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중인 후배가 언니 바다 보러가게 나오세요. 라는 문자가 왔지만 12시가 되어야 일이 끝난다고 사정을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 앞으로 달려온 후배는 차안에서 무려 한 시간을 넘게 기다리는 뚝심을 발휘했다. 오늘은 금요일이라 한주 동안의 업무일지에 캡처해 둔 사진들을 골라 일지까지 제출해야 해서 일이 많았다. 겨우 컴퓨터에서 해방된 나는 서둘러 보온병을 챙겨 들고 주차장으로 나갔다. 아직은 1월 둘째 주이니 한겨울인데도 운전석에 앉아 있는 후배의 인디언 핑크 재킷에서 봄내음이 난다. 늦어서 미안하다는 내게 환한 미소를 던지며 그녀가 시동을 걸었다. 내가 아는 바다는 왼쪽으로 가야되는데 그녀는 오른쪽으로 핸들을 튼다. 오늘 목적지는 보성군이라고 했다.
강진이 시댁이라 이 길을 수없이 달렸었다. 내가 결혼하던 해에는 50키로의 구불구불한 길이 끝이 없이 이어졌다. 아이들을 하나, 둘 낳으면서 80키로 길이 뚫리더니 몇 년전에 구간별로 고속도로가 이어져 운전하기가 편하다. 길이 쫙 펴지는 동안 내 판판한 얼굴에는 구불구불한 굴곡이 생겼다. 세상이 불편함 없이 변해가는 사이에 어느 새 늙어가는 나를 보는 게 아쉽다. 시댁에 가는 길이 늘 즐겁지는 않았지만 이 길 위에서 우리 아이들과 함께 행복했던 추억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뒷자리에서 아이들과 게임을 하거나 휴게소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때로는 너무 더워서 길을 돌아서 아이들과 해수욕장에서 놀다 갈 때도 있었다.
그랬다. 그 해수욕장이 있던 곳이 보성이었다. 보성을 정말 오랜만에 와본다. 이곳에서 갓 잡아온 쭈꾸미 요리를 시켜먹었다. 식당 아주머니는 흰 쌀밥같은 쭈꾸미 알이 담긴 접시를 내 앞에 밀어 놓으며 애기 엄마가 많이 먹어야겠다고 말했다. 밥을 다 먹은 아이들은 모래밭을 뛰어다니고 물속에서 수영을 했다. 이제 그만 할머니댁에 가야한다고 채근을 해야만 아쉬움을 털며 물속에서 나오던 아이들이 이제는 다들 어른이 되었다. 당시에 선배님들이 나를 보고 나이가 50이면 시간이 50키로로 빠르게 달린다고 말할 때는 무슨 뜻인지 와 닿지 않았건만 세월이 무섭게 빠르다는 걸 요즘 실시간으로 느낀다.
설레임으로 달려간 보성만 바다는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나일론 줄이 백사장을 빙 둘러 쳐져 있었다. 청정지역인 이곳도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지 않은지 안내소에서 나온 여성분이 인상을 찌푸리며 오지 말라는 데 자꾸 온다고 소리내어 말했다. 주변을 서성거리는 사람들은 후배와 나 말고도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부부와 젊은 친구들 서넛이 옹기종기 서 있었는데…. 다들 우리처럼 바다를 막아놓았을 줄 미처 생각 못했다는 얼굴로 당황한 표정이었다. 백사장으로 가기 위해 줄을 넘어갈 만큼 의식없는 우리도 아니기에 후배와 나는 미련없이 돌아섰다.
근처 편의점 앞에 있는 풀밭에서 준비한 보온병과 떡. 군고구마. 금가루입혀 구운 계란과 빵을 꺼내 놓으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어 보인다. 비록 나일론 줄이 쳐져있으나 눈앞에 바다도 있겠다, 부드러운 햇살과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행복했다. 우리만의 만찬을 즐기며 샐카를 찍고 일어나 2%의 아쉬움을 남기고 차에 올랐다. 벌교읍에 있는 모리씨빵가게를 들릴까 하다가 시간이 너무 지체될 것 같아 집으로 방향을 잡았다. 후배는 음악을 들으며 말없이 운전을 하고 나는 또 후배의 배려에 감사한 마음으로 추억속으로 빠져든다.
현직을 떠나면 다들 자기 삶이 바빠서 소식을 주고받기가 마음처럼 안 된다고들 한다. 변명같지만 나 역시 그런 사람 중에 하나이기에 참 부끄러운데…. 휴가 쓸 적마다 잊지 않고 부족한 나를 찾아주는 후배가 고맙기만 하다. 이렇게 변함없이 소식을 주고 안부 건네는 이들 덕분에 내가 잘 살고 있구나 싶다. 이 순간이 너무너무 감사하고, 그래서 더 좋은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는 사이에 어느 새 차는 아파트 앞으로 진입한다. 집콕만 하다가 콧바람을 쐬고 아름다운 하루를 추억이란 폴더에 갈무리하며 차에서 내렸다.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하루를 산 덕분에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리듬이 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