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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an 22. 2019

1. 모든 것이 알고 싶다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1


 하루 내내 회사가 뒤숭숭하다. 곧 발표되는 인사 발령과 관련된 하마평들이 공기 속을 부유하고 있다. 담배를 피우고 온다며 한 시간에 서너번은 자리를 비우는 모 선배는 퇴근 시간이 다 되는 시간까지 부산스레 복사기와 자리를 오가고 있고, 복도에 모여 있는 동료들에게 인사하며 지나가면 어색하게들 흩어진다. 메신저를 보내는 바쁜 키보드 버튼 소리는 하루 종일 고요한 사무실에서 유일한 리듬이 되어 울린다. 게시판에 부착될 종이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누가 오든 누가 가든, 다 거기서 거기지 뭐’

 거의 마무리가 다 된 제안서의 폰트를 이리저리 바꿔 보며 조용히 퇴근 시간을 기다린다. 퇴근하고 집에 가 봐야 씻고, 간단하게 저녁을 때우고 집 정리 좀 하고 텔레비전을 보는 것 말곤 할 게 없지만 그래도 빨리 퇴근 했으면 좋겠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 나만 다른 이미지로 오후 5시를 보내고 있었다.     


 퇴근해 집에 들어와 와인 셀러에서 와인을 꺼내고 거실에 자리를 잡았다. 작년 한 해 제일 잘한 일을 뽑자면 이 와인 셀러를 구입한 게 아닐까. 혼자 소주를 마시기엔 너무 짠한 것 같고, 맥주는 너무 배가 부르고. 그렇게 한두 잔씩 늘려가던 와인에 정착한 것도 작년 한 해 있었던 일이다. 조명만 켜놓은 고요한 밤. 잔 안에서 원을 그리며 뱅그르르 돌던 와인이 블랙홀이 되어 과거로 빨려 들어가게 한다. 취기가 가져다주는 지독한 취미다.     


 “너는 왜 나에 대해서 안 물어봐?”

 네가 이별을 고하며 내게 했던 말은 자신의 이야기를 궁금해하지 않는 나에 대한 책망이었다. 정말 좋아하지 않은 건 아니었는데. 나는 몇 시에 일어나고, 점심을 뭘 먹고, 지금 어떤 노래를 듣는지 라는 질문이 애정의 척도에 비례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만 정말, 그냥 궁금하지 않았을 뿐이다. 네가 몇 시에 일어나는지, 점심을 뭘 먹는지, 지금 어떤 노래를 듣는지가. 학창 시절 장래희망 칸에 꼭 쓰던 기자란 꿈을 포기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왜?’란 물음이 없이 먼저 수긍부터 하는 사람이 나여서.     


 ‘그러게. 나는 왜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그때의 네가 궁금하지 않았던 나는 주변의 모든 일도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으로 진화했다. 친구의 근황도 회사 내의 정치 상황도 하물며 가족들의 일상까지도. 3n살. 명함, 월급, 자동차를 추가로 가지게 되면서 호기심, 도전 의식, 떨림도 추가로 잃은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몇 번이고 스월링한 와인을 한입에 털어 마셨다.     


 그랬다 분명.

 어제까지의 나는.


 이렇게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이었구나, 나란 사람이. 오늘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트위터 타임라인을 훑는다. 지난 주말에 나고야에서 있었던 Love yourself 콘서트 때 사진들이 밤새 많이 업로드가 되어 있다. 출국할 때 모자로 꼭꼭 가렸던 건 바뀐 헤어스타일 때문이었나보다. 태형이는 포카리스웨트처럼 청량한 민트 색깔이고 지민이는 오묘한 연핑크다. 조명에 반짝이는 둘의 헤어가 찰랑거린다. 머리카락도 같이 무대 연기를 하듯 하늘로 나폴거리고 그 순간에 찍힌 태형이와 지민이 환하게 웃고 있다. 무대 위에서 빛나는 그룹답게 모두의 눈동자가 조명에 반짝인다. 저장. 저장. 저장. 어느 순간부터 핸드폰 사진첩에 내 사진보다 멤버들 사진이 더 많아졌다.     


 사진을 저장하고 짤막한 콘서트 영상을 본다. 지민이가 서툴게 외운 일본어로 멘트를 하는데 ‘한 가지만’을 ‘한 사람만’으로 잘못 말을 해서 콘서트장 분위기가 순간 싸해진 영상이다. 실수를 깨닫고 웃는 지민이의 얼굴에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난다. 특정 누군가를 위한 말인 줄 알고 철렁했던 팬들의 마음도 이해되면서, 실수인 줄 모르고 귀엽게 말을 하던 지민의 표정 덕에 몇 번이고 영상을 다시 봤다.      


 트위터 타임라인을 확인하고, 유튜브 영상을 재생하고 연관 재생 버튼을 눌러 놓으며 아침을 시작한 지 꽤 되었다. 그러니까 웃으면서 아침을 시작한 지도 딱 그만큼이 되었다. 이틀간의 콘서트를 끝낸 다음 날이 오늘이고, 내일은 서울 가요 대상에 참석한다. 오늘 입국해서 내일 무대 준비하려면 너무 피곤한 거 아니야? 어제 콘서트 끝나고 새벽에 팬카페에 글을 남겼던데. 밥은 대체 잘 먹는 거야? 피곤할 텐데 잠도 잘 못 자나? 스케줄이 너무 살인적이라 건강 잘 챙겨야 하는데. 그나마 이번엔 나고야라 멀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그랬다. 모든 것을 알고 싶고 궁금하고 갖은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계속. 방탄소년단에 입덕하자마자 제일 먼저한 것은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외우는 것이었다. 외운다긴 보단 저절로 암기되는 것에 가까웠지만. 본명이 뭔지, 생일이 언제인지, 가족 구성은 어떻게 되는지, 좋아하는 건 뭐고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하나도 빼놓고 싶지 않았다.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외우고 나선 음악 활동 순서였다. 어떤 무대에서건 몸이 부서져라 춤을 추고 라이브를 고수하는 아이들답게 무대와 관련된 영상이 아주 많았다. 연습 영상과 공연 영상, 공연 뒤 이야기를 나누는 영상 등을 보며 노래를 익혔다.      


 각 년도 별로 큼지막한 활동 내용을 분류하고 컨셉을 파악했다. (이쯤되면 집착에 가깝다. 인정) 대부분 학생이었던 데뷔 초창기엔 그 나이대에서 하는 학업, 친구, 미래에 대한 고민 등을 솔직하게 얘기했고, 졸업을 앞두고 혹은 막 졸업을 한 불안정한 청춘을 노래하다가, 실수를 하면서 또 다양한 감정을 배워가면서 점점 자라는 시기를 보내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선한 영향력을 가진 멋진 청년으로 성장하는 서사. 이 서사를 바탕으로 각 노래들의 뮤직비디오는 큰 줄기로 내용이 연결된다. 처음의 단추를 잘 꿰지 못 하면 겉만 훑고 지나가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어 여러 사람들이 내놓는 다양한 해석본들을 찾아 읽었다. 몇 년간 차근히 따라가지 못했으니 벼락치기가 필요했다. 다행히 나는 암기 과목에 자신있는 전형적인 문과형 인간이다.     


 그렇게 몇 달을 궁금함 속에 지냈다. 제일 좋은 건 ‘할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퇴근하고 멍하니 텔레비전만 보면서 아까운 시간을 흘려버리거나 술자리에서 일상에 대해 한탄 한다거나 지금을 피해보려고 여행 사이트의 항공권을 뒤져본다거나 했던 모든 일들이 자연스레 우선순위가 밀렸다. 그거 아니어도 할 게 많아진 것이다.    

  

 어젯밤에는 방탄소년단 자체 예능 ‘달려라 방탄’의 2017년 영상들을 보느라 새벽 두 시쯤 겨우 잠들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린 티가 난 탓에 좀 더 꾸밈없이 행동하고 있다.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는 내용이었는데, 신나서 소리지르며 농구공을 던지는 게임을 하는데 나까지 덩달아 잠이 홀랑 날아가버려 제발 잠들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했다.     


 덕질은 체력과 지구력에 근거한다. 매일 밤 영상을 훑고 새로운 소식을 궁금해하면서 다음 날 똑같이 출근하는 체력, 그것이 매일 이어지는 지구력. 늦덕은 아플 자격이 없다. 때꾼한 눈을 비비며 겨우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나왔다. 차 안은 블루투스로 연결한 MP3에서 랜덤으로 재생한 방탄소년단의 노래만 흘러나온다. 절로 안전 운전이 된다. 노래를 한 곡이라도 더 듣기 위해 신호가 바뀔 것 같으면 바로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이동한다.


 이 회사의 유일한 내 공간. 앨범 포스터 두 개를 붙여놓은 삼면의 파티션 안. 모니터를 켜고 책상을 닦은 뒤 따뜻한 차 한 잔을 우렸다. 모니터 배경화면은 2019 시즌 그리팅 사진이다. 메신저도 연결하고 회사 인트라넷을 켰다. 아직 업무 시작 전이니 시간이 좀 있어 정국이가 직접 찍고 편집한 사이판 영상을 재생시켰다.      


 “J, 무슨 좋은 일 있어? 요즘 얼굴 좋네”

 “아 제가 또 웃고 있었나요?”

 “올해는 국수 먹는거야?”


 보란 듯이 헛물 켜는 선배의 농담에 부스스 웃으며 조용히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푸른 바다 앞에서 카메라를 응시하며 아무 근심없이 웃는 지민이와 호석이의 얼굴을 보다가 모니터 옆에 놓인 거울에 담긴 내 얼굴을 보았다. 입꼬리가 승천해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모두 다 물과 친해서 하와이나 사이판, 팔라완에 가면 스쿠버다이빙을 비롯한 다양한 레저 스포츠를 즐긴다. 나도 올해는 수영을 배울 예정이다. 물이 무서워 바닷가는 여행지로 선택도 안 했던 난데, 수영을 하면 어떤 기분일지 무척 궁금해졌다. 멤버들이 즐겼던 곳에 가서 같은 체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퇴근을 하면 2016년 본 보야지(Bon voyage, 해외 여행 자체 예능)를 보고 수영 강습을 찾아 봐야겠다. 할 일이 많아진 늦덕은 오늘도 하루가 바쁘다.      


 일상에 뭐 하나 없던 나는 갑자기 방탄소년단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예고도 없이, 준비할 새 없이 툭. 허둥대며 선물을 풀어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좇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어느 정도 따라 잡았으니 이젠 그들의 미래를 함께 해야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벌써부터 두근거린다.       


 “너는 왜 나에 대해서 안 물어봐?”


 그때의 너에게 이제야 사과한다. 알고 싶다는 게 얼마나 큰 감정인지 이제야 알아서. 궁금해하는 게 얼마나 큰 애정인 건지 이제야 깨달아서. 지금 뭘 하는지, 뭘 먹는지, 뭘 하고 싶은지, 잠은 잘 잤는지, 지금 행복한지, 이런 애정이 버겁진 않은지 궁금하지 않는 게 하나도 없는 마음이 어떤 건지 이제야 배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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