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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Apr 30. 2019

21. 찐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21



 내 나이 3n살.


 올해가 벌써 4개월 가까이 지나고 있는데도 아직 적응하지 못한 뒷 자리. 누군가 나이를 물어볼 때 내가 내뱉고도 낯선 숫자.


 눈가 주름이나 떨어지는 회복력같이 거스를 수 없는 이치 몇을 빼곤 나이를 대부분 체감하지 못하고 살다가 예기치 않게 훅, 실감하는 일이 있었다.


 수 년 전,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독서캠프를 진행했던 적이 있었다. 그 중 무척이나 나를 잘 따르던 두 아이와는 2박 3일의 캠프가 끝나고서도 종종 연락을 하며 지냈다. 핸드폰을 없앴던 한 아이는 PC가 가능할 때 보내오는 페이스북 메시지로 연락을 했고, 다른 한 아이와는 손편지를 주고 받았다. 그때 이 아이들의 나이는 열여덟.


 메시지의 내용들은 대단치 않았다. 곧 입시를 앞둔 심란한 마음의 토로, 학교에서 있었던 시시콜콜한 일상, 가족들과 떠난 여행지에서 느낀 짤막한 감상들이었다. 가끔 서로 시간이 맞으면 내가 있는 곳으로 아이들끼리 놀러 오기도 했는데, 먼 길 떠나 온 아이들을 위해 나는 항상 맛있는 걸 사줬고, 돌아갈 땐 책이라도 한 권씩 사 들려서 보내곤 했다. 그렇게 아이들을 배웅하는 버스 터미널에선 애들이 갈 때 사고라도 나지는 않을까, 집까지는 잘 찾아갈 수 있을까 걱정을 한가득 안은 채 손을 흔들었다. 일종의 모성애였다. 몇 살 차이 나진 않지만, 얘네를 만나고 오면 마치 꼭 내가 엄마라도 된 것 같다는 말은 중학생 아이를 키우는 옆 부서 언니만이 이해한다 해주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른도 아니고, 또래도 아닌 경계인간으로서 편한 대상이었던 듯 했다. 돌이켜보면 나도 나이 든 담임 선생님보단 잠깐 왔다 가는 젊은 교생 선생님에게 왠지 더 마음을 터놓고 싶어지곤 했었으니까. 그렇게 그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고(이 아이들은 모두 사회에서 말하는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 다 내 기운이라고 말해 줬다.), 대학 생활에 막 빠져들기 전까지 계속 연락을 하며 지냈는데(역시 대학 들어가서 친구들 사귀면 우선 순위가 바뀐다.), 문득 애들 잘 지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메신저 목록을 훑어보던 찰나에


 '어? 얘들 정국이랑 한 살 차이네' 하고 깨달아버린 것이다.


 나름 어려보이는 얼굴에 작은 체구, 덕질 덕에 나이 들지 않는 마음까지 합해져 꽤 동안이라 느끼고 살았는데. 아들 같아서, 마냥 걱정만 되던 그 아이들과 '이 존재 실화냐' 하며 앓는 우리 정국이가 고작 한 살 차이라니. 그 순간의 기분을 무엇이라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동시에 스무살 때 열 다섯 살의 정국이를 처음 만났던 석진이가 스쳤다. 누가 노래 불러보라 하면 가만히 있다가 무서워져 굵은 눈물 뚝뚝 흘리던 정국이 지금의 황금 막내로 커 가는 과정을 지켜본 석진이가 정국이에게 "임마 내가 널 업어 키웠어"하던 장난스런 울부짖음이 귓가에 울리는 듯 했다, 왱왱. 고작 2박 3일의 캠프에, 몇 년에 걸쳐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로도만 봤던 아이들도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어 뿌듯했는데, 석진이가 정국이를 비롯해 당시 10대였던 멤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느꼈을 감정은 더 했을 거다.


 그냥 봐선 석진이가 방탄소년단의 맏형인 게 잘 티가 안난다. 워낙 남준이가 리더 역할을 잘 하기도 해서지만, 어딘가 옆에서 장난을 치고 이상한 농담을 하거나 막둥이인 정국이와 투닥이며 몸싸움을 하고 있거나 하는 석진이가 우리가 아는 '맏형'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무게감이 없고, 장난스럽다. 하지만 우린 안다. 가벼워보이는 것을 택함으로서 팀의 맏형으로 기능하고자 한 사람이라는 걸.


 아직도 열다섯의 아이같은지 그 큰 정국이의 볼을 꼬집으며 끅끅거리며 웃는 석진이를 보며 노래하고 춤추는 걸 업으로 삼을거라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1인으로서, 10대의 동생들과 연습하던 순도 100% 노력형 1인으로서, 꼰대 의식이 없음으로 지금의 방탄소년단의 관계성을 만들 수 있었던 1인으로서의 석진이 얼마나 멋진 지를 생각한다. 이 모든 '그럼으로서'를 가능케한 방탄소년단 맏형인 석진은,



 [월와핸]

 


 석진이는 스무살에 연습생이 되었다. 일찍이 수시 모집으로 합격했던 건국대 연극영화과의 입학식에 참석하러 가던 길에 빅히트 관계자에게 길거리 캐스팅을 당한 것이었다. 중학교 때 굴지의 연예 기획사로부터 명함을 받아 1차 면접을 봤던 적이 있었지만 당시엔 이게 사기일까 무섭기도 하고, 본인이 연예인이 될 거라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기에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후 드라마 <선덕여왕>의 '비담' 캐릭터를 보고 연기가 사람을 저렇게 멋지게 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연기자의 꿈을 꾸게 되었고, 그렇게 선택한 전공이 연극영화과였다. 그리고 그 전공에 발을 들이려 가던 첫 날에 가수라는 또 다른 길이 열렸다. 운명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석진이 중학생 때 타 기획사에 들어가지 않았던 모든 이유를 그저 운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석진이는 남준, 윤기, 호석 다음으로 빅히트에 들어 온 연습생이었다. 랩 라인에 이어 쌩뚱맞은 조합인 듯 하지만 당시엔 방탄소년단의 틀을 제대로 갖춘 때가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내가 캐스팅 담당자라도 그 등굣길 석진을 그저 지나칠 수 없었을 터였다. 갸름한 얼굴형에 큰 눈, 오똑한 코, 도톰한 입술. 미남으로 불리기에 손색없는 얼굴인 석진이의 얼굴은 호불호없이 누구나 미남으로 칭하기 충분하다.


 다른 멤버들과 달리 석진은 대학 캠퍼스 생활을 했다. 워낙 꾸미는 데에 관심이 없고 옷을 사더라도 마네킹에 걸려진 그대로 사거나, 매장 한 군데에 들어서면 그 곳에서 모든 쇼핑을 끝마치는 스타일 덕에 꾸미지 않은 차림으로 평범하게 학교 생활을 했음에도 다양한 각도로 찍힌 강의실 사진들이 지금도 종종 올라오곤 한다. 패션의 완성은 역시 얼굴인가 보다. 넓은 어깨를 부각시키는 니트에 청바지, 평소 즐겨쓰는 캡모자를 눌러 쓴 채 캠퍼스를 거닐었을 석진이를 생각하면 가끔 소름이 돋는다.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생각하던 첫사랑 대학 선배 그 자체라서. 그 시절, 캠퍼스를 성큼 성큼 지나는 석진이를 실제로 봤다면 그 자리에 우뚝 서 눈으로 좇느라 정신없었을 것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주쳤던 그 길을 몇 날 며칠을 서성이곤 하지 않았을까.


 2015년 말, <I need U>, <Run>을 발표하며 도약의 날갯짓을 시작한 방탄소년단은 멜론뮤직어워드 시상식에 참석했다. 방탄소년단이 탑승한 까만 차량 천천히 들어오더니 레드카펫 시작점에 멈춰섰다. 비가 오는 터라 차량 옆에는 우산을 펼친 경호원이 대기중이었다. 찰나의 시간이 흐르고 차 문을 연 석진의 얼굴이 드러났다. 조명을 받아 하얗게 빛난 얼굴로 레드카펫 너머를 먼저 응시한 후 몸을 숙여 차에서 내려 우산 아래 섰다. 그 뒤로 멤버들이 차례로 내린 뒤 옷 매무새를 점검했다. 팬들과 취재진을 향해 인사를 하며 레드카펫을 걷는 방탄소년단의 모습이 생중계되는 동시에 모두가 앞다투어 검색하기 시작했다. '저 차 문을 열고 나오는 남자는 누구냐'며. 2015년 멜론뮤직어워드의 핫 키워드는 그 해의 신인상도, 대상도 아니었다. 일명 '차문남', 석진이었다. 비단 국내 뿐이 아니었다. 2017 빌보드 뮤직 어워드 시상식 포토월에 선 방탄소년단. 석진은 보이는 시선 왼 쪽의 세 번째에 서서 손키스를 날리며 카메라 셔터에 응답했는데, 그즉시 트위터의 해시태그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대체 저 '왼세남(Third member from the left BTS)'이 누구냐고.


 거울을 볼 때 어떤 기분이 드냐는 팬의 질문에 지민이 "별 생각은 안하는 데 막 그런 거 있잖아요. 여기서 좀 더 잘생겼으면 좋을텐데 막 이런 거. 진 형처럼 나도 코도 좀 높고..." 하자 석진은 금세 "저 코 납작해요" 하고, "입술도 좀 더 도톰하고 진 형처럼 눈도 좀 더 크고..." 하면 "저 입술 얇아요 저 눈 작아요" 한다. "지민 씨의 매력에 비하면 저의 얼굴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도 보탰다.


 스스로 잘생겼다고 하지만 그건 사실 진심이 섞인 분위기 쇄신용 농담이다. 맏형 석진의 제스쳐. 데뷔 초, 멤버들이 카메라 앞에서 끼를 부리며 가감없이 자신을 내보일 때 조용히 앉아 있던 멤버가 석진이었다. 카메라도 제대로 보지 못 하고, 먼저 나서지 않고, 튀지 않은 채 뒤에서 조용히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던 석진을 지금처럼 변화시킨 게 바로 이 '월드 와이드 핸섬'이라는 수식어와 손키스였다. 진지한 인터뷰 가운데에 아이스 브레이크하는, 어색한 분위기를 무너뜨리는 석진이의 입에선 '월드 와이드 핸섬'이라는 귀여운 자화자찬이 터져 나온다.


 모태 미남이기에 가질 수 있는 이 여유, 이 자신감, 이 장난.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 요소가 단 1그램도 없는 것은 이 모든 것이 석진이기 때문이다. 자신감이거나 장난이거나. 그의 잘생긴 얼굴이 '월드 와이드 핸섬'임을 부정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날개가 있어야 날아 오른다]



 흙수저를 대변하는 방탄소년단의 <뱁새> 노래 중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다.


 아 노력노력 타령 좀 그만둬

 아 오그라들어 내 두 손발도 


 처음부터 출발선이 다르고, 주어진 양이 다른데, 그걸 노력하지 않은 개인 탓만 하는 어른 혹은 사회를 향해 노력 타령 좀 그만 하라고 외치는 노래다. 하지만 이 노랫말 속 '노력노력 타령 좀 그만 하라'는 말은 석진에겐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그 노력 하나로 여기까지 온 사람이 석진이기 때문이다.


 스무살이 될 때까지 노래와 춤을 가까이 하지 않았던 사람이 아이돌 연습생이 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게다가 같이 연습실을 쓰는 동료들의 이력이 하나 같이들 화려하다면. 윤기는 열 세 살부터 음악 미디를 다루며 작곡을 하고 랩을 했다고 하고, 호석이는 그 지역을 이미 춤으로 장악한 후 서울로 상경했다고 하고, 남준이는 랩 메이킹을 하고 노래를 만드는 솜씨가 이미 기성 가수 수준이다.


 데뷔곡 <No more dream>을 하루 열 시간씩 두 달을 넘게 연습을 했는데도 석진의 춤 실력은 다른 멤버들에 비해 한참 떨어졌다. 어느 정도 타고나는 부분이 뒷받침 되는 것이 춤이다 보니 남들보다 더 열심히 연습해도 그루브를 따라가긴 어려웠다. 상대적으로 춤을 잘 춰서 시선을 끄는 멤버들이 중심에 서고, 석진은 춤 보단 랩을 잘하는 남준과 함께 안무 대형의 양 끝에 서게 되었다. 2018 <방탄회식>을 통해 석진은 정말 열심히 해도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며, 이렇게 연습을 했는데도 이 정도 밖에 안나오는 거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했다.


 덕통사고가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운 움짤을 봤다. 방탄소년단의 안무 키포인트를 하나씩 짚어놓는 gif 파일이었는데, 7명이서 마치 하나처럼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뛰는 높이도, 팔을 뻗는 각도도, 턴을 하는 속도도 튀는 사람 하나 없이 일정했다. 대상 후보로 거론될 때의 활동곡임에도 그랬다. 데뷔하기 위해 독기가 바싹 오른 때도 아니면서, 무대를 대하는 태도만큼은 여전한 방탄소년단이었다.


 그래서 나는 석진이 춤을 잘 못 춘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타고남이 없으면 노력으로, 그루브가 없으면 완벽한 박자로, 가장 힘들다는 방탄소년단의 안무를 100% 소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몇 점을 주겠냐는 질문에 석진은 80점이라고 대답했다. 인생에 항상 긍정적인 면만을 바라보긴 하지만 이 대부분은 노력에 주는 점수라고 했다. 데뷔 초에 비하면 석진의 춤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이젠 장난스럽게 웨이브도 한다. 방탄소년단의 날개는 피 땀 눈물 흘려가며 멤버들의 수준에 맞춰가는 석진의 노력으로서 펼쳐졌다.  


 2018년 Love yourself 콘서트에서 석진은 자신의 솔로곡 <Epiphany>를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열창했다. 그 전까지 피아노를 전혀 쳐 본 적이 없는 석진이지만, 단순히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하는 척을 하는 건 스스로 용서가 안 돼 건반 자체를 이미지처럼 외워 1절 반주를 완성시킨 것이다. 똑딱똑딱 일정하게 흐르는 메트로놈의 박자에 맞춰 티셔츠 카라 안에 마이크를 넣은 채 같은 곡을 몇 번이고 연주하며 연습한 석진은, 아미 덕에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고, 피아노 연주 또한 아미 덕에 새로 배운 좋은 경험이라며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미성의 고음으로 완창하는 <Epiphany>의 라이브가 완벽했음은 당연하다.


 타고나지 않았다는 건 그걸 써보지 않은 이상 모른다. 발굴하지 않으면 묻혀있다는 것 조차 모른 채 지나가 버린다. 석진은 노력으로서 자신의 안에 있는 가수로서의 본질을 캐냈다. 방탄소년단의 당당한 양 날개로, 서브 보컬로.



 [진형같은 맏형이 좋다]



 '... 다들 성격이 변했는데 맏형인 진은 올곧게 성격이 안 변했다. 굉장히 상식적인 친구다. 멤버들이 기준선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좋은 친구다.'


 2017년 4월 24일,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방시혁 대표는 석진에 대해 위와 같이 말했다.


 방탄소년단의 셀링 포인트를 말할 때 그들의 관계성을 꼽는 팬들이 많고, 나 역시 이 내용을 한 편으로 다뤄 쓴 적이 있었다(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6. 관계성이 다 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가 정말 좋아서 함께하고 있다는 안정적 상호성은 6년차가 된 현재까지 복작거리는 단체 생활을 기꺼워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한 몫하는 사람이 바로 석진이다. 큰 형이라고 의견에 섣불리 끼어들거나 편을 가르지 않는다. 꼰대 의식도 없고, 서열을 나누거나 등급을 나누는 데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 오히려 본인을 하찮게 여기고 편안하게 대하면 즐거워서 와이퍼 닦는 소리를 내며 끅끅 웃는다.


 2018년 어느 날, 콘서트가 끝난 뒤 지민의 호텔방에 석진과 호석이 모여 앉았다. 룸서비스로 시킨 스테이크와 핫 윙을 앞에 두고 지민이 비빔면을 추가로 준비하러 가자, 석진이 멤버들끼리 최근 "맏형 같은 맏형이 좋냐, 진 형 같은 맏형이 좋냐"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말에 호석이가 얼른 "나는 그래도 진 형 같은 맏형이 좋다"는 답을 내놓았다고 하자, 커피포트 앞에 있던 지민이 냉큼 달려와 웃으며 "그러니까 숨겨진 뜻은 진 형은 맏형 같지가 않다"는 것이란다. 허허 하며 듣던 석진이가 한 마디 꺼냈다. "여러분 제가 맏형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윤기가 맏형이었다고 생각해 봐요. 다들 큰일 났어요."


 진 형 같은 맏형이 좋은 건 단순히 어린 동생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서 뿐이 아니다. 진지한 인터뷰 시간이 되면 석진은 자신이 생각해 온 여러 가지의 행복의 정의에 대해 곧잘 얘기하곤 한다. '너의 수고는 너 자신만 알면 돼'는 이제는 너무 유명해져버려 방탄소년단 팬이 아니어도 한 번쯤 들어봄 직한 문장이 되었는데, 이건 2015년의 한 인터뷰에서 석진이 고생한 자신에게 스스로 건넸던 말이었다. 지금까지 많은 수고를 했고, 앞으로 할 수고도 굉장히 많이 남아있지만, 이 모든 너의 수고는 내가 알고 있으니, 저 자신만 알면 된다고. 이 말은 어떤 경지나 지침같아서 내 프로필 문구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 문장이 되었다.


 실없는 아재 개그를 던지고 잘생긴 얼굴을 구기며 웃는 석진이는 단순히 자신이 즐겁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으로 인해 웃을 사람으로 인해 망가짐을 불사한다. 항상 웃고 까불거리는 건, 그럼으로서 자신이 행복한 것도 있지만 상대방이 웃어서 더 행복해진다는 말은 석진이의 인생 모토에 가깝다. 내가 행복한 것도 중요하고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행복한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인 석진을 향해 지민은 인생을 가장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 말하기도 했다.


 "크고 작은 걱정이 있을 땐 불행할 수도 있지만 그 다음 순간으로 지나가면 행복함을 또 느끼잖아요.

  불행하다고 느낄 땐 뭐 그때야 뭐 불행하죠. 근데 지난 지금은 행복하니까. 좋게 좋게 살아야죠.

 주어진 상황을 즐기고 주변을 사랑하다보면 어느새 행복해져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 Burn The Stage 中 석진의 인터뷰


 이타적이고 긍정적이며 구김살없고 꼬인 데 없고 쓸데 없이 무게 잡지 않으면서도 때에 따라 가장 큰 포용을 이끌어내는 사람.


 석진이 같은 맏형이 방탄소년단의 맏형이라, 우리 멤버 석진이라 정말 다행이다.






 무언가 진짜다 라고 말하고 싶을 때, 몇 해 전만 해도 '레알'이라는 속어를 썼던 것 같은데 요즘엔 '찐'이라고 하나보다. 나 어릴 땐 진품와 가품를 구분할 때 진품을 '찐'이라고 했었는데. 요즘 쓰는 '찐'이라는 말은 좀 더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진짜' 란다.


 멤버들이 석진을 장난스럽게 부르면 '찐'이 된다. '오~ 찐, 무슨 일이에요' '찐! 오늘 잘생겼는데?' 하고. 석진이의 활동명인 '진'이 이렇게 어울릴 수 있을까. 요즘 애들의 말마따나 진국, 진짜, 진실인 사람인 석진이 정말 '찐'이기 때문이다.


 2017년 엠카운트다운 컴백 스페셜에서 석진이는 본인이 키우는 슈가 글라이더 '어묵이'와 '오뎅이'를 처음 공개했다. 혹여나 어린 친구들이 그저 석진이 키우니까 따라 키우고 싶다고 너무 쉽게 결정내릴 것을 걱정해서였다. 석진의 섬세함은 이런 작은 부분에서 드러난다.


 2018년 말 한 지상파 연말 음악축제. 이 날의 마지막 곡은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였다. 전 출연진이 무대 위에 올라 이 신나는 곡을 즐기는 엔딩 무대에서 방탄소년단은 아모르 파티의 일부 안무를 외워와 대선배 김연자의 백댄서를 자청하며 춤을 추었다. 이 날 MC를 봤던 석진은 드디어 긴장이 풀렸는지 무대 한 켠에서 무아지경으로 춤을 췄는데, 뒷 쪽에 살짝 물러나 있던 노라조 멤버 조빈을 발견하자 그의 팔짱을 낀 채 무대 앞으로 데려와 함께 춤을 췄다. 연말 음악 축제답게 대부분이 아이돌 그룹 위주의 라인업이었는데, 약간 동떨어져 어설프게 서 있던 노라조의 모습이 석진의 레이다망에 걸린 것이었다. 조빈은 나중에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 때 석진의 마음씀씀이가 정말 고마웠다며, 지금 이렇게 잘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연습생 시절과 데뷔 초 숙소에서 석진은 음식 만들기를 도맡아했다. 요리하는 과정을 일일이 찍어 방탄소년단 블로그에 레시피를 자주 공개할 정도였는데, 그렇게 만든 푸짐한 음식을 멤버들이 양 볼에 가득 넣고 먹는 걸 뿌듯하게 바라보며 즐거워했다. 2018년 <달려라 방탄>의 일출보기 등산 벌칙에 걸린 남준과 태형이를 위해 더 먼저 일어나 떡국을 끓여 보온병에 담아 들려보낸 것도 석진이었다.


 이 외모에, 이 성격에, 이 성정에, 이 철학을 가진 사람이 존재하다니.


 트로트 가사처럼 부르고 싶다.

 "어디에서 떨어졌니. 당신은 찐이야. 정말로 찐이야."


  내 말 맏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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