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말,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 데모데이를 20일 정도 앞둔 시점. ‘고양이와 함께 살아보고, 입양에 필요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을 MVP(Minimum Viable Product)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오프라인 공간의 MVP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린스타트업 방법론에서 찾은 아이디어는 간단했다. 오프라인 공간을 소개하고 오픈 알람 뉴스레터를 구독하는 온라인 랜딩 페이지를 만드는 것. 기획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공간을 어떤 식으로 구성할지에 대한 플랜은 구체화되지 않았었다. 다만, 오래된 한옥집이나 양옥집을 리모델링하면 좋겠다는 다소 막연한 생각에 ‘냥옥집'으로네이밍을 했다.
하지만 단순히 고양이와 잠을 자는 공간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동물을 만지고 구경하는 공간이 아닌, 반려인으로써의 삶과 돌봄 활동을 경험하는 공간이어야 했다. 그래서 다양한 생활 경험 프로그램 - 사냥놀이 하기, 맛동산과 감자 캐기, 집밥 차리기 - 과 반려인 교육 - 고양이의 습성, 건강 관리 방법, 입양 준비 - 을 기획하고 랜딩 페이지에 중점적으로 녹여냈다.
제작비 0원의 MVP 테스트 결과는?
랜딩 페이지는 MVP였기 때문에 기존의 유기묘 입양 플랫폼과는 별개로, 가볍게 만들어 보기로 했다. 무료로 제공되는 웹페이지 빌드 서비스를 이용했는데, 참 쉽고 편리했다. 굳이 코딩할 필요 없이 컴포넌트를 이리저리 배치하고 글씨, 사진을 넣으면 끝. 사흘 정도 밤을 새워서 만들었다. 그야말로 비용과 시간 투입이 최소화된 MVP였다.
랜딩 페이지가 완성된 후에는 시장성을 검증하기 위해 하루에 만 원씩 인스타그램 피드 광고를 집행했다. 소액으로만 테스트를 한 이유는 현실적으로 돈이 없었고, 무엇보다도 테스트에 투입되는 예산은 최소화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광고도 딱 나흘간만집행했다.
당시 랜딩페이지 홍보를 위해 제작했던 SNS 광고 소재
그럼, 제작비 0원, 매체비 4만 원의 테스트 결과는 어땠을까? 놀랍게도 기대 이상이었다. 인스타그램 피드 광고의 CTR 벤치마크 데이터 평균치가 1~2% 내외인 점을 감안했을 때 냥옥집 CTR11.7%는 정말 훌륭한 성과였다. 랜딩 페이지에 유입된 유저들도 이메일을 직접 입력해야 하는 귀찮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10%가 넘는 유저들이 뉴스레터 서비스에 가입했다. 이거다, 싶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액셀러레이팅을 하면서 두 달 남짓한 시간 동안 VC 멘토링을 받았다. 2주에 한 번씩 진행된 미팅에서 한 단계씩 성장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싶었기 때문에 정말 오랜만에 수험생처럼 생활했었다.매주 새로운 책을 읽고 배운 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사업에 적용할 논리들과 아이디어들을 정리하고 미팅 때마다 피티를 했다.
그래서 솔직히 액셀러레이팅 기간 내내 피로감에 절어 있었다. 하지만 덕분에 브랜드부터 커뮤니케이션, 솔루션 전략까지 구체화된 계획들을 미리 깔끔하게 정리해 둘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솔루션 전략에서 도출된 냥옥집의 MVP 테스트 결과가 훌륭했으니까. 타겟 소비자들의 인터뷰 결과도 확보했으니까. 마지막 데모데이 준비가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까 잘될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발표 연습도 엄청나게 했다. 옆구리를 쿡 찌르면 정해진 발표 시간의 퍼포먼스를 완벽하게 '연기' 할 수 있을 정도로 눈뜨고 있는 시간은 계속해서 생각을 점검하고 피칭 연습을 무한 반복했다.
인생은 Up & Down
그리고 마침내, 2022년 12월 17일 데모데이. 나를 포함한 일곱 개의 팀들이 모두 저마다의 결과물을 멋지게 발표해 냈다. 나는 마지막 순서였고, 떨렸지만 준비한 것 모두 미련 없이 다 쏟아냈다.
Q&A 세션이 끝나고 수상팀 발표가 시작됐다. 7개의 팀 중 한 개의 팀에는 1등 상금 5천만 원, 나머지 2등과 3등에는 1천만 원씩의 상금이 돌아갔다. 수상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나는 상금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3등 안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면 그렇지, 또 실패했네.
속상했다. 결과를 듣고 한동안 우두커니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다시 혼자 빈손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에 허탈했다. 아직도 내 차례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지만, 결과가 나온 당일만큼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참 힘들었다. 아무리 의지가 강력하고 긍정왕이라 할지라도 거절의 경험은 유쾌하지 않다.
유기묘 입양 플랫폼을 론칭하고, 생존을 위해 제품 비즈니스를 시작했다가 다시 커머스를 접고, 결과적으로 추락하기로 결심한 후 여기까지 달려온 시간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 게 맞나, 괴로웠다. 어떤 점이 문제였을까? 어디가 부족했던 것일까? 다시 일어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