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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집사 Jun 25. 2023

#11. 그만둘 결심, 그 끝에.

좌절일까, 희망일까?


추락하기로 작정했다.


유기묘 입양 플랫폼과 입양 용품 커머스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외줄 타기를 했던 이유는 어느 한쪽에 무게 중심을 주면 곧바로 데쓰벨리(Valley of Death)로 추락할 수 있다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입양’이라는 거래 자체에는 수수료를 부과할 수 없으니 ‘입양’을 콘셉트로 브랜디드 제품을 판매하여 데쓰벨리를 넘겠다는 발상이었던 것. 하지만 막상 게임에 참여해 보니 반려 용품 시장은 정체기를 목전에 둔 시장이었고 ROI(Return on Investment)가 상당히 낮았다.


그런데 1주 차, 2주 차, 3주 차, 4주 차, 액셀러레이팅 회차가 거듭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아이디어들과 경험이 축적될수록, 어쩌면 내가 가야 할 길은 외줄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죽음의 계곡은 외줄에서 추락하는 지점이 아닌, 살기 위해 선택한 아찔한 외줄 타기의 끝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만약 그렇다면, 결국 무게 중심을 한쪽에 두고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것, 추락을 각오하는 것이 오히려 생존 전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스타트업을 하면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가 어려울 땐 본인이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세요. 좋아하는 거 하려고 스타트업 시작한 거잖아요?


당시 2주에 한 번씩 진행되던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의 VC 미팅에서 나는 솔직하게 고민을 오픈했고, VC 대표님의 조언은 ‘그만둘 결심’에 큰 추진 동력이 되었다. 그래서? 결정했다. 2022년 11월을 기점으로 커머스에 추가적인 자본을 투입하지 않기로. 당장의 매출이 끊기는 것이 사실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일단은 버텨보기로 했다. 추락해 보기로 결심했다.





고양이와 함께하는 하룻밤


커머스를 정리하기로 결정하고 브랜드 전략과 커뮤니케이션, 솔루션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디스커션 파트너였던 서울대학교 학생이 나와 같은 애묘인이었는데, 일본의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고양이 여관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 주에 만난 KOTRA의 멘토님도 나에게 고양이 여관 영상을 소개해주셨다. 그리고 또 며칠 있다가 대학 친구가 안부 인사와 함께 고양이 여관 영상 링크를 보내왔다.


일본 유가와라의 My Cat


뭐지?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씩이나. 물론,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그 시기에 그 영상을 공격적으로 퍼 나른 것이 원인이겠지만 어쩌면 운명적인 신호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만약, 고양이를 입양하기 전에 함께 숙박을 하면서 직접 반려인이 되어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유기묘 입양률도 높아지지 않을까? 함께 살아본 경험이 있으니 갑작스러운 파양의 가능성도 낮아지지 않을까? 게다가 지금 운영 중인 유기묘 플랫폼과 연계된다면 온오프라인 서비스로 시너지가 더 극대화되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숙박'이 포함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사업 초기 단계부터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검증이 필요했다. 타겟 소비자들이 정말로 살아보는 경험을 원할까? 살아보는 경험이 정말로 입양 전환율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까?




사람은 경험한 만큼 생각하니까요


타겟 소비자들의 니즈를 검증하기 위해 곧바로 일대일 인터뷰를 실행했다. 지인들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다양한 니즈를 가진 소비자들과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유기묘를 입양한 경험이 있는 사람

펫숍에서 고양이를 구매한 적이 있는 사람

고양이는 좋아하지만 입양은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

입양을 결심하고 준비하고 있는 사람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례는 처음에는 펫샵에서 분양을 받고 이후에 길고양이를 구조하여 입양하신 분의 케이스였다.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는 분양받기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늘이 없는 아이를 원해서’ 분양을 받았다고 했다. 고양이를 분양받고 난 후부터 길 위의 고양이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동네 고양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유기묘나 길고양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고정관념이자 오해였음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또 다른 인터뷰이는 고양이를 무서워하다가 대학생 때 고양이를 반려하는 친척집에서 잠시 하숙 생활을 하게 됐고, 그때 고양이라는 생명체의 매력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 사회인이 되어 독립을 하면 고양이를 입양하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추락 지점에서 발견한 희망


플랫폼에 집중하기로 결심하고 외줄 아래로 추락하는 순간, 새로운 아이디어가 불쑥 솟아 올라온 형국이었다. 동물을 만지고 구경하는 폭력적 형태의 체험이 아닌, 내가 스스로 반려인, 집사가 되어서 고양이를 돌보는 생활 경험을 하게 된다면 유기묘 입양 시장에 들어오기를 주저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오프라인 경험과 온라인 플랫폼이 결합된다면, 전에 없던 차별화된 입양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10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했을 때 도출한 결론이었다. 좀 더 확실한 검증이 필요했다. 액셀러레이팅 이전에 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면 아마도 곧바로 부동산에 달려갔겠지만 액셀러레이팅 덕분에 대기업스러운 사고방식은 어느 정도 벗겨낸 상태였다. 린스타트업 방법론을 써먹을 때가 도래한 것이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의 마지막 행사인 데모데이까지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시점, 제작비 0원의 MVP(Minimum Viable Product)를 만들고 직접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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