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초에 옆집에 살던 경자씨. 자매들이 모두 결혼과 동시에 모여 살아 그녀의 집은 늘 시끌벅적. 그녀의 집은 매일 초인종 소리가 요란했다. 자매들이 모여 점심을 해 먹고 장을 보러 함께 움직였다. 쌍둥이를 낳은 경자씨는 육아도 언니들 도움을 받아 쉽게 해결하는 듯 보였다. 참 부러운 경자씨였다.
나보다 한 살 아래지만 형제 많은 집에서 자란 탓인지 아는 것도 많아서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백과사전.
그녀의 언니들은 나를 칭찬했지만 나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바보 맹순이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입 열 기회조차 없던 나는 경자씨가 말을 걸어줘야 그나마 목소리를 냈다. 그러던 어느 봄날 숙맥이던 나의 난자가 남편의 정자를 붙드는 바람에 덜컥 임신을 해서 입덧을 심하게 했다. 그러자 나를 친동생처럼 챙겨주던 경자씨. 이거 먹어봐라 저거 먹어봐라 잔소리를 듣는 사이에 배가 점점 불러왔다. 아이가 태어나자 기저귀 채우는 법, 우유 타는 법을 내 앞에서 시전 했고 나는 수시로 그녀의 집을 두들기며 독박육아를 감행했다.
모르는 게 생길 때마다 책을 펼쳐 드는 나와 다르게 그녀는 여기저기 아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문제해결에 나섰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경이롭던지.
당연히 육아나 요리, 그리고 남편 길들이는 법까지 나름 그녀에게 전수받은 게 많다.
살림에 노하우가 생기고 아이가 자라면서 경자씨네 초인종을 누를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아이를 통해 넓어진 세상 안에서 심심할 겨를이 없이 시간은 무한대로 뻗었다. 그 무렵 재개발 붐이 일면서 새 아파트가 우후죽순 생겨나 우리 집은 신도심으로 이사를 갔고 경자씨는 매일 증권가에서 산다는 소문이 돌았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떡접시가 오가며 집안의 크고 작은 제사 날짜까지 공유했던 우리지만 못 본 지가 꽤 오래되었다. 보고 싶어도 이제는 연락할 길이 없으니. 고맙다는 말 한번 제대로 못하고 산 게 미안해서 얼굴이라도 한번 볼 수 있기를 소망하지만 올해도 벌써 끝자락이다. 서로가 다른 방향에서 살아도 시간은 멈춰주지 않았다. 새댁이었던 우리가 이제는 밥수저를 놓고 세상을 떠난다 해도 자연스러운 나이가 되고 말았으니.
그녀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기를 빌며 나는 아직도 온몸으로 그리움을 피우며 바쁘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