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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un 11. 2019

25. 일방 삽질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25



 나는 후회할 줄 알면서도 행하고 마는, '알지만 어쩔 수 없는 것들'의 가짓수가 꽤 많다.


 이 늦은 시간에 치킨을 시켜 먹으면 분명 후회할 걸 알면서도 배달 어플의 결제 버튼을 홀린 듯 눌러버린다거나, 말을 아껴야지 하면서도 어색한 분위기를 순간 참지 못해 많은 말을 뱉어버린다거나, 그러면서 돌아오는 길 내내 '왜 그랬을까' 자괴감에 빠졌다가 다음날 또 말의 물꼬를 트며 주저리주저리 말을 해버린다거나, 호기롭게 계산을 한 뒤 다음날 결제 내역을 보며 동공 지진이 난다던가 하는 것들.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혜택 중 하나로 '망각'을 꼽는다면, 다음날의 후회나 자괴감을 망각의 영역 속에 담고 사는 나는 망각의 수혜자다.


 내가 후회할 줄 알면서도 행하고 마는,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의 최고봉은 역시 덕질이다. 마음 다칠 일도 많고(마음을 쓰는 시간과 마음이 쓰이는 크기에 비례하는 상처는 어디에나 있다), 좋았다가 슬펐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널뛰는 감정을 마주할 수 있고(손가락 하트를 찍어 올린 사진 하나에 심쿵하다가도 다른 사진에서 슬쩍 표정이 어둡다 싶으면 수만 가지의 억측을 하곤 한다), 하나의 단어 아래 모든 것이 매몰되고 흡수되는 경험(내 단어는 역시 '방탄소년단'이고)을 해야 한다는 것 알면서도 시작했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이 새 미니 앨범 <Map of the persona>를 발표하면서 국내 활동을 시작했다. 온전히 음악 방송 출연에 집중한 활동이었다. 지상파 3사와 엠넷의 음악 방송 출연과 팬사인회, 인터뷰 등의 스케줄로 꽉 찬 2주일이었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사전녹화와 대기, 본방송, 이동한 뒤 또 같은 순서대로 이어지는 사전녹화와 대기, 본방송. 숨 돌릴 새 없이 초단위로 활동을 해나가는 가운데, 브이앱 라이브 방송도 빼놓지 않았다. 그야말로 폭풍우 같은 나날이었다.


 이 공식 활동의 마무리는 호비의 고향인 광주에서 열리는 <슈퍼 콘서트 in 광주>. 이 공연만큼은 무조건 현장에서 봐야 했다. 각 방송사의 환경에 따라 들쑥날쑥, 새벽이며 낮이며 종잡을 수 없게 시작되는 주중 방송 녹화 방청은 서울이 아닌 곳에서 일하는 회사원에겐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고, 이 슈퍼 콘서트가 끝나면 바로 미국으로 출국하기에 방탄소년단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는 데다, 무료 티켓으로 관람이 가능하고, 게다가 호비가 늘 외치는 자신의 고향 '광주'에서 열리는 공연이었으니 말이다.


 운이 좋게 티켓을 구한 나는 티켓은 없지만 현장 분위기라도 느끼겠다며 공연장 ‘겉돌'을 자처하는 팬들의 게시글을 보며 한편으론 안도감에, 다른 한편으론 불편함을 가진 비현실적인 기분으로 공연이 있는 날만 기다렸다.


 4월 마지막 주 일요일. 공연이 열릴 광주 월드컵 경기장에 도착했다. 공연 시작 시간보다 6시간여 일찍 도착했더니 야외 주차장에 여유가 있어 공연장과 멀지 않은 곳에 주차를 했다. 4월 말이라는 날짜가 무색하게 덥고, 공연이 시작되려면 한참이나 남은 시간이었지만 이미 많은 팬들이 경기장 옆 롯데마트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가벼운 식사를 마친 뒤, 마치 놀이공원인 양 분식이며 닭꼬치나 핫도그를 파는 많은 노점상을 지나쳤다. 주차장 초입에서 롯데마트 입구로 이어지는 긴 길을 따라 멤버들의 얼굴이나 이름이 담긴 다양한 굿즈를 팔고 있었는데 그 틈에서 부채와 슬로건 몇 가지를 구매했다. 비슷비슷하게 밝은 얼굴을 한 수많은 팬들 사이에서 그 길을 몇 번 오다니다 갈무리하고 차 안으로 돌아와 앉았다.


 일찍 와서 축제 분위기도 즐기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사진도 많이 찍자는 마음은 어디로 휘발된 걸까. 그 어릴 때 마냥 로망이었던, 직접 운전하는 내 차를 가지고 공연을 보러 가는 버킷 리스트를 실행한다고 히죽대며 방탄소년단 노래 크게 틀어놓고 신이나 운전했던 마음은 언제 증발한 걸까.


 내가 덕질을 시작한 때 이미 날개를 장착했던 방탄소년단이고, 이젠 높은 곳으로 날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보게 된 것인데, 그래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애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게 당연한데. 일대일로 주고받는 마음을 바란 것도 아니었고, 그저 바라만 봐도 좋아서, 이렇게 많은 팬들 중의 하나임을 모르고 시작한 거 아닌데 나 왜 우울해하지?


 그랬다.


 덕질에 따라오는 이 옅은 우울감. 초미세먼지는 뉴스 메인 감이라도 되지, 그보다 못한 존재감을 여실히 확인할 때 생기는 미미한 존재의 발악.


 공연이 가까워진 즈음에 티켓이 생겨 무척 신이 났었던 상황을 이성적으로 상기하며, 지금 바깥에 나가서 돌아다니지 않는 건 그저 더워서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해가 지기만을 바랐다. 이제 막 리허설이 시작됐는지 <작은 것들을 위한 시>를 비롯 <DNA>와 <IDOL>의 음악이 차창 안으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무대에 서 있는 그들과 좌석에 앉아 있는 나 사이를 제외하고 생각했을 때, 그 어느 때보다 가까운 사정권 안에 있음에도 지금 이 거리가 그 어떤 것보다 멀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앞으로 걸어 다가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지금 뒤를 돌아 지구 반대편으로 한 바퀴를 돌아야 그들에게 가 닿는 느낌.


  뜨겁게 달궈졌던 4월 말의 낮은 차갑게 식은 밤으로 거짓말처럼 탈바꿈하였다. 오히려 낮의 더위가 그리울 정도로 쌀쌀하기까지 했다. 옷깃을 여미며 티켓을 확인받고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슈퍼 콘서트는 총 10팀의 가수가 출연하는, 인기가요의 확장판 버전의 공연이었다. 해가 저물고, 공연의 서막이 올랐다. 확실히 밤의 어둠은 숨기고 가리는 힘이 있다. 리허설 음악이 흐르는 공연장을 등진 채 핸드폰 속의 방탄소년단을 바라보던 사람은 없던 사람이 됐다. 이름을 처음 들어보거나 노래도 생소한 가수들이 꽤 많았는데 그럼에도 신이 나 절로 들썩였다. 현장은 역시 화면과 다르다.


 10팀의 가수 중 가장 마지막 순서는 당연히 방탄소년단. 메인 무대에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오는 그들의 실루엣이 시야에 들어찼다. 오늘이 아쉽지 않을 데시벨의 함성이 입새로 터져 나왔다. 내일의 출근 따위 안중에 없었다.


 리허설 때 들었던 <작은 것들을 위한 시>가 끝나자 멤버들은 이렇게 많이 와 준 관객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특히 광주는 제이홉의 고향이기에 더 특별하다는 남준이의 멘트가 있자 호비는 즉석에서 <Ma city> 중 자신의 파트, '나 전라남도 광주 baby 내 발걸음이 산으로 간대도 무등산 정상에 매일매일'을 불렀다. 호응이 더 커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어떤 무대든 소홀히 하지 않는 방탄소년단이기에 <DNA>와 <IDOL>에선 부서져라 춤을 추며 무대를 꽉 채웠다. 특히 이번 앨범의 곡 <Make it right>은 깜짝 선물처럼 공개해 팬들의 떼창을 유도했는데, 리허설 때 선보이지 않았던 곡이라 이 곡의 전주가 흘러나오는 순간, 그 자체로 완벽히 전율이라 소름이 돋았을 정도였다.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마지막 곡의 엔딩에 맞춰 폭죽이 터졌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무대에 누운 멤버들. 봄 밤의 짙은 하늘을 향해 터지는 폭죽을 무대에 누운 채 눈에 담다가 털고 일어섰다. 가깝고 먼 곳의 팬들에게 인사를 나누며 무대 뒤로 사라지는 멤버들을 까치발을 들어 마지막까지 바라봤다. 큰 소리로 존재감을 알리며 파바박- 터지던 불꽃이 점차 잦아들었다. 공연은 끝이 났고, 그 즉시 현실로 회귀했다.


 공연의 여흥을 떨쳐내지 못해 한껏 상기된 사람도 있고, 굳은 표정으로 잰걸음을 하는 사람도 있고, 돌아가는 차편을 검색하려 핸드폰을 바라보느라 길을 막게 하는 사람도 있고, 우는 사람도 있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의 인파에 섞여 걸었다. 화려한 무대 조명에 가려졌던 낮의 상념이 금세 모습을 찾았다.


 늦은 밤. 차를 타고 까만 도로를 질주해 돌아오는 길. 열병처럼 앓았던 10대의 덕질을 떠올린다. 덕질이 전부인 것만 같았던 때. 단 한 마디로 단숨에 울게도 웃게도 만들었던 이름들. 시간이 흐르면서 깨달아가던 무수한 진리들. 다들 흐르는 시간을 살고 있는데 나만 고여있었다는 걸 뒤늦게 눈치챘던 때. 영원할 줄 알았던 마음이 흐려지고, 그렇게 아무렇지 않아 지던 흐름. 그 과정을 통해 성숙을 배웠고 내 것의 일상을 먼저 향유하는 덕질로 진화하였으나 어린 덕후의 마음을 헤집어놓던 상념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바로 '나를 대단히 특별한 사람처럼 만들어주다가도 바닷가의 모래 한 알보다 하찮은 존재감으로 전락시킬 수 있는 게 덕질인 걸 알고 시작했음에도 도무지 마음의 갈피가 잡히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딱 오늘처럼.


 이렇게 늦은 시간 운전해본 적이 언제였지. 가로등 불빛이 꼭 달과 같다며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조심히 운전을 하는데 갑자기 짝사랑을 노래한 곡들이 연달아 차 안에 흐르기 시작했다. 재생목록을 임의로 틀었더니 아주 오래전에 담아두고 잊고 있던 노래들이 나온다. 어쩌면 이 타이밍에 이런 노래냐. 습관처럼 흥얼거리다가 가사들을 곱씹자 그것들이 가시처럼 목에 턱 걸린다.



  한 걸음 뒤엔 항상 내가 있었는데

  그대 영원히 내 모습 볼 수 없나요

  나를 바라보면 내게 손짓하면 언제나 사랑할 텐데


  사람들은 내게 말했었죠 왜 그토록 한 곳만 보는지

  난 알 수 없었죠 내 마음을

  작은 인형처럼 그대만을 향해 있는 나 / 인형의 꿈



 한참 사춘기를 지나고 있던 때. 나는 내 마음의 대부분을 당시 덕질 대상이었던 지오디에 쏟고 있었기 때문에 또래 남자아이들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친구들이 가끔 연애 상담 비스무리한 걸 해 오면 훨씬 크고 멋진 어른들이 너머에 있는데, 아직 채 자라지 않은 또래들이 뭐가 멋있어 보이냐는 질문을 삼키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곤 했었다. 그즈음 친한 친구 한 명이 옆 반 남학생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친구는 그 남학생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이고 얼굴이 좋아졌다 나빠졌다 했다.


 놀이공원으로 소풍을 다녀온 날. 시간도 넉넉하겠다, 용돈도 남았겠다,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모여 노래방을 향했다. 최신곡부터 만화 주제가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목청을 자랑하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들 지쳐버렸다. 놀이기구를 타면서 이미 목을 많이 썼던 터였다. 저마다 피곤에 휩싸여 소파에 몸을 기대는데, 그때 이 <인형의 꿈>의 전주가 흘렀다. 한창 짝사랑이 무르익어가던 친구가 선곡한 노래였다.


 혼자 일어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던 친구는 '한 걸음 뒤에 항상 내가 있었는데' 하는 후렴에서부터 울먹이더니 '난 알 수 없었죠' 하며 절정에 치닫는 부분에서 목놓아 울었다. 같이 있던 친구들이 모두 놀라 일어나 친구를 둘러싸 친구의 어깨를 다독였다. 거절이 무서워 고백하지 못해서였던가, 마음을 표현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었던가. 왜 그때 그렇게 서럽게 울었던 건지 그 이유는 지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이 노래를 부르며 울던 그때의 그 노래방 분위기만큼은 최근 일처럼 또렷하다.


 덕질은 밸런스가 맞지 않는 사랑이다. 항상 내 마음이 더 크고 깊게 느껴진다. 그들이 전달해오는 말로 마음의 크기를 가늠할 수밖에 없고 그것들은 늘 부족한 것만 같다. 무언가를 바라고 시작한 것도 아니고, 나도 모르는 새에 너무 커져 버린 마음이기에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 자체가 미안할 때가 있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으로, 그들의 글과 사진으로, 그런 그들을 바탕으로 다양하게 나누는 사담으로 일상을 풍요롭게 만든 것만으로도 충분할진대. 사람이 사람을 향해 건네는 마음이 어디 그렇게 간단할 수 있으랴. 그들에게 마냥 감사 인사만 해도 모자란 상황에 ‘한 걸음 뒤에 있는 날 알긴 하나요’ 하며 꺼이꺼이 울고 싶어져버리는 걸.


 그냥 너무 많이 좋아해서 그런 거라고. 오늘처럼 이 먼 거리감을 체득하고 오는 날엔 이 복잡한 마음을 감당하기 어려워 그러는 거라고. 그렇게 그들의 이해를 바라는 수밖에.



  You know I do 널 사랑한다고 내가 누군지는 몰라도


  오늘은 왜 웃지 않고 있을까 그대 무슨 일인지 별일 아니었음 좋겠는데

  시름이 가득한 그대 얼굴 난 볼 수가 없는데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낫겠어 그럴 수가 없는 게 너무나도 안타까워


  미친 사랑에 빠진 boy say girl say oh oh oh

  바보 같은 사랑에 빠진 boy say girl say oh oh oh

  헛된 사랑에 빠진 boy say girl say oh oh oh

  나 같은 사랑에 빠진 boy say girl say oh oh oh

  내가 누군지는 몰라도 / FAN



 세상에. 이번엔 FAN이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만 담긴 MP3를 블루투스로 연결했으니 내 취향에 딱인 노래가 나오는 게 당연한데도 놀라버렸다.


 이 노래를 타이틀곡으로 활동할 때 에픽하이는 어느 가수보다 가장 큰 떼창을 듣는 가수였다. 어떤 가수를 응원하러 왔든 에픽하이가 부르는 이 노래에 감응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에픽하이가 마이크를 관객석으로 넘기면 남녀 할 것 없이 그들의 선창에 맞춰 'oh oh oh'를 외쳤다. 어떤 인터뷰에서 타블로는 말했다. 길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에게 첫눈에 반하는 걸 로맨틱하다 말하면서, 왜 연예인을 좋아하는 마음은 하찮고 어리석은 일로 치부하는지 모르겠다고.


 덕질은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지내고 있는 회사 동료보다 어쩌면 친구보다 혹은 가족보다 덕질 대상에 대해 많이 아는 일이고, 그렇기에 덕후는 단순히 그들의 외모나 화려함만을 좇는 사람이 아님에도 많은 일반인들이 이 사실을 간과한다. 덕후 마음은 덕후만 이해한다고 지금 이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알쏭달쏭한 마음을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뉘앙스로, 기분으로, 느낌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다.


 내가 누군지는 몰라도, 널 사랑한다고.


 정말 주옥같은 문장이다.


 차가 막히지 않아 동네 가까이에 금세 도착했다. 조금 더 드라이브를 하다가 목적 없이 다니는 것도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아파트 단지 내로 돌아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음악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 채 무대 위에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힘찬 박수도 뜨겁던 관객의 찬사도 이젠 다 사라져

  객석에는 정적만이 남아있죠

  책망만이 흐르고 있죠


  끝나면 모두들 떠나버리고 객석에는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 연극이 끝난 후


                           

 집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듣는 노래. 담백하게 흐르는 목소리에 오늘 본 폭죽을 떠올렸다. 가장 화려하게 지던 폭죽의 허무를, 그 찰나의 반짝임을 되새겼다.


 씻고 누웠는데 오늘 왠지 바로 잠들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멀뚱멀뚱 천장만 바라봤다가 노래를 들었다가 트위터에 올라온 사진들을 순서대로 저장했다가 하는데 갑자기 알람이 울렸다. 적막을 깨는 커다란 소리였다.


 남준이나 공식 카페에 글을 올렸다는 알람이었다  광주에서 서울로 향하는 차 안에서 많은 생각을 한 듯 꾹꾹 눌러쓴 글이었다. 최근 2주간의 활동에 대한 이야기와 최근 자신의 생각들을 쭉 나열하다가 온전한 진심을 전하기가 참 쉽지는 않다고, 눈길로 눈빛으로 글자들로 전해주었던 귀한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더 애쓰겠다고,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로 끝맺음했다.


 미처 피하지 못하고 불시에 한 대 맞은 듯 멍해졌다.


 감히 내 마음이 훨씬 더 크다고 생각했다. 쌍방의 마음은 균형이 맞지 않고 언제나 내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고 생각했다. 이 자만과 교만이 더 나아가지 않도록 남준이가 브레이크를 걸어준 것이다. 아주 적절하게. 피곤함을 무릅쓰고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은 채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들여 썼을 남준이의 양 엄지에 이 모든 삽질이 거짓말처럼 스톱됐다.


 그들의 노력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내 마음의 크기에만 집중했다. 연극이 끝난 뒤 무대를 등지고 나오는 관객들만큼 텅 빈 관객석을 넘겨 보는 그들 역시 허무할 수 있음을, 언제고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릴 마음들을 불안해하며 바라볼 수 있음을, 자신들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더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여러 방법을 고민하고 있음을 쉽게 잊어버렸다.


 남준이의 글을 몇 번이고 곱씹고 읽었다. 12시가 넘어 월요일이 되었다. 슈퍼 콘서트가 있었던 일요일은 어제의 일이 되었다.


 사실 안다. 이렇게 깨닫고 나서도 '나 말고도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마음 따위 모르겠지', 수많은 팬들 사이에서 뜻 모르게 슬퍼져서 '덕질이 대체 뭔데' 했다가 '이럴 줄 몰랐어?' 하며 또다시 같은 삽질을 하게 될지 모른다. 변명 아닌 변명을 꺼내야겠다. 나는 신이 아니고, 행하고 후회하는 일의 반복을 끊임없이 해 나갈 한낱 미성숙한 인간인 걸.


 신이 났다가 풀 죽었다가, 우울했다가, 괜찮아졌다가, 미안했다가, 고마웠다가, 이름이 붙은 다양한 감정들이 휘몰아친 오늘은 내가 앞으로 해 나갈 덕질을 단 하루로 요약한 듯했다.


 후회할 줄 알면서도 행하고 마는,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어쩌겠는가. 이게 덕후고 이게 덕질인데.


 그게요,

 너무 좋아해서 그래요.




 




 4월의 이야기를 뒤늦게 곱씹었다.


 울트라 초 슈퍼스타인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팬들이 이따금씩 느끼곤 하는 그 먼 거리감에 대해 귀엽게 토로하는 몇몇 팬들의 이야기를 공감하며 읽다가 그때의 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덕질에 면역은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나를 당장에라도 흔들 수 있는 대상이 있다니.

 이 뻔하지 않음이 얼마나 재밌는가.


 권태가 찾아올 수 없는 관계. 안주하지 않아 오늘도 또 가슴 떨린 상태로 speak yourself 파리 콘서트 사진을 모아 저장한다. 정말 방탄소년단이 너무 좋아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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