로움이다. 

 호기심은 관심을 갖게 만든다. 그의 스쿠터가 고장 난 것을 보고 수잔은 늦은 밤 아빠에게 스쿠터를 고치는 법에 대해 묻는다. 고치는 방법을 아는지, 고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기름은 어떤 기름을 쓰는지 아버지에게 묻지만 그녀에게 중요한 건 아버지로부터의 답이 아니다. 내면에 사랑으로 충만한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고 싶은 16살 수잔의 표현 방법이다. 라파엘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수잔은 아버지에게 남자들은 치마를 좋아하는지, 원피스를 좋아하는지, 바지를 좋아하는지 묻는다. 

 

 삶에 권태를 느끼는 인물들이 교차점이 전혀 관계없던 인물에게 새로움을 느끼고 흥미로움을 느끼며 권태로웠던 자신의 시간을 깨트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관계를 주도하는 것은 수잔이다. 라파엘에게 먼저 관심을 보이고, 먼저 주변을 맴돌고, 먼저 다가간다. 먼저 기다린다. 먼저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게 고백하는 것도 수잔이고 만나지 않을 것을 결심하고 관계를 정리하는 것도 수잔이다.

"어떤 어른을 사랑하게 됐어요"(수잔)

 

 상대적으로 관객은 라파엘의 내면까진 다가가지 못한다. 그가 연극배우이며 지금 하고 있는 연극은 너무 많이 연기해 대사들이 권태롭다고 말하며 연기하는 법을 잊어버릴까 봐 두렵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수잔을 만나게 되면서 그의 연기 인생에 어떤 도움을 받게 되는지 관객은 알지 못한다. 라파엘은 어느 날부터 나타나지 않는 수잔을 기다린다.  


  영화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과정에 집중한다. 16살 수잔이 라파엘에게 이성적으로 보이려는 흉내는 그 나이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새벽 2시까지 라파엘과 같이 파티에 있다 돌아온 수잔은 조용히 부모님의 방 문을 열고 들어가 아버지의 안부를 묻는다. "괜찮으시죠?" 아버지는 괜찮다고 답한다. 수잔은 웃으며 말한다. "그렇다면 최고예요." 그리곤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데 아버지는 옆에 자고 있는 아내에게 넌지시 말한다. "여보, 우리 애가 좀 이상해." 그녀에게 가족은 중요한 존재다. 또한 라파엘에게 거리를 둔 수잔은 어느 날 울면서 엄마의 품에 안겨 말한다. "어떤 어른과 사랑에 빠졌어요." 어머니는 말없이 우는 수잔을 안아 달래준다. 사랑에 빠졌다는 기쁨, 환희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두려움, 후회, 슬픔...... 사랑이라는 감정은 복잡미묘하다. 수잔이 어머니의 품에 안겨 울 때 어머니는 수잔의 마음을 이해한다. 이것이 프랑스 영화에서 등장하는 부모의 모습이다. 


 감독은 아름다운 오페라 선율에 맞춘 춤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라파엘과 수잔 두 사람이 카페에 앉아 오페라 음악을 듣으며 춤을 추는 장면은 감독이 영화를 시작할 수 있게 만든 핵심 아이디어였다고 말한다. 라파엘이 수잔에게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려주면 두 사람은 눈을 감고 음악에 맞춰 같은 춤을 춘다. 음악이 끝나면 두 사람의 춤도 함께 끝난다. 비현실적이면서도 서로 함께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각적인 표현이다. 한 가지 특징은 두 사람이 같은 춤을 추지만 서로 손을 잡거나 어느 쪽이 다른 쪽을 이끌지 않는다. 후반부 연극 무대에서 두 사람이 다시 한번 춤을 추는데 그때는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해 춤을 춘다. 이 또한 비현실적이며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연출 방법이고, 두 사람의 관계가 처음과 다르게 더 가까워졌다는 것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감독 수잔 랭동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기했다. 관계 안에서 주체적으로 행동하고자 하는 수잔의 내면은 캐릭터를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준다. 라파엘에게 관계의 주도권을 주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내면에 선을 긋기보다는 조금 더 솔직해지려고 한다. 그 나이답게 행동하려는 태도가 매력을 더한다. 스쿠터를 타려면 부모님의 허락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의 스쿠터 타기를 거부한다. 결국 라파엘은 힘들게 스쿠터를 끌고 이동한다. 그와 아침을 먹기로 했지만 학생인 수잔은 돈이 없다. 어머니에게 5유로를 빌려야 한다. 라파엘의 배려심있는 태도는 수잔이 오로지 자신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어른의 태도다. 그렇게 그녀는 알게 된다. 그를 사랑하게 됐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 결말을 선택한다. 

 그녀는 그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것이 그녀의 판단이고 선택이다. 이 순수한 감정의 사랑은 상대를 향하지 않았다. 


 감독의 첫 영화에는 컴퓨터도,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등장하지 않는다. 책이 나오고, 연극이 나오고, 오페라가 나오며, 춤이 나옵니다.  
 도서 <메이커스 랩>의 저자 론.B.버크먼은 창작자가 창작할 작품에 대해 미리 알고 만드는 것은 전통적 의미에서 천재들의 창작 방식이며 이는 그릇된 관념이라고 말한다. 현대적 의미의 창작 방식은 대다수의 창작자들이 자신이 어떤 것을 만들지 알지 못한 채 시작하게 되고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답을 찾아간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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