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동네 그라시아(Gràcia) 1

바르셀로나

by 칸리우엣

스페인이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바르셀로나 도심을 다녀왔습니다.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그라시아(Gràcia) 구역. 바르셀로나 근교 작은 마을에 살적에 일주일에 한 번 씩 남편이 바르셀로나 도심의 사무실에 출근할 때마다 같이 나가곤 했었는데요, 그때마다 무조건 첫 도착지로 찍던 구역입니다. 저희가 바르셀로나 도심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거든요. 그라시아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처럼 바르셀로나에 대한 큰 애정은 없었을지도 몰라요.


요즘 바르셀로나 도심에는 관광객과 이민자들이 넘쳐 현지인이 사는 모습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라시아 구역에는 다른 구역들에 비해 카탈루냐어(*바르셀로나가 위치한 카탈루냐 지방의 언어)가 자주 들리는 곳이예요. 게다가 거주자 중에 가족이나 젊은 부부, 어린 자녀가 있는 학부모의 비율이 높아 젊은 사람들과 어린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어요. 그래서인지 아기자기하면서도 세련된 가게들도 많답니다.


하지만 저희가 그라시아를 사랑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단지 예쁘기때문이 아니라 환경과 사회적 약자, 반려동물들을 배려하고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며 감각 있는(!) 가게와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에요. 한 모퉁이만 돌면 비건 레스토랑, 제로 웨이스트샵, 유기농 슈퍼마켓, 작은 스튜디오들이 보이지요. 그만큼 애정하는 곳들이 많아 한 번에 소개하기도 어려운 곳입니다.


이번에는 그라시아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향한 카페와 베이커리처럼 가볍게 주전부리를 할 수 있는 가게들 좀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중 일부는 저희가 도심에 갈 때마다 거의 매번 갔다고 해도 무방한 곳들이에요. 혹시나 바르셀로나 여행을 오신다면, 가볍게 들러 손에 커피와 페이스트리를 쥐고 그라시아 구역을 느긋하게 구경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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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lowmov 슬로모브

Carrer de Neptú, 36 / 8am ~ 5pm, 일요일 휴무


칸리우엣의 go-to 카페. 요즘 한국에서는 스페셜티 커피가 거의 디폴트 조건인데, 스페인은 한국보다 더 커피를 소비한 역사가 길어도 스페셜티 커피 소비가 적어요. 그래서 슬로모브는 스페인 안에서 몇 안되는 스페셜티 로스터리 중 하나이면서 더 나아가 유기농 또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커피를 재배하는 농가들에서 원두를 수입해 로스팅하는 카페예요. 스페셜티 커피 소비는 적어도, '유기농' 스페셜티 커피만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어쩌면 아직은 유기농 커피의 인지도가 낮은 한국보다 앞서갔다고 볼 수 있겠네요 :)


사실 슬로모브가 다루는 모든 커피가 유기농 인증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증이 없더라도 매년 모든 농가를 방문하여 재배 과정에서 화학 물질이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커피라고 해요. 슬로모브는 이렇게 맛뿐만 아니라 환경을 존중하는 생산 방식과 농가와의 장기적인 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에 계절마다 로스팅하는 원두가 다릅니다. 저희가 살던 마을에는 맛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가 없어 슬로모브에서 원두를 사서 직접 내려 먹었는데요, 절기가 바뀔 때마다 커피원두가 바뀌어 새롭게 골라먹는 맛이 있었답니다. 아 참, 슬로모브에서 판매하는 모든 샌드위치와 페이스트리도 유기농 재료로만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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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리우엣이 Slowmov를 가장 좋아했던 이유는 맛도, 지속가능한 철학도 모두 이유이지만, 무엇보다 ‘원두 리필 구매’가 가능했기 때문이에요. 쓰레기를 최대한 만들고 싶지 않은 저희이기 때문에 장을 볼 때마다 가방과 용기를 가져가 구매했는데요. 너무나 감사하게도 스페인에는 필요한 만큼만 사는 '그라넬(granel)'이라는 구매 문화가 있어 어렵지 않았어요. 슬로모브도 역시 그라넬로 커피 원두를 판매하고 있어, 커피 원두를 담는 용기를 가져가 리필해갔답니다. 또 깜빡하고 용기를 두고 왔을 때도 이미 퇴비화 가능한(compostable) 패키지에 커피와 제품을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불편한 마음 없이 구매할 수 있었고요. (※ 그라시아에는 특히 이 '그라넬' 방식의 가게가 많은데, 다음에 한번 이 주제로 글을 쓸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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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에서 맛있는 커피 마시러 가려면 어디로 가야하나' 궁금하신다면 칸리우엣 원픽, '슬로모브'로 추천해드릴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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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Origo bakery 오리고 베이커리

Carrer de Milà i Fontanals, 9 / 주중 8am ~ 8:30pm, 주말 8am ~ 7pm


칸리우엣이 한 때 스페인에서 베이커리를 열고 싶게 뽐뿌를 자극한 사워도우 베이커리. 그냥 건강하고 맛있는 사워도우 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지역에서 재배된 밀가루와 유전자 변형이 되지 않은 유기농 고대밀로 빵을 만들어서 저희가 유독 주목한 빵집이에요. 패이스트리류를 만들 때도 가까이에서 생산된 유기농 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화학적 첨가물을 일체 넣지 않고 재료의 고유한 맛과 향을 내는 데 집중한답니다. (아 참, 앞의 슬로모브 카페의 페이스트류는 모두 오리고 베이커리에서 납품해요.) 아쉽게도 요즘은 유기농 밀가루는 사용하지만, 고대밀로 빵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저희가 좋아했던 카르다몸 트위스트는 아직도 판매중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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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빵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는 분들이라면 왜 고대밀과 유기농 밀로 빵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지 궁금하실 텐데요. 산업화 이후 농업혁명이 일어났을 때, 많은 양의 밀을 쉽게 재배하기 위해서 유전자 변형이 된 밀을 심기 시작했어요. 유럽의 중세시대 그림들을 보면 원래 유럽의 밀은 사람보다 키가 컸었는데 농업혁명 이후로는 무릎까지만 올라오는 짧은 밀만 남았어요. 이로 인해 밀가루의 맛도 단일화 되었을 뿐더러 넓은 땅에서 한 가지 종만 기르다보니 그 밀가루를 좋아하는 해충들이 때로 달려들어 더 많은 농약을 써야 했고요. 한 연구에서는, 밀이 개량되기 이전에는 글루텐 알러지나 글루텐 감수성이 높은 사람들이 흔치 않았는데 현대에 와서 많아진 이유가 밀의 개량과 그로 인한 과도한 농약 사용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업친데 덮친 격으로, 그렇게 생산된 밀가루에 개량된 이스트를 넣어 빠른 시간 내에 잘 부풀어 오르는 빵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었어요. 다양한 미생물과 효모를 가지고 있는 천연발효종과 달리 이스트는 오직 빠르고 간편한 제빵을 위해 특정 효모를 순수 배양한 재료예요. 그래서 이스트로 만든 빵은 풍미가 없고 글루텐 쪼개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지요. 한편, 천연발효종으로 오랜 시간동안 발효하며 빵을 만들어서 빵 속의 글루텐이 소화하기 쉬운 형태로 남아 있고 풍미가 깊어요. 그래서 옛날에는 농약을 쓰지 않은 밀가루로 천연발효종을 만들어 먹었으니 현대의 빵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쉽게 소화할 수 있었어요.


오리고 베이커리는 이 두 가지 점에 집중해, 유기농 고대밀과 천연발효종만으로 빵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이들 덕분에 저희도 지리산에 와서도 잘부푸는 수입밀이 아닌, 한국에서 재배된 우리밀과 토종밀로 빵을 만드는 철학을 갖게 되었고요. 우리밀은 수입밀보다 글루텐 함량이 훨씬 적어서 예쁘고 폭신한 빵을 만들기 어렵지만, 그래도 우리밀만의 매력을 찾는 재미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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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리고 베이커리에서는 빵과 페이스트리 외에도 네추럴 와인, 수제 맥주,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훈제 음식 등 지역의 감각적인 생산자들의 제품도 만나볼 수 있어요. 빵 사러 가는 김에, 스페인의 힙한 제품들을 사고 싶다면 오리고 베이커리의 찬장도 함께 살펴보세요 :) 아 참고로, 오리고 베이커리에서 판매하는 커피는 슬로모브 커피랍니다!


Gracia_4_AmmaGelato.png 이미지 출처: 암마젤라또 공식 홈페이지


3. AMMA Gelato 암마 젤라또

Plaça de la Virreina, 3 / (구글 지도 운영시간 참고. 12~2월 휴무)


비건 젤라또집. 암마 젤라또를 처음 발견했을 때는 비건 젤라또인지 모르고 예뻐서 들어갔다가 너무 맛있어서 감탄하고 나왔었어요. '우와 맛있다! 여기 저장해둬야지'하고 구글 지도에 검색하고 나서야 그냥 젤라또도 아닌 '비건' 젤라또라는 걸 알았답니다. 그것도 향이나 프리믹스, 산업 페이스트를 사용하지 않고 천연 재료만으로, 그리고 가능하다면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재료로 젤라또를 만드는 곳이예요.


흔히 비건 젤라또라고 하면 샤베트 종류만 떠오를 수도 있는데요, 암마 젤라또에는 놀랍게도 우유 질감의 바닐라 젤라또, 부드러운 초코 크림같은 잔두야 젤라또도 있어요. 저희는 아무리 비건 음식이라고 해도 과도하게 식물성 우유를 사용하는 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혹시나 하고 한번 식물성 우유 베이스를 사용하는지 물어봤었어요. 그에 대한 답변으로 직접적으로 견과류맛의 젤라또가 아닌 이상 젤라또의 베이스가 견과류 우유가 들어간 것도 아니라고 들었습니다.(자세한 레시피는 영업 비밀이랍니다!)


암마 젤라또의 매력은 비건 같지 않은 부드러운 젤라또뿐만 아니라, 비건 답게(?) 재미있는 메뉴들입니다.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아보카도코코넛라임'맛이나 '솔티드카라멜땅콩'맛, '귤바질'맛 등 색다른 조합의 비건 젤라또를 만날 수 있어요. 그리고 계절마다 그에 맞는 맛을 새롭게 만들어내기도 하고요.

참고로 젤라또집이라 스페인의 동절기 12-2월은 문을 닫는다는 것, 꼭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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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Noa Noa Gràcia 노아 노아 그라시아

Carrer de Torrijos, 22 / 매일 9am ~ 7pm (구글 지도 운영시간 참고)


사회적 약자와 시, 예술, 일러스트와 디자인에 대한 매거진과 작품 등을 다루는 독립 문화 편집샵 겸 스페셜티 커피 카페예요. 바르셀로나에 최초로 스페셜티 커피를 소개한 노마드 커피를 한잔 마시며 스페인 현지 작가들의 힙한 작품들과 독립 매거진을 구경할 수 있어요. 공간부터 판매 제품들까지 스페인 특유의 알록달록한 색감에 푹 빠지는 것도 또다른 재미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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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소개한 네 가지 가게 이외에도 소개하고 싶은 곳이 너~무 많은 그라시아! 이번에 바르셀로나에 와 있는 동안 열심히 정리해볼게요 :)


Instagram. @can_riu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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