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 Mar 05. 2019

15. 단상들 pt.2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15

            

1. 봐, 나 달잖아          


 유난히 지치는 날이었다. 다음 달 행사에 쓰일 포스터 시안 최종본을 퇴근 무렵에야 컨펌 했지만 그래도 그 전에 오타를 발견해서 다행이었고, 지리한 회의가 연달아 있었지만 어느 정도 결과가 좀 나온 날이었는데도 그랬다. 매일이 오늘과 다르지 않아서일까. 두 부서 일을 다 하라는, 사상 초유의 ‘겸무’ 발령으로 업무량이 늘어서일까. 별다른 일이 일어난 것도, 사고가 터진 것도 아닌데 걸음은 추를 단 듯 무거운 날이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있는 것처럼 누구보다 빠르게 회사를 빠져나왔다. 피곤하고, 재미없다.      


 꼭 이런 날은 운전도 힘들다. 앞에 잘 가고 있던 택시가 손님을 발견했는지 갑자기 급정거를 하는 탓에 가까스로 사고를 피했고, 옆 차는 차선을 수도 없이 넘나들어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게다가 오늘 신은 새 운동화는 굽이 묵직해 엑셀과 브레이크를 밟는 감각이 낯설었다. 운전을 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조금의 변화에도 굴곡진 파동이 생기는 탓에 평소보다 훨씬 긴장한 퇴근길이었다. 영화라도 한 편 보며 기분 전환할까 했던 마음은 따뜻한 물에 반신욕을 하고 와인을 몇 잔 마셔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삐비빅. 현관문 도어락을 열고 들어오는데 현관문 앞에 빈 박스와 비닐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엄마의 홈쇼핑 흔적들이다. 비닐은 비닐대로, 박스는 박스대로 좀 가지런히 정리해두면 안 되나. 한숨을 푹 쉬며 대충 치웠다. 소파에 편한 자세로 앉아 드라마를 보고 있는 엄마를 흘깃 쏘아보며 짐만 내려놓은 채 바로 세탁실로 향했다. 이럴 줄 알았지. 수북이 쌓인 빨래감들이 세탁기에 한가득이다. 이 정도 찼을 때까지 아무도 돌리질 않았다. 이럴 줄 알았지만 그래도 다들 진짜 너무하다. 빨래가 아쉬운 건 이게 신경 쓰이는 사람인 나 하나 뿐이다. 한껏 구시렁대며 세탁기를 돌리고 나오니 이번엔 싱크대에 가득 쌓인 설거지 거리가 눈에 보인다.      


 뭐라고 해 봐야 내 입만 아프다. 대신 최대한 달그락 소리를 크게 내며 설거지를 마쳤다. 빨래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쓰레기를 치우는 건 언제나처럼 내 몫이 되었다.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는 나보다 가게 일을 보며 손님을 상대하는 엄마가 육체적으로 더 힘들다는 걸 알지만, 그 이유로 대부분의 집안일에 손 떼고 있는 엄마에게 짜증이 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도 오늘은 너무 지치는 날이라서. 알량한 자존심으로 엄마가 만들어놓은 제각각 크기의 김밥은 손도 안대고 반신욕 물을 받았다. 오늘 너무 피곤하다. 그러고 보니 회사에서도, 집에 돌아와서도 한 번도 웃질 않았던 것 같다.   

  

 식탁 위에 던지듯 놓아둔 휴대폰에 미처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 알람이 있다. 운전하고 오는 중에 호석이가 트위터 업로드를 했나 보다. ‘진형이 선물과 함께 편지를 ㅠ.ㅠ 그리고 비하인드…’란 글과 함께 첨부된 사진은 여백의 미를 가득 채운 석진이의 생일 축하 편지와 석진이와 호석이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캡쳐본. 카카오톡 메시지 캡쳐본엔 호석이 생일인 2월 18일 하루 전, 17일 12시 1분에 호석이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석진이의 귀여운 실수가 담겨 있었다. 호석이 그런 석진을 향해 ‘실화냐’며 놀리자 석진이는 민망함을 감추고 ‘흠’ ‘잠수’ 세 글자의 메시지를 보냈더랬다.      


 “아, 진짜 귀여워”     


 게시물에 하트를 누르고 사진을 저장했다. 아, 나 웃었다. 그것도 크게.

 지치고, 피곤하고, 표정 없던 사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한 번 표정이 풀어지니 방금까지 엄마를 향해 화를 내고 있던 감정도 같이 사라졌다.

  

 따뜻한 물로 씻고 나오니 빨래가 모두 완료되었다. 섬유유연제 향기가 은은하게 감돈다. 가지런히 빨래를 널고 와인을 꺼내 왔다. 유튜브에 접속해 못 본 영상들 보며 와인 한 잔 하는데, 띠링 브이앱 라이브 방송 알람이 왔다. 제목을 보니 이번에 남준이 새로 꾸린 작업실을 공개하려나보다. 이어폰을 바꿔 끼며 재생시켰다. 라이브 방송에 동시 접속해 바로 보는 일처럼 신나는 일이 없다. 사실 라이브 방송을 시작한다는 알람을 보는 순간 약하게 소리도 질렀다. 남준이가 자신의 작업실 ‘Rkive’를 조곤조곤 소개할 라이브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니. 이러려고 오늘 영화도 안 보고 바로 집으로 직행했고, 이러려고 오늘 와인을 마시려 했나 보다. 아, 오늘 운 좋다. 싱글벙글 웃었다.     


 지난 12월, 석진이가 본인의 생일에 팬들을 향한 손편지를 업로드했다. 팬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내용 중,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본인 생일이어서 기쁜 것도 있지만 본인의 생일로 인해 팬들이 즐기는 것을 보면 더 기쁘다고. 지민이와 태형이 찾아와 마치 남준의 작업실이 자신의 작업실인 양 상황극을 이어 가는 걸 엄마 미소 지으면서 봤다.


 무표정한 일상에 표정을 선사해 주는 이 소중한 존재들.  


 조금 위험해도 나 참 달잖아

 널 구하러 온 거야 널 망치러 온 거야

 네가 날 부른 거야 봐 달잖아

 / 방탄소년단, <Pied Piper> 中   

 

 단 걸 먹으면 행복해진다지. 나는 초콜릿이나 케이크가 따로 필요 없다. 방탄소년단 만으로도 충분하니.


 '봐, 달잖아'

 너희 정말 달다. 달아서 너무 좋다.




2. 다정 심은 데 다정 난다          


     

 호석이 생일 하루 전인 2월 17일. '내일 뭘 할까' 신이 나서 고민했다. 석진이의 말처럼 멤버들의 생일에 더 의미 부여하는 사람들은 팬들이다. 생일인 18일이 월요일이다 보니 기념해보겠다고 어딜 다녀보기엔 좀 어려울 것 같고, 대신 점심 때 기념으로 맛있는 걸 먹고 작은 케이크를 하나 사선 저녁엔 샴페인을 마셔볼까 싶다.      


 “내일은 케이크를 먹어야지. 특별한 날이니까”     


 나는 신이 나면 말이 많아진다. 들뜸을 숨길 수 없는 얼굴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엄마 옆에 앉으며 말을 꺼냈다. 누가 들어주길 바란 말보단 혼잣말에 가까운 말이었다.     


 “왜? 너 내일 생일이야?”


 세상에.


 “엄마... 나 11월생이잖아. 나 엄마가 낳았어”    

 

 많은 생각을 거치지 않고 그냥 아무 말 대잔치 비슷하게 던진 말일 테지만, 11월과 2월의 차이는 너무 크지 않은가. 엄마를 황망하게 쳐다보다가 그냥 웃어 버렸다. 이게 내가 3n을 살아온 우리 집 분위기니까. 어렸을 때야 떼를 써 가며 친구들을 초대해 생일파티를 열곤 했지만, 사춘기를 지나면서부턴 친구들하고 같이 뭘 사 먹거나 아니면 그냥 혼자 기념할 만한 무언가를 사는 정도로 생일을 보냈다. 스무 살이 넘어선 미역국도 건너뛴 적이 많았다. 모두가 항상 바빴고, 적당히 무심했고, 생일에 먹는 미역국에 누구도 의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끔은 서운했나. 하지만 가족이라고 서로의 사생활에 깊게 개입하지 않는 우리 집 풍토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생일은 그저 '3n년 전 내가 태어난 날' 정도로 넘어가곤 했었다.      


 그런 내게 지민이 아버지가 지민이의 생일을 축하하는 애정 방식은 문화 충격과 다름없었다.


 지민이가 스물 두 살이 된 2016년 생일. 지민이의 아버지는 아들의 촬영장으로 생일 축하 꽃다발을 보냈다. ‘자랑스러운 우리 아들. 생일 축하해. 사랑해’란 메시지를 리본으로 묶은 꽃다발이었다. 대기실에서 케이크와 함께 아버지의 꽃다발을 전달받은 지민이는 한껏 주름져 행복하게 웃었다. 다음 해인 2017년 역시 촬영장에서 생일을 맞이한 지민이에게 아버지의 생일 축하 꽃다발이 전달되었다. 이번에도 ‘아들아, 생일 축하하고 사랑한다’란 카드가 꽂혀 있는 풍성한 꽃다발이었다.      


 해외 투어 일정으로 암스테르담에서 맞이한 2018년 지민의 생일엔 아버지가 암스테르담의 꽃집에 직접 연락해 주문한 꽃다발이 지민에게 배달되었다. 암스테르담에서 전달되다 보니 아버지의 메시지는 영어로 쓰여 있었는데, 그걸 받은 지민이가 남준이에게 다가가 해석을 요청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 몸 잘 챙기고, 네가 살면서 갖고 싶은 거 다 갖길 바랄게. 사랑한다. 아빠가’ 남준이의 부드러운 말투로 읽히니 왠지 더 달콤했는지 “우와 아빠 로맨티스트네” 하며 지민이 슬쩍 미소 지었다. 3년째. 아버지로부터 생일에 꽃다발을 받은 지민이었다.   


 아들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는 아버지도, 그 꽃다발을 받고 가장 행복하게 웃는 아들도 처음 봤다. 부산 사투리가 묻어나는 때를 제외하곤 ‘남자는 이래야 돼' '경상도 남자가 말이야' 하는 모습이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 단박에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지민이 졸업한 초등학교의 폐교 소식이 알려지면서 지민의 아버지는 아들을 대신해 학교의 마지막 졸업식에 참석했다. 전교생에게 방탄소년단의 앨범을 선물하고 일부 졸업생에게 교복을 선물했다는 것이 언론을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 이 졸업식에서 지민의 아버지는 축사도 맡았다.


 초창기 ‘로그’를 통해 본인들의 근황이나 그 날의 이야기들을 영상으로 찍었던 방탄소년단 멤버들. 그 때 겨울, 지민이 세찬 바람이 부는 겨울 부산 바다에서 인사를 건네왔던 적이 있었다. 저기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신다며 멀리 주차된 차량을 잠깐 비춰주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연습실에서 살아야만 했던 때라고 반추했던 그 시절의 지민이가 진실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곳은 아버지의 곁이었다.


 "그지이?"

 "으응"


 멤버들의 말에 끝없이 다정하게 호응하는 지민이를 본다. 말을 허투루 듣지 않고 끊임없이 반응하며 웃고 때리고 만지며 리액션하는 지민이를 본다. 자칫 어색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제일 먼저 웃음을 터트리는 웃음 장벽 0의 지민이를 본다. 자신에겐 그렇게 엄격하면서 멤버들에겐 한없이 너그러운 지민이를 본다. 잘하면 잘한다고, 못하면 괜찮다고 따뜻하게 품어 안는 지민이를 본다.  


 윤기 옆에서 치근대는 지민이를 보며 진리의 명언 하나를 꺼내어 생각한다.

 팥 심은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나고 다정 심은 데 다정 난다.

 

 지민이와 결혼하면 아버님도 다정하고 남편도 다정하고.... 으응??

        



3. 독           


    

 토요일 저녁은 무조건 집에 있어야 했던 때가 있었다. 원래도 주말엔 집에서 푹 쉬어야 하는 스타일이기도 했지만, ‘무한도전’을 본방 사수 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음날이면 인터넷에 온갖 짤방이 떠돌테지만 본방을 달리는 재미에 비할 바 못 되었으니. 배달음식이나 간식들을 펼쳐놓고 깔깔거리며 웃는 시간. 몇 년간이나 내게 토요일은 그런 의미였던 적이 있었다.      


 약속을 잡지 않고 집으로 곧장 향해 웃을 준비하고 기다릴 수 있는 요일. 몇 년 전 그때처럼 내게 당위성을 선사한 요일이 다시 생겼다. 방탄소년단의 자체 예능인 <달려라 방탄>의 새 에피소드가 공개되는 화요일이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화요일이 주는 의미는 어떤 것이었을까. 주말까지 기다리려면 나흘이나 남은 날? 출근한 지 이제 겨우 이틀째인 날? 밤에 술 마시기엔 부담인 날? 긍정적인 단어를 하나도 붙일 수 없던 화요일이 이제는 가장 기다려지는 요일이 되었다.     


 화요일 저녁 8시 50분. 노트북을 세팅해놓고 앉았다. 8시 58분, 8시 59분. 시계 어플만 뚫어지게 보다가 까만 분침과 빨간 초침이 12를 동시에 가리키자마자 바로 클릭했다. <IDOL> 노래가 흘러나오고 타이틀이 떴다. 지난주에 이은 학교 컨셉 ‘EP. 64 방탄 학교 2’. 두 개의 팀으로 나눠 음악시간(핸드벨 연주), 점심시간, 체육시간 등을 진행한다. 악보를 잘 못 보고 헤매고, 서로 실수하는 걸 귀엽게 면박을 주고, 정신없이 시끄러운 와중에 당시 선생님들의 노고를 뒤늦게 깨닫고, 게임을 통해 얻은 각자의 음식을 나눠 먹는다. 무대 위에선 카리스마 넘치는 멤버들이 본인들끼리 풀어놓고 놀면 이렇게 어리고 귀여워진다. 30분여의 영상을 보는 동안 광대가 솟구치고 잇몸이 다 말랐다.   

   

 지금 나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 것 같다. 이 애정을 담고 또 담지만, 도저히 채워 지지가 않는다. 만족스럽게 담으려면 얼만큼을 반복해야 하나. 주면 줄수록 부족하고 넣으면 넣을수록 꼭 그만큼 빠져나가는 것 같다. 이 기분을 어찌할 수가 없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꿈에라도 만날까 싶어서. 그럼 좀 나아질까 싶어서.      


 아침에 일어나니 <BTS(방탄소년단) WORLD TOUR 'LOVE YOURSELF: SPEAK YOURSELF'>이란 제목의 알람이 떠 있다. 올해 5월부터 새 해외 투어가 진행되나 보다. 미국, 브라질, 영국, 프랑스, 일본 투어 일정을 보는데 장소가 모두 전부 몇만석 이상의 스타디움이다. 게다가 런던은 웸블리 스타디움. ‘보헤미안 랩소디’의 ‘라이브 에이드’, 그 전설의 장소다. 얼떨떨한 상태로 홍보 영상을 다시 봤다. 방탄소년단 인기야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이건 피부로 와닿는 규모가 아니다. 세계 최정상급의 가수들만 할 수 있다는 스타디움 투어. 진짜 우리 방탄소년단 월드 와이드 슈퍼스타구나. 그런데 이 알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이 불쑥 솟아나려는 건 뭐지.      


 회사에 출근해서도 내내 멍한 상태였다. 달력을 넘기다가 한숨이 푹 나왔다. 5, 6월은 여름에 진행하는 행사 준비로 정신없을 달이라 휴가 낼 여력이 안 될 것 같다. 책상 파티션에 붙여놓은 앨범 포스터를 보고도 한숨이 푹 나왔다. 어젯밤 <달려라 방탄>을 보며 깔깔댔던 게 무색할 정도로 포스터 속 멤버들이 더 멀어져 버린 것 같다(원래도 멀었지만). 그러다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워가고 있는 멤버들을 마냥 행복하게 축하해주지 않는 내가 제일 한심해서 한숨이 푹 나왔다. 어깨가 축 처져 지나가는 나를 보고 다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는데, 어떤 말로도 답을 할 수 없어서 또 한숨이 푹 나왔다. 자괴감 최고조다.      


 집안일을 끝내고 집에서 뒹굴거리던 그날 밤. 남준이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다는 알람을 받고 벌떡 일어났다. 자신의 작업실인 <Rkive>를 소개하며 팬들의 질문을 받겠다는 라이브 방송은 태형이와 지민이의 장난이 끼어들어 정신없이 끝이 났는데 얼마 있지 않아 다시 라이브 방송이 시작됐다. 원래 하려던 걸 제대로 못 해서 진지하게 다시 소통하겠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콘서트 안 하냐는 질문에 콘서트든 뭐든 전반적으로 다 얘기할 순 없지만 너무 크게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말을 서두로, 기가 막히게 다 다른 7명이 다 다른 곳을 본 채 같은 배를 타고 가며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기적 같다며 걱정하는 부분 없게 노력하고 생각할 테니 본인들을 믿어줬으면 좋겠다는 말로 두번째 라이브 방송은 끝이 났다.    

  

 약간의 서운함을 토로하던 팬들의 반응을 섬세하게 캐치한 거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닐 텐데 리더로서 나서서 안심을 주려 한 거다. 누가 봐도 나 같은 반응 때문이었다. 이 정도 연차에 이 정도 인기에 이 정도로 팬들의 반응을 기민하게 살피며 서운하게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가수가 어디 있다고.


 자꾸 더 욕심을 부리는 거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던 영화 속 대사처럼 받는 게 당연하니 더 요구하는 거다, 계속.      


 다른 의미로 한숨이 푹 나왔다. 앨범 작업하고 더 나은 무대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바쁠 텐데 이런 이기적인 마음에 응답하게 만들어서 미안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가는 게 기적이란 건 달리 생각해보면 굉장히 가역적인 결과물이라는 어느 팬이 쓴 글을 상기한다.      


 내가 독에 쏟아붓고 있었던 것이 애정이 아닌 독(毒)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 꼭 그렇게 하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14. 분실소년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