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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집사 Mar 27. 2024

묘르신 입양이 부담스러우신가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시간


동안 고양이 차돌이


인천 송도 캐스트하우스 1호실에 살고 있는 차돌이는 올해(2024년)로 10살이 됩니다. 외모로만 보면 영락없는 꼬마 소년이지만, 나름 관록이 있는 중년 남성(?)이라는 사실. 캐스트하우스에서 차돌이를 처음 만났던 집사님들 모두가 놀라워하셨죠.

그런데 10살이라는 숫자를 듣게 되면 문득, 입양을 생각하기에는 조금 나이가 많은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신 분들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애교 많고 성격 좋은 차돌이가 그저 조금 고령이라는 사실 때문에 아직 입양을 가지 못한 게 아닐까,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서 이번 회차에서는 고양이의 나이에 대해 몇 자 적어보고자 합니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시간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시간은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에서 늘 볼 수 있는 측정되는 '객관적인 시간'은 크로노스 시간입니다. 반면에 사람들 각자가 경험하는 각기 다른 의미가 부여된 '주관적인 시간'은 카이로스 시간입니다.


(좌) 객관적인 시간을 관장하는 그리스의 크로노스 신. (우) '기회의 신' 이라고도 불리우는 그리스의 카이로스 신.

분명 같은 1시간인데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보냈을 때와 싫어하는 사람과 보냈을 때의 느낌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으신가요?

크로노스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지만, 카이로스 시간은 개인이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주어집니다.






노령묘 입양이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


나이 많은 고양이들이 입양이라는 문턱 앞에서 늘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함께 보낼 수 있는 객관적인 시간, 즉 크로노스 시간이 짧기 때문입니다. 삶과 죽음은 그 어느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지만, 우리는 확률적으로 보았을 때 노령묘가 아기 고양이보다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영원한 이별은 가급적이면 늦게 마주하고 싶은, 모든 반려인들의 소망인 것이죠.

애교쟁이 차돌이는 지난 1월 건강검진에서 모든 수치가 정상으로 나왔어요. 신체 나이도 청년 고양이에요






묘르신의 특별한 시간


그런데 노령묘라는 사실을 우리가 인지하는 순간, 말하자면 크로노스 시간이 부족한 것 같다고 인지하는 순간. 우리가 경험하는 카이로스 시간의 질과 깊이는 무한대로 확장합니다. 역설적이게도 노령묘라는 사실이 시간의 유한함을 깨닫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저는 반려 고양이가 어릴 때, 부끄럽게도 마치 영원히 함께 살 것처럼 굴었습니다. 무한대로 시간이 주어진 것처럼 행동했죠.

한 달간의 회사 연수로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연이은 야근으로 지쳐 귀가한 날에는 사냥 놀이도 하지 않고 잠자기 바빴습니다. 열흘 간의 긴 여행으로 자리를 비울 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이 모든 순간에는 늘

'우리가 앞으로 함께할 시간이 많을 테니까'.

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따라붙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고양이가 나이가 많다는 사실은, 매 순간 크로노스 시간의 유한함을 자각하게 해 주었습니다. 묘르신과 함께 하는 카이로스 시간은 끝없이 깊어졌고 평범함에서 느끼는 감사함의 스펙트럼은 다채로워졌습니다. 


아침에 함께 눈을 뜨는 순간에 감사함을 느끼고, 함께 창 밖을 바라보는 시간에는 더할 나위 없는 충만함을 느낍니다. 똑같은 한 시간이지만 과거에 느꼈던 것과 지금 느끼는 것의 차이는 너무나도 큽니다.






묘르신을 입양해야 하는 이유?


사실 "묘르신이기 때문에 입양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입양은 다각도로 고민하고 검토해야 하는 인생 일대의 중요한 의사결정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수치화된 시간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묘르신과 함께 할 수 있는 크로노스 시간의 길이는 짧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 시간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느냐에 따라 각자 개인이 경험하는 카이로스 시간의 깊이는 더 깊어지고 더 충만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반려동물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유한합니다. 과학 기술과 의술이 발달해도 시간의 유한함은 인간이 극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유한한 시간을 무한한 가치로 확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찰나의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마지막 기억 속에서 밝고 따뜻한 존재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캐스트하우스

https://airbnb.com/h/cast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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