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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집사 Jul 10. 2023

#13. 고양이를 캐스팅합니다.

냥옥집의 호스트 찾기.


될 때까지 계속해보자


데모데이에서는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다시 또 넘어졌다는 사실에 솔직히 우울했다. 나도 사람이니까. 하지만 뭐, 어쩌겠나.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우울해한다고 바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어둠이 있으면 곧 밝음이 찾아온다는 믿음으로. 모르겠다. 그냥 될 때까지 계속해보기로 했다. 목적지는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 있지만 일단은 일어섰다. 크게 한번 숨을 들이켜고 다시 걸어 보기로 했다.


유기묘를 입양하기 전에 함께 살아보는 집, 냥옥집은 새로운 콘셉트의 아이디어였다. 그렇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들이 산더미였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냥옥집에 입소할 고양이를 캐스팅하는 이었다.


냥옥집에서는 고양이도 사람도 서로가 처음이다. 처음인 두 존재의 만남이 매끄럽게 흘러가려면 사람에게는 교육이 필요했고, 고양이에게는 '익숙함'이 필요했다. 즉, 낯선 사람을 만나고 시간을 보내는 일이 일상적이면서 사람에 대한 우호적인 성향이 강한 고양이들이 냥옥집의 호스트가 되어야 했다.





고양이 성격검사, Cat 5


사람과 마찬가지로 모든 고양이의 성격은 각양각색, 매우 다양하다. 심리학자들이 개발한 사람 성격 검사로 Big 5가 있는데 이 검사의 통계적 개발 원리와 이론을 바탕으로 호주와 뉴질랜드 심리학 연구진들이 고양이를 위해 개발한 검사가 있다. 영어로는 Feline 5 Factors라고 하는데, 말하자면 Cat 5인 샘이다.


이 Cat 5를 유기묘 입양 플랫폼 개발 초기에 플랫폼 내에 탑재해 두었다. 연구진들이 집필한 영문 논문을 읽고 분석하고, 통계학을 배운 다음, 파이썬 pandas와 numpy 라이브러리를 활용해 고양이 성격 검사를 만들었다.


젤리브레드 유기묘 입양 플랫폼에 구현해 둔 Cat 5의 결과 분석 화면


이 테스트를 활용한다면?  만남에도 우호적이고 새로운 변화에도 무던한 고양이를 캐스팅하기가 수월해진다. 그냥 대충 느낌으로 고양이를 캐스팅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양이를 캐스팅할 수 있게 된다. 플랫폼을 활용할 시점이 왔다.





냥옥집의 호스트는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입니다.


우선은 젤리브레드 유기묘 입양 플랫폼에 가입된 쉼터들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김포, 인천, 청주 그리고 천안까지. 차가 없는 뚜벅이라서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걷고 걸어서, 쉼터 아이들을 만나러 갔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직접 사진도 찍었다. 아이들이 쉼터에 오게 된 사연과 동물 병원 기록을 취합하여 정리한 후, 입양 홍보 페이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는 Cat 5 성격검사를 진행했다. 그렇게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 110여 마리의 고양이를 만났다.


쉼터에 다니면서 만난 아이들. 아이들 사진으로 스마트폰 하드가 꽉 찼다 ❤️


아이들을 만나 Cat 5 성격 검사 결과를 취합하면서, 냥옥집의 안주인이 될 고양이들을 빠르게 리스트업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종 결정이 쉽지 않았다. 왜냐면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보호자의 폭력적인 체벌로 사람의 손을 무서워하는 아이, 올무에 걸려 한쪽 다리가 절단된 아이, 쓰레기 봉지에 버려져 구조된 아이, 털이 날린다는 이유로 파양 당한 아이, 애니멀 호더에게서 구조된 아이 등등. 동물은 연민이 아닌 정의로 대해야 한다고 했지만. 연민의 마음이 항상 먼저 솟아오르기 마련이다. 정의는 그다음. 그래서 선택이 참 어려웠다.


하지만 어쨌거나 결정을 해야 했다. 그래서 우선은 머리로 하는 작업부터. Cat 5 결과에 따라 우호성(Agreeableness)이 높고 신경성(Neuroticism)이 낮은 아이들을 추려냈다. 그리고 그중에서 형제 관계는 아니지만 늘 붙어있고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커플, 천안 묘정 쉼터의 차돌이와 우유를 냥옥집의 첫 호스트로 최종 캐스팅했다.


서로 상반되는 배경에서 구조된 차돌이와 우유는 서로의 '다름'에 끌렸는지 늘 붙어 지낸다.


두 아이를 선발한 이유는 개인적인 바람이 크게 작용했다. 나도 과거에 그랬듯이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고양이는 정이 없고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기 때문이다. 체온이 있는 동물은 체온을 나눌 줄 안다. 고양이도 예외가 아니다. 차돌이와 우유는 그 고정관념을 깨줄 수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렇게 냥옥집의 첫 번째 호스트를 결정했다. 이제 그다음 단계로 냥옥집을 구현할 공간을 마련해야 했다. 어떤 도시에 어떤 건물에 어떤 형태의 공간으로 구현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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